중딩 육아 때 머리털 다 빠지는 게 아닐까?
오늘은 큰 아이의 사회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다. 약 2주 전 아이가 볼멘소리로 큰 아이의 사회 수행평가가 있는 날이다. 약 2주 전 아이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 수행평가로 나라 조사하는 건데 나는 파나마를 뽑았어. 검색해도 자료가 너무 적어. 어떻게 하라는 거야."
6학년 2학기 사회 수행평가로 다른 나라를 조사해 발표하는 것인데 큰 아이가 뽑은 나라는 '파나마'였던 것이다. 파나마라니...... 내 기억 속에도 운하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곳 아닌가. 뭐 그래도 아이의 숙제니 스스로 잘 찾아보라고 격려해 주면서 돌아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주 목요일 진행 상황을 물어봤다. 문득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사회 수행평가 준비는 잘했어?"
"아니. 아직 남았어. 자료가 너무 없어. 인터넷 검색해도 운하밖에 나오지 않아."
아이는 인터넷 검색으로만 자료를 찾았고 네이버 등에서 검색되는 기사가 적으니 그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올바른 정보 활용 능력을 키워야 하는 건가?) 그런데 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말은 아이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자료 없으면 도서관에 있나 찾아볼까?"
"아니. 보통 받아도 되잖아. 노력요함이나."
마음이 복잡했다. 아이의 불성실함에 화가 났고 모든 일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아이의 태도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성실'과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어만 받고 자랐던 나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갑자기 무게 잡힌 엄마의 잔소리에 당황한 아이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런 태도는 옳지 못하다고 말해주고 뒤를 돌아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꺼내지 않았다. 아이를 믿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6학년인 아이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 듯하다. 시험이 없는 세상에 사는 아이라 그저 숙제로만 여겼을 텐데......)
아직 기간이 남아있던 터라 다음 날 학교에서 '파나마'에 대해 나오는 책을 찾아 아이에게 건넸다. (정말 자료가 없었다. 겨우 1권 찾았는데 그것도 1~2페이지뿐이었다.) 내용은 적지만 '파나마'에 대한 자료가 있으니 참고해서 과제를 마무리하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아이는 주말 내내 쉬고 수행 평가 전날이 되어서야 과제를 마무리했다. a3사이즈의 도화지에 지도와 운하 사진을 오려서 붙이고 연필로 짤막하게 설명하는 글을 써두었다. 색연필로만 꾸며진 결과물을 보니 답답했다. 우수상 받고 싶어서 방학 때마다 탐구 생활에 알록달록 색의 펜과 메모지를 붙여 누가 봐도 열심히 방학 숙제를 한 티를 냈었던 나에 비해 딸은 잘 해내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다.
"이렇게만 하고 낸다고? 다른 친구들도 이렇게 했어?"
"PPT로 만든 애들도 있는데......"
"뭐? PPT로 만들어도 되는 거야? 그럼 너도 지금 할래? 엄마가 도와줄게. 금방 끝나."
"아니야. usb도 없고 그냥 색칠하고 끝낼래."
"네가 색칠하는 시간보다 엄마가 PPT 만들어주는 시간이 빠를 텐데."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와 주길 바랐다. 퇴근 후 애들 챙기랴 집안일하랴 너무 피곤했지만 그게 대수인가. 아이의 수행평가가 달려있는데......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고생스러움을 거절했다. 자기 나름대로 유튜브나 구글에서 알아보며 준비했는데 다시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아이를 이끌고 무작정 컴퓨터 앞에 앉을 것인가 아니면 미완성처럼 보이는 결과물을 제출하게 할 것인가. 결론은 아이의 선택을 수긍했다. 내가 밀어붙인 결과물로 성적을 얻어봤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아이의 방에서 나왔지만 이내 후회가 되었다. 만약 아이가 원하지 않았어도 PPT로 자료 준비해서 발표했으면 과정은 힘들었어도 발표 후 뿌듯함을 알게 되지 않을까? 내가 더 설득했어야 했나? 부모가 끌어줘야 했던 거 아닐까? 등등 온갖 생각이 후회라는 꼬리를 머릿속에 나타났다. 허무하게도 수행 평가는 다음 주로 미뤄졌지만 아이는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지만 매번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대응해줘야 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시험을 보는 기분이다. 나의 욕심을 누르고 아이의 의견을 들어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른으로서 알려줘야 할 것은 억지로라도 알려줘야 할지...... 이럴 때마다 간절하게 정답지를 찾게 된다. 육아도 수학처럼 깔끔하게 답이 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다시 생각하고 뒤돌아 생각해 봐도 답은 1개로 귀결된다. '아이를 믿자.' 지금은 부족해 보일지언정 점수에 좌절하고 후회하는 것도 아이의 몫이다. 설령 뒤처지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믿고 응원해 주는 일뿐이니까.
잠깐...... 나 왜 아이가 수행평가를 망칠 거라고만 생각하는 거지? 의외로 발표 잘해서 높은 점수를 받아올 수 있는 거자나. 아니면 위로해 주지 뭐. '그것 봐라. 엄마 말 들었어야지.' 이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