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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다슬 Oct 21. 2020

오늘 하루 잘했다고 꼭 말해주세요

나는 씩씩한 크론병 환자입니다.<4>

부모님께 자퇴를 하겠노라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그래도 휴학 후 안정적인 보험을 두고 편입 시도하는 게 어떻냐고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편입제도 중 4년제 학사를 취득하고 보는 편입시험(학사편입)과 대학교 2학년을 마친 후 휴학 후 편입하는 시험(일반편입) 중 경쟁률이 훨씬 약한 것은 전자의 학사편입이라 설명드렸다. 또한 나의 마음가짐과 학사 취득을 위한 자격 응시비 조달을 위한 알바 계획 및 학원비 지출 계획 등을 정리한 보고서 A4 5장을 어머니 화장대에 올려두고 하루 동안 집을 비웠다. 그걸 읽은 부모님은 허락해 주셨다.


학교를 찾아가 학장님과 상담 후 자퇴 처리를 했다. 학장님은 나에게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했지만, 난 이미 마음이 너무 확고했다. 다시 생각해도 같은 결론일 것이라고 단호히 말씀드렸다. 그렇게 대학교 교정을 나서는데 한치의 아쉬움없었다.


그렇게 난 20살 6월부터 더 좋은 학교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같은 해12월까지는 국가에서 발급해주는 학사 취득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고 이듬해 학사 취득 및 편입 공부를 병행하여 22살 2월 새로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학사 취득에 필요한 자격시험 응시비나 수업 수강비는 알바를 통해 충당하고자 편의점 주말 알바를 다녔다. 핸드폰도 꺼두고 공부와 알바에만 집중했기에 기타 생활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12월 중순이었다. 20살의 마지막 월이었다. 사촌 형이 추천해준 편입학원에 등록하고, 학사 취득 관련 공부와 병행을 시작했다. 21살, 편입 수험 생활 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동기부여로 가득 차 시작해서 그런지 편입 공부는 나와 잘 맞았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가나다 군’ 세 번의 지원 기회만 주어지는 수능시험과 달리 시험일자만 겹치지 않으면 지원한 학교 수만큼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다면 복수의 입학 자격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여러 번의 시험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한 학교의 시험을 마치더라도 다음 시험에 더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문과의 경우 영어 단일 과목으로 편입시험이 진행되었는데,  영어단어 수준이 미국 대학원 진학시험 수준일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명확한 동기부여로 인한 집중력과 논리 위주의 편입시험 문제 유형은 나와 매우 잘 맞았고, 성적도 최상위권을 늘 유지했다. 장학금도 많이 받아서 학원비 조달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학원에서 내 인생의 친인척을 제외한 첫 형 누나들을 만났다. 편입은 보통 남자 기준 24~25살  여자는 22~23살 쯤 시작한다. 보통의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온 후, 여자라면 기존 대학을 휴학한 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양한 인생을 겪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중 잘 통하는 형누나들이랑은 점심 저녁도 함께 먹고 의지하였다.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이 시기 사람들은 어린 나에게 수험기간 큰 힘이 되어주었고, 편입 후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주는 또래 집단이 되었다. 수험기간 학원의 형 누나들 외엔 개인적으로 만난 친구들이 없었다. 마침 나와 가장 친한 친구들이 군대에 간 시기이기도 했으며, 메신저도 탈퇴하고 핸드폰도 거의 꺼두고 집 올 때만 켜곤 했기 때문에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이따금씩 군대 간 친구들의 편지가 오곤 했는데 친구들의 손편지를 보면 정말 많은 힘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군인한테 위로받는 사실에 참 미안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답장을 써줄 땐,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편입 수험생활은 내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였다. 매일 무언가에 몰두하고 하루하루 나아지는 나의 모습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전에 느끼지 못한 밀도있는 보람감을 느꼈다. 끌려다니면서 살아지는 게 아니라 한 달, 일주일, 하루 단위로 이어지는 나의 계획대로 생활이 이어지고 그에 따라 공부 실력도 상승하자 뿌듯했다. 이 시기엔 하루 한 줄 일기장을 썼는데 거의 대부분 그날 느꼈던 성취감에 대한 만족,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자기반성, 앞으로의 동기부여 문구 등을 적었다.


이 시기 읽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나,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역사 상 나보다 더 큰 고난과 역경을 겪은 위인들은 나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줬다. 그들은 영어 단어는 하나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나에게 시험을 대하는 담대한 마음을 가르쳐줬다. 하루하루 힘겨운 상황에서도 자기자신을 다독이며 문제를 향해 정진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었다.


20살 6월~21살 12월은 학사 취득을 위한 자격증 준비와 편입 시험 준비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최종적으로 9개 학교에 합격했다. 내가 목표한 대학에도 합격했으며, 최연소 편입 다관왕으로 학원 합격 축하파티 때 대표로 연설하기도 했다. 부모님도 당연히 뿌듯해하셨으며, 나 역시 뿌듯했다. 편입 시험 기간 동안 크론병으로 인해 배탈이 한 번도 난적이 없었는데, 얌전히 있어준 크론병에게 참 고마웠다. 앞으로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며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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