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리 연작시
당신한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라도 조용히 써봅니다.
당신 곁은 너무 뜨거웠어요.
저를 으스러지게 끌어안던 그 품은
아직도 제 몸 어딘가에 화상처럼 남아 있어요.
당신은 절 믿었죠.
저는 자꾸 그 믿음을 흔들었고
당신은 그럼에도 절 붙잡았어요.
그게… 저한테는 좀
무서웠어요.
사실, 그날 밤—
당신 친구와 잠자리를 가졌을 때.
술 기운에 정신이 흐려졌다는 건 변명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그 사건이 당신을 정말 많이 아프게 했죠.
저도 알아요.
그래서 숨기지 않고 말했잖아요.
근데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어요.
어쩌면 당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당신을 도발해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죠.
당신이 내 목을 조를 때,
난 숨이 막혔지만 동시에 안심했어요.
이걸로 분명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요.
저는 스스로 망가져야
겨우 제가 누군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기적인 거 알아요.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당신 덕분에
배운 것도 있어요.
어떻게 사람을 으그러뜨릴 수 있는지,
어떻게 누군가를 존중하려 애쓸 수 있는지,
어떻게 사랑을 아프게 주고 받을 수 있는지.
솔직히 말하면—
그날 밤,
나는 자유로웠어요.
이제야 알겠어요.
저는 당신 같은 분노로부터
도망치는 쪽이에요.
불타는 적개심을 피해 달아나는 사슴 같은.
당신 같은 사람이
제가 머물 수 있는,
알맞은 자리겠죠.
당신보다 나은 사람은 앞으로 없을 거예요.
하지만, 저도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저를 위해 인생을 살아볼까 해요.
부디 저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세요.
(추신. 당신 앞으로 달린 외상 값이랑 술 값은 제가 전부 냈어요. 그러니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