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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움 Sep 09. 2024

엄마의 불안함이 아이를 힘들게 한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큰 아이는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4세 때 아이에게 영어 동요를 며칠 틀어줬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CD플레이어를 껐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아이가 다시 끄고 이런 행동이 몇 번 반복된 뒤로는 영어와는 거리를 두었다. 또래에 비해 말도 빨리 깨우쳤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던 아이라 영어도 빨리 시작해주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했었는데 아이는 엄마의 욕심을 알아챘는지 '영어'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학년 2학기 11월이 되어서야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3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데 어느 정도 문장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같은 동 같은 라인에 있는 영어 학원에 보냈다. 물론 아이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는 곳으로 골라 심리적 거리감을 줄였다. 영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만 가보는 것으로 아이를 달래서 등록했다. 환경 변화에 예민한 아이라 조심스러웠지만 다행히 아이는 학원에 다녔다. 물론 가기 싫다는 말을 했지만 처음처럼 울면서 강도 높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는 4개월 뒤 학원을 그만두었다.


6학년 2학기가 된 아이는 여전히 학원을 거부한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학교 수업 따라가는데 아무 문제없다고 의견을 피력하면서 저항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다.

5학년때까지는 나 역시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지만 6학년이 되니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중학교 영어는 초등이랑 달라."

"중학교는 문법도 같이 알아야 하는데 넌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중학교 가면 힘들어질까 봐 엄마가 걱정되어서 그래."


엄마의 초조함과 걱정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의 말들로 바뀌었다. 그러나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학원에 등록해도 가지 않겠다며 선언했다.


"엄마 돈 아껴주는 거야. 수행평가 보면 다 맞는데 왜 가야 해?"


둘째 영어 학원 알아보면서 큰 아이도 껴서 등록시키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테스트만 보기로 합의를 봤다. 다행히 큰 아이의 영어 수준은 학년에 비해 떨어지지는 않으나 어휘력이 부족하는 테스트 결과를 들었다. 아이와 상의 후 단어 공부를 좀 더 보충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말이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큰 아이

그렇다면 나의 조급증은 왜 시작되었나? 아마도 예비 중이라는 단어가 더해져서 그런 듯하다.

내가 배울 때보다 교과서가 더 어려워졌다는 정보와 근무하는 학교에서 영어 원서를 읽고 있는 학생을 볼 때면 '우리 아이들은 영어 공부를 안 했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합쳐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표현을 자제한다고 노력했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신랑과 상의 끝에 아이의 영어 공부는 신랑이 봐주기로 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기도 하고 문법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게다가 둘째의 공부도 봐줘야 하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아 신랑의 시간을 투자받기로 했다.



"엄마가 생각해 봤는데 중학교 영어부터 어려워진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되어서 너를 재촉한 거 같아. 미안해.

이제 영어 학원 이야기는 안 할게. 대신 영어 공부는 아빠가 도와주신대. 그 정도는 하자. 응?"



'걱정되는 부분을 넘기지 말고 알아보고 고민하고 대화해 보세요. 그것이 정말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면 미루지 말고 노력을 기울이세요. 아이의 일에 늦는 건 없습니다.

<내 아이를 위한 사교육은 없다> 본문 중에서



지난주 아이에게 사과했다. '예비 중학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명찰을 달아주고는 잔소리를 했으니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평소보다 더 영어 공부를 하기 싫어했다.) 다행히 아이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아빠와 주 2~3회 영어 공부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일은 다른 학생과 아이를 비교하면서 조바심을 낸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학원이라는 선택지를 아이의 공부 환경에서 지운 것뿐인데 말이다. 억지로 보내봤자 득 될 것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영어 좀 못하면 어떠냐! 대신 다른 것을 잘하면 되지!(이것도 엄마의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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