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잘못되었어!
"오늘 수학 익힘책 풀어야 해."
(학교에서 내 준 숙제가 있으니 집에서 풀 수학 문제집 양을 줄여달라는 메시지)
그리 말하며 식탁에 앉아 숙제를 시작했다. 둘째 아이 옆에 앉아 교과서를 들여다보니 교과서에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이게 뭐야?"
"나라가 잘못되었어."
"어? 갑자기?"
"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는데 왜 다음 것으로 넘어가는 거야?"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학교에서 진도를 급하게 나간다는 것이다. 나눗셈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데 원을 배운다면서 왜 학원 다니는 아이들에게만 맞혀 수업을 나가냐고 불만이었다.(선생님은 잘못이 없단다. 아이야. 복습을 늦게 하는 우리 잘못이지.) 나눗셈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주변 친구들과 성적을 종종 비교하더니 유난히 수학 실력에서 위축이 되었던 아이다. 그때마다 집에서 엄마랑 좀 더 문제를 풀면 된다고 다독였는데 나눗셈 다음 단원으로 진도가 나가면서 경고등이 켜졌나 보다. (그렇다고 10살짜리가 나라를 운운하다니......)
"학교는 계획대로 진도를 나갈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수학을 빨리 배우는 거야? 미국에서 온 애는 2학년 때 덧셈, 뺄셈을 배운다고 하던데, 곱셈도 안 배우고" (우리나라 공교육에서는 덧셈, 뺄셈은 1학년부터, 곱셈은 2학년 1학기 말에 배운다.)
"네가 학원 다니는 아이들보다 문제를 적게 푼 것은 사실이지. 친구들은 매일 1시간씩 수학 공부하는데 너는 20분 정도만 풀지? 당연히 실력 차이가 날 수밖에. 문제 푸는 양을 더 늘려야 친구들만큼 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너무 진지하게 말해."
"어? 네가 속상해하니까 사실을 말해준 거야. 시간을 들여서 노력하는 만큼 당연히 실력은 차이가 나지."
(F인 자녀와 T인 엄마의 대화는 이런 대화가 익숙하다.)
"그런데 집에서는 집중이 잘 안 되는데."
(우리 집에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다.)
"학원에서 하면 집중이 잘 될 것 같아? 집이랑 다르게?"
"응. 학원에서 풀면 좋을 것 같아."
공부 잘하는 친구의 짝꿍이 된 뒤로 학원에 대한 신뢰가 부쩍 커진 아이는 다른 환경에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러면 부모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바로 둘째의 수학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동네 친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나눗셈, 원 등을 배우는데 돈을 써야 한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아쉬웠지만 아이가 내린 결정이니 따르기로 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가지.) 우선 친한 친구들이 다니는 수학 학원에 전화했더니 진도가 한참 앞선 반만 있다고 했다. 나눗셈을 어려워해서 그 단원부터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들이와 무게를 배우는 반밖에 없고 진도를 뺀 후 다시 나눗셈으로 돌아간다고. (3학년 2학기 수학은 곱셉, 나눗셈, 원, 분수, 들이와 무게, 자료의 정리 순으로 배운다.) 나눗셈을 좀 더 배우고 싶어 하는 둘째 아이에게는 맞지 않아 다른 학원을 알아보다 결국 큰 아이가 다녔던 학원에 가보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학원비를 결제해도 가지 않겠다는 선언한 큰 아이의 이야기를 해주면 엄마가 받아주기 때문에 애가 학원을 가지 않는 거라고 말하는 지인도 있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것처럼 애초부터 학원은 무조건 가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애초에 학원이라는 키워드를 아이 초등 시절에는 제외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아이가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는 아이라면 학원에 보냈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반대였다. 최근에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 걱정이 되어 실내 운동이라도 시키고 싶어 탁구 학원에 데려갔더니 큰 아이는 배우기 싫다며 눈물을 쏟았다. 외부 환경에 예민한 아이들이라 하교 후 학원은 결사반대를 했었는데 둘째의 변화가 기특하면서도 씁쓸하기도 하다. 이왕 학원을 다니기로 마음먹은 아이가 잘 적응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