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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다슬 Oct 21. 2020

바쁜 하루는 힘들지만 한가한 하루는 괴로운 법

나는 씩씩한 크론병 환자입니다.<5>

19살 대학입시에서 인생 최초의 좌절을 느낀 후 좋은 대학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로 정진하였다. 1년 반의 수험기간 단순한 목표에 사상이 들어가고 철학이 들어갔으며, 좋은 대학은 좋은 삶과 직결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난 한껏 부푼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모든 게 꿈같고 황홀했다. 열정적인 학생들과 교수님, 그리고 다양한 학생 지원 체계와 시설 등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환경이었다.


편입 공부 때 배운 영어 실력을 확장시키고자 영어회화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난 이 시기부터 소위 '현자 타임'을 느꼈던 것 같다. 학교의 수준도 낮지 않고 이미 ‘영어 회화’란 특정 카테고리인 탓도 있었겠지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해당 동아리에는 영어는 기본이고 자신만의 가치를 더해 반짝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난이도 있는 자격증을 따거나, 공대생이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지식이 풍부한 후배, 성격이 좋아 발이 넓어 다양한 인맥을 보유한 선배, 공모전을 휩쓰는 사람 등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혹은 아직 자신의 부가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을 추가적으로 깨닫고 이미 실행한 사람과 찾지 못한 사람 딱 두 부류로 사람들이 보였다. 또한 찾지 못한 사람 중에는 가치를 찾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시도를 하는 사람과 큰 고민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부류가 있었다. 그중 나는 속한 학교가 나의 가치라고만 생각하고 소위 ‘학교 뽕’으로만 대학생활을 하는 가장 가치가 낮은 사람이었다. 사람의 가치는 속한 무리나 조직이 아닌 개인이 가진 철학과 행동으로 형성되는 것임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깨달았다.


한가하게 학교 이름으로 어깨나 으쓱해댄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대학만 가면 행복해지겠지, 나아지겠지라고만 생각한 자신이 정말 부끄러웠다. 대학서 만난 대다수 사람들은 학교는 학교일뿐 자신과 일체화시키지 않았다. 그들도 엄청난 노력을 해서 입학을 했음에도,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았거나 찾기 위해 노력하는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며 난 작아졌다. 한창 주눅이 들어있을 무렵, 영어회화 동아리에서 간단한 회화조차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동아리를 우선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19~20살 시절 느낀 열등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 대학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취했던 행동의 결과로 나는 다시 한번 방황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편입 수험기간 쏟아낸 노력과 성취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크건 작건 자신이 가진 열패감에 정면으로 맞서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자산이었다. 목표한 결과를 이뤄낸 자신감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중 잘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것도 생각해봤다. 좋아하는 것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잘하는 것은 가르치는 거였는데, 좋아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편입학원 조교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만뒀다. 누군갈 가르치다 보면 열정적일 때도 있지만 건조하거나 형식적으로만 학생을 대할 때가 있는데, 문제는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열정적인 조언을 대충 들을 수도 있고 형식적인 답변이 어느 학생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문득 가르친다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알바시간만 채우기 위해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나에게 영향을 받는 학생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학원 전문강사나 행정직원, 학생들 사이에서 내 평은 좋은 편이었고 나름 잘하고 있었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만두었다.(용돈벌이를 위해 일주일에 1~2번 하는 영어 과외는 시작했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 중 첫 번째 시작은 중,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방과 후 학교 수업에서 기업가 정신을 전파하는 스타트업의 보조교사였다. 영어나 수학 등을 가르치는 것을 아닌, 사전 회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것을 기획한 후, 직업관을 바꿔주거나 도전의식을 심어주는 과정이었다. 좋은 기회로 네이버, 카카오 등 굵직한 IT 기업과 협업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활동 역시 오래 하지는 못했다. 당시 대외활동을 한 스타트업은 나 같은 대학생을 10명 정도 모집을 해두었지만, 정확한 역할 배분을 못했다고 느껴졌다. 물론 스타트업도 초창기였고, 우리 같은 대학생은 메인 강사가 아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사회경험도 있고 본인만의 스토리가 있는 분들 위주로 역할 배분을 진행했지만, 하루빨리 나 자신을 더 알고 싶은 나에겐 고민하고 실패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또한, 스타트업에서 전파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반도 이해 못한 체, 아무것도 모르는 중학생들에게 온전하지 못한 메시지를 가르치는 것도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배우는 것은 없는데, 몸만 바쁘다는 생각이 이어졌고 이내 그만두었다.


그만둔 대외활동에서 하나 알게 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의외로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잠시 일했던 교육산업 특성상, 다양한 배경을 가진 강사나 학생,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단단해진 몇몇 어른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는데 난 불편하지 않았다. 파워포인트를 잘하는 어떤 선생님을 모시고는 학교 안에서 피피티 제작 원데이 클래스를 연적도 있었다. 다음 활동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활동이면 좋겠다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내 영어 잡지사 기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봤다. 편입한 학교의 필수 과목 중 하나인 영어 강의를 들으며 영어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내가 진학한 문과대학 특성상 글 쓰는 과제가 많았는데 기자로 활동하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기자라면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내 면접을 봤고 쉽게 통과했다.

동아리에 들어가고 나서야 안 얘기지만, 당시 인원은 나 포함 3명에 불과했다. 또한, 원래 1학년만 뽑고 4학기 의무 활동 제로 선발을 했는데 인원이 워낙 없다 보니 학년을 고려하지 않은 최초의 면접이라 했다. 인원 모집이 절실했기에 면접은 형식에 불과했고, 나는 군대 등 중간에 빠져나갈 핑계도 딱히 없다고 말하면서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경험을 시작했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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