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검정토끼 08화

여덟 번째 만남

1998년 11월 12일

by 장준

저 눈은 날카로운 포식자의 눈이다.


그녀를 보고 나는 괜스레 그대의 옷깃을 잡아 당겨 버린 것이다.

밖에서 사내끼리 신체접촉을 하는 것은 그대가 하지 말라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나를 핥고 지나쳐간 저 년의 눈동자가 무서워 그대 뒤에 숨어버렸다.


그대는 팔뚝에 내 붙잡음이 느껴졌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눈짓으로 하지말라는 듯 짜증을 부린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는. 이미. 위축되어버렸다.


왜일까? 나는 무엇이 무서워서? 내가 뭘 잘못한걸까?


나는 그 순간 실존주의 학자들의 이론들도, 정신분석적 심리분석도 쏟아내듯 떠올랐으나, 이내 머릿속에서 전부 가슴으로 떨어져버린다.


그녀는 이제 그대를 바라본다.

그대에게 대답을 바라듯이 바라본다.

그대는 답이 없다.

그녀가 대신 서두를 꺼낸다.


"오까네(おかね)언니 쪽 남창? 아니면 학생인가?"


그녀는 알기 힘든 말들을 당신에게 건넨다.

어렴풋이 나를 얕잡아보는 말들임을 어깨가 알아챈다.

남창이라 함은 나를 말하는 것인가?그렇다면 학생 또한 나를 지칭하는 말이리라.

그말은 즉슨, 내가 천하다는 말일까?

아니-그저 오해일 수도 있으리라. 좋게 보면 사람이 매력적이어서, 학생의 어리숙함이 있는 풋풋한 젊음을 말하고 싶은 걸수도. 그러나 내 심장은 그것은 아니다라며 쿵쾅거린다.


나는 내심 그대가 나를 대변해주길 바라며 낑낑거리지만 그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백육십 센티미터의 남자 뒤에 장신의 남자가 벌벌 떨고 있으니 모양새가 분명 가관일 것이다.


나의 행동거지가 영 못미더웠나보다.

그녀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며 둘러보다 다시 서두를 꺼낸다.


"이런, 투계(鬪鷄)나 변견(便犬)아닌게로군 그래!"


나는 숨을 토하듯 폐를 쥐어짠다.

"으,으으.으! - 흐. 흐으. 음?"

이내 짧게 콧소리로 의견을 표하나, 그녀는 어처구니 없는 코웃음만 보일 뿐이다.


"말더듬이 병신이라! 퍽으로 웃기군 그래. 당신이 벙어리 키우는 취미가 생긴줄 몰랐는데. 모쪼록 내일 나들이를 가야하니 저번처럼 늦지 말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녀는 우아하게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간다. 또각거리며. 높은 구두굽이 신화 속 태양마차 말발 굽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그녀의 뒷모습은 짧은 치마 자락만 살랑인다. 악독하지만 달큰한 향수체취가 허파를 찌른다.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그대의 해명을 바란다. 하고싶은 말이 많지만, 말이 안나온다. 목에 교통체증이 생겨 머리에 자동차 매연이 뿌옇게 올라온다.


아마 나는 또 울었나보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입술조차 닫힐때면 "헛살았다"는 생각 뿐이다. 추잡하게 눈물을 훔치는 나를 그대는 골목길로 끌고간다.


그대는 화가 난 표정이다. 분노가 치밀때면 작은 토끼의 눈은 반쯤 닫힌다. 그대가 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콧물이 막혀 숨이 헐떡임에 그대는 내 손에 휴지를 쥐어준다.


나는 그대에게 해명을 요한다. 다급하게 종이조각을 꺼내서 말을 적는다.


[누구야?]


그대는 한숨을 쉰다. 휴지를 내게 뺏어 얼굴을 벅벅 닦는다. 나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적는다.


[내일 나랑 축제 가자]


그대가 약속을 잊을리가 없다. 어제도 확인했고, 그제도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가 분명, 내일 나들이를 그대와 간다 했었다. 나는 아이가 떼를 쓰듯 그대를 바라본다.


그대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다른 말을 적으려 하지만 그대의 말이 짧게-골목길에 머문다.


[-----------]


그대는 다시 내 손에 은화 두 잎을 쥐어준다.

나는 손바닥 안 은화를 보다가, 떠나가는 그대 모습을 멍하니 보고 말았다.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달이 뜨기 시작한다.

벌써 계절이 바뀌려는지 날이 변덕스럽다.

나는 기묘한 온도가 퍽 이상하여 누가 볼세라 얼굴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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