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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다슬 Oct 25. 2020

내 경험은 0점짜리 경험인가요?

나는 씩씩한 크론병 환자입니다.<9>

고등학생 때 겪은 수능시험이 준 좌절과 편입으로 얻은 자신감. 그리고 대학시절의 방황과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20대 초반 겪을 수 있는 성장하는 과정을 열심히 겪고, 이젠 사회에 던져질 나이가 되었다. 열정을 쏟았던 대학언론동아리 생활로 기자를 꿈꾸기도 했지만, 기자는 사명감과 대의를 위해서 일하는 직업이기에 본인 시간이 많이 없는 직업이었는데, 난 솔직히 그런 열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난 일반 사기업에 취업하기로 결심했고, 크론병으로 군대 면제라 또래에 비해 조금은 빠르게 취업을 준비를 시작했다. 집중했던 동아리 생활이 끝난 2016년 가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가을학기 당시 난 밀려있던 학점을 채우느라 많은 입사지원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원했던 10군데 정도의 회사도 나의 준비 미흡으로 모두 떨어졌다. 괜찮았다. 나 스스로도 준비가 부족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을학기가 마무리되고 다음 해가 찾아왔다.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싸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진행한 ‘취업캠프’라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2개의 취업스터디에도 들어갔다.


취업스터디에 들어가고 난 후,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난 나름의 매력적인 자기소개서를 쓰기에 부족함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크론병이라는 힘든 역경도 당당히 이겨내고 있고, 편입이라는 나름 치열한 경쟁률을 지닌 시스템에서도 살아남았다. 대학 입학 후에는 대학언론사 98명의 회원을 이끌어보기도 했고, 나름의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다고 자신했다. 캄보디아가 가르쳐준 보이지 않는 많은 교훈들에 귀국 후에도 매일매일 감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취업하는데 큰 도움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취업하기에는 영어점수, 지원할 직무와 관련 있는 인턴경험이나 공모전 수상경력, 하다못해 컴퓨터 자격증이라도 있는 게 내가 가진 경험보다 훨씬 큰 도움 되었다. 나의 경험은 취업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다소 질서가 없고, 소위 중구난방이었다. 반면 취업스터디에 있던 다른 취준생은 정교화된 스펙을 갖고 있었다.


특히, 크론병과 편입은 자기소개서에 쓰기에 결코 좋은 소재가 아니었다. 크론병은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 조직생활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게 판단할 수 있는 치명적인 부분이었고, 편입은 크론병만큼은 아니었지만 ‘제도권’ 내에서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룬 인재를 원하는 한국사회에서, 편입은 무언가 예측치 못할 후보자라는 인식을 줄 수 있었다. 이 내용은 학교에 고용된 취업 컨설턴트를 통해 들은 말이었다. 조금 허탈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냉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완벽한 상황과 조건에서 취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부정적인 의견보다는 긍정적인 의견을 적극 참고해서 내가 가진 무기로 취업을 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밝아 보이는 불안함을 안고 난 대한민국 취준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2017년 상반기, 나는 정말 열심히 지원했다. ‘양 속에 질이 있다!’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직무와 기업들에 지원했다. 문과를 많이 뽑는 영업관리를 지원했지만 영업관리 직무가 없는 곳이면 인사, 경영기획 직무까지 지원했고,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앞뒤 재지 않고 마구잡이 지원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원서는 복붙(복사, 붙여 넣기)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회사명을 고치지 않고 쓴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곳은 당연히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62개의 기업에 지원했고 59개 회사에서 서류탈락을 맛봤으며 3개 회사에서 면접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면접본 곳도 다 떨어졌다. 어느 중견 유통회사는 초장부터 무례하게 크론병을 파고들었고, 어떤 카메라 기업 면접장에서는 카메라 도매상 출신 ‘넘사벽’ 프로취준러와의 면접 배틀에서 패배하기도 했다. 나의 가능성을 보고 친절하게 파악하려는 회사는 내가 면접 본 곳 중 제로였다. 나의 경험과 과거는 나도 모르는 이의 기준으로 재단되고 평가 받았 모두 불합격이란 결과를 주었다.


그러던 중 상반기 채용 시즌이 끝나갈 무렵 63번째로 지원한 3개월 인턴 후 정규직으로 전환 조건이 있는 컨설팅 스타트업에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모교의 주선으로 면접 본 회사였기에 이 합격도 내 입장에서는 완벽히 개운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난 ‘첫’ 사회생활을  10명도 안 되는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63전 3승 1패. 그게 나의 상반기 전적이었다.


<1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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