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3일
거미가 동이 트기 전부터 먹잇감을 포섭하려 하오.
명주실 속 세상은 정교하게 짜여진 세상이오만-갇힌 것은 비단 먹잇감 뿐이 아니라 제 시야의 한계요.
제 밟을 발판이 워낙 적어 하얀 줄 위의 비계(Scaffolding)를 넘나들다, 엎어질세라 발 끝을 오므려 진동을 향해 직진하오.
나는.
나는 당췌 그대에게 무엇이란 말이오?
사람은 모두 타인을 통해 자신을 확인받길 원합디다. 거울처럼 말이오. 부모에게 못받은 나머지 사랑의 갈라진 틈을 당신으로 메꾸는 것이 옳지 못하더라도 조금은-아니, 적어도 그 사이를 들여보고 관찰하려는 호기심은 있단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애정이 있다면!
나를 같은 등급의 사람이라고 여긴 적은 있습니까?
사람에 등급을 매길 순 없다지마는 우리가 눈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든 고운 얼굴에 잘 맞는 성격을 바랍니다. 면전에 언급하진 않으나 상대방이 낮은 등급의 인간이라 평하거나 논하진 않습니다. 아마 그것은 사회의 질병이자 규칙일 것입니다.
나는 도시에 퍼지는 이 역병을 거부할렵니다. 문둥병 환자가 해남 외딴섬에 가서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올곧은 마음-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무너트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죠, 굳은 지평선을 넘실거리며 부지런히 올라오는 아침 태양의 위대함을. 태양은 하루도 빠짐없이 당연한 듯 동해 바다의 검은 천막을 걷어냅니다.
어머니가 졸린 눈을 치켜뜨고 새벽 댓바람에 밥 짓는 행동을. 부지런한 밥 익는 내음은 자식을 향한 사랑과 자애의 증거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기계적인 반복행위는 멈추는 법이 없습니다. 누가 알려준 적 없지만, 모두가 스물 네 시간 하루를 보내게 하는 자연이 만들어낸 이치인 것입니다.
그대에게 정을 준 것은 외모에 반한 것도 있습니다만, 나를 인간으로 보아준 첫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유가 나를 특별히 여긴 까닭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벙어리처럼 여기기 때문임을 깨달아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당신을 강하게 한 번 껴안아보려 합니다만-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이란 거미줄에 내 삶 전부를 있는 힘껏 던져야 합니다. 그게 나는 두려운 것 같습니다.
사냥 당하기 위해 태어난 생명은 없습니다. 반대로 사냥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도 없습니다. 당신의 누이는 본디 태어나기를 사냥꾼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껍데기일 것입니다.
그대의 거미줄이 들러붙은 나의 왼 팔을 떼어내려 흔들지만, 진동하는 나뭇가지가 아파하여 차마 움직일수 없습니다.
나는 왼손으로 편지를 써내려간다.
문득, 오른쪽 팔뚝이 꿈틀거린다.
아마 덜그럭거리는 책상 소음에 잠이 깨어, 나에게 악수를 청하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