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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다슬 Oct 24. 2020

7권의 잡지와 4개의 명함

나는 씩씩한 크론병 환자입니다.<8>

캄보디아에 가기 전인 23살('15년) 가을학기에 난 원래 공식적으로 동아리 생활은 마무리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시기까지도 인원은 후배 2명 포함, 5명에 불과했다. 만약 나 포함 동기 세명이 동시에 퇴임하면 두 명이서 영어잡지를 만들어야 했다. 6편에서 말했지만, 영어잡지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된다. 특히 학업과 병행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후배 두 명이서 잡지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후배들과 동기 한 명은 내가 편집장을 맡고 한 학기만 더 활동해줄 것을 부탁했다. 고심 끝에 수락은 했으나, 나도 조건을 두 가지 제시했다. 첫째는 겨울방학 때 난 캄보디아 해외봉사 일정을 마무리하겠다와 두 번째는 2016년 봄학기(1학기)가 정말로 마지막 동아리 생활이다라는 것을 제시했다. 동기와 후배들은 동의했고 난 겨울방학기간 동안 약속대로 캄보디아 봉사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캄보디아 생활에서도 동아리 활동을 고민했다.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난을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 꼭 해결하겠노라 다짐했다. 귀국 후, 2016년 봄학기의 첫 번째 잡지는 신입생&출발을 모든 글의 기사 주제로 정하는 '테마 잡지'를 만들기로 4명의 동아리원과 합의했다. 그 후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신입생 행사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강원도 한 리조트에서 진행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도 참석해서 동아리 홍보 기회를 얻기도 했다. 다소 험난한 일정이었지만, 인력문제 해결에 대한 필요성은 모든 동아리원이 공감해주었기에 똘똘 뭉쳐서 열심히 홍보할 수 있었다. 열정적인 동료들과 일하는 게 감사하다는 것을 느낀 나날이었다.


그렇게 개강이 다가왔고, 우리의 홍보는 개강 수업에서도 이어졌다. 보통 대학교 개강 수업은 교수님이 본인 소개와 커리큘럼 소개를 한 후 짧게 끝다. 우리는 그 점을 이용하고 싶었고, 몇몇 교수님께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동아리 소개 PT를 진행했다. 이 시기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개강 2주 후, 우리 동아리는 공식적인 인원 선발 공고를 냈다. 영 잡지라는 분야 특수성, 그 잡지를 1년에 4번 내야 하는 타이트한 동아리 활동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고도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랐다. 그렇게 최종 지원 마감날 우리는 15명의 지원자를 받았고 최종적으로는 12명이 입부를 했다. 지난 4년간 지원한 인원의 합계보다 지원자가 많았다.


우리는 기뻤지만 한편으론 지난날 타이트한 생활로 부를 결정한 동아리 부원들을 생각했다. 단순히 타이트한 이유로 퇴를 결정했다기보다는 타이트한 일정에 자기 주도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번 신입생 특집호 잡지는 동아리 활동의 '짬밥'으로 주도하는 것이 아닌 '미래'를 만들 사람들이 주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5년 넘게 고수해온 잡지의 레이아웃이나 크기를 모두 후배들의 의견을 수용해 바꿨다. 보통 동아리원 퇴부는 가장 힘든 일정인 '잡지 조판' 작업에서 많이 발생했는데, 다행히 주인의식을 갖게 된 동아리 부원들은 조판 단계에서도 낙오자 없이 열심히 해주었다.


신입생 특집호인 봄 잡지 발간은 성공적이었고, 신입생들의 높은 관심으로 목표했던 1,200부 수준을 넘어 1,500부 수준의 잡지 구독으로 이어졌다.  이 기세를 몰아 신입 부원 모집 공고를 한번 더 냈다. 이 공고에도 5명의 지원자가 있었고 4명이 최종 입부를 했다. 6개월 전만 해도 4명이었던 동아리원이 신입부원 포함 20명이 되었다. 정말 행복했다. 여름 잡지 역시 후배들의 주도로 성공리에 조판이 끝났다.



7권의 잡지, 4개의 명함: 기자, 부장기자, 언론사 연합회 회장, 편집장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나의 동아리 생활


이 시기 신기한 게 하나 있었다면 조급하지 않았던 점이다. 퇴임이 가까운, 즉  시간적 제약이 명백한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는 분명 난제였다. 하지만 캄보디아가 선물한 삶에 대한 여유 때문일까. 이전 같으면  예민해서 조급하고 혼자 스트레스 받았을 나였는데, 여유롭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해 간 것 같다.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마음을 다하면 마무리는 하늘이 지어주겠지'라며 급하지 않고 삶을 대하는 법을 가르쳐준 캄보디아를 생각하며 업무에 임했다. 동시에 기대하지 않았던 보람 있는 결과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더 크게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난 동아리 생활을 보람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 이젠 취업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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