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먹어치운 그믐달

일상생활 연작시

by 장준

남들은 밤이 춥다지만 나는 저녁을 사랑합니다


그림자는 어딜 가든 내 옆을 따라다닙니다

해가 정수리를 지나칠 때면 뜨거운 열기가 나를 안아줍니다만

그림자의 머리칼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워집니다.


눈물을 머금은 구름이 해를 가리면

그늘이 그림자를 먹어 치워 포근히 안아줍니다

나도, 그림자도, 뜨거웠던 땅도 잠깐은 쉴 수 있겠죠


달이 뜨고 저녁이 찾아오면

그림자는 어렴풋이 보입니다마는 제 곁을 어슬렁거리며 한 숨 돌립니다

낮 동안 남들이 밟고 지나가느라 지친 제 육신을 잠깐이나마 풀어헤쳐

어둠 속 저 어딘가 제 육신을 내려놓겠죠

추운 바람이 그림자를 뜨겁게 포옹해 줍니다


잠을 한숨 자고 나서 다시 아침이 되면

나도, 그림자도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남들은 밤이 춥다지만 나는 저녁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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