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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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촌놈이다.
지리산 산골 촌놈으로써 하나 말하고 싶은게 있다.
당신이 산에 오면 다양한 식물과 풀들, 그리고 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가끔 지인들은 예쁜 꽃을 발견하기도 한다.
"어머, 이 들꽃 이쁘다. 잡초같이 생겼는데 이쁘게도 피었네!"
그런 말을 들을때면 한 마디씩 거들곤 한다.
"눈이 가고 관심을 가진 이상 그건 들꽃이 아니죠."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잡초라도 제 이름 하나는 있을 것 아닌가?
꽃 입장에서는 나름 서운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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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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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꽃은 참으로 다양하다.
작약, 할미꽃, 수국 등등 참으로 이쁘디 이쁜 꽃이 많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아마 "나리"씨리즈가 아닐까 싶다.
나리는 꽃잎이 6장이 손가락마냥 뻣뻣이도 그리고 이쁘게 말린 꽃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나리는 하늘나리,
땅을 보고 있는 나리는 땅나리,
개나리라고 불렸으나 일제시대 이후 이름이 바뀐 참나리,
높디높은 산에서 주로 피는 말나리,
털이 줄기부터 잎까지 뻑뻑하게 있으면 털중나리,
없으면 중나리 되시겠다.
같은 백합과 나리꽃임에도 각자 이름이 다른데
들꽃이라 전부 묶어버리기엔 너무 나리들이 속상해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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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인간이 이기적이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 무엇이든지간에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게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듯 하다.
흔히들 못생긴 풀을 보고 그런 말을 많이들 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는 돼지풀이 그러겠다.
돼지풀은 징그럽게 못생겼다.
사실 돼지풀이 꽃을 피우는가? 물으면 모르겠다. 돼지풀이 꽃 피운 걸 본 기억이 전혀 없다.
돼지풀에 대해 당신이 모른다면, 검색해 본다면 아마 "아! 길가에 크게 난 잡초!"하며 말할 것이다.
내가 돼지풀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잔털이 많고 성기며,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며, 한국 토종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식물이다.
특히 잔털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기 쉬워 피부염을 일으키곤 한다.
서울 애기(나보다 어린 서울 친구들을 나는 그렇게 부르곤 한다.)들이 돼지풀에 대해 들으면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어디에 쓰나?"
내가 아는 답은 간단하다.
"전혀 쓸데 없어, 피부에 안 좋고 농사일 하는데도 귀찮지."
"쓸모 없는 외래종 같은거네."
그래도 돼지풀 나름에는 살자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한테 쓸모없고 해롭다고 나쁜 놈 취급하자니 조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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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주려 꽃집을 갔다.
장미꽃을 하나 5천원 주고 샀던 기억이 나는데 직원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의미있는 선물 되세요. 감사합니다."
꽃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식물종의 생식기관인데, 인간한테는 예쁘다는 이유로 가치를 가진다.
징그러우면서도 재밌는 생각들이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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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키스라는 것도 서로의 구강기관을 맞대는 행위이지 않은가?
소화계에 해당하는 저작작용(냠냠쩝쩝을 과학적이게 표현한 말이다) 담당 신체 기관을 서로에게 맞대는 행위인데, 이것이 사회적으로 친밀함과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이다.
키스 하면 나는 만해 한용운의 '첫 키스'라는 시가 생각나는데
처음으로 타인의 소화기관을 접하는 기회를 그리 이쁘게 표현할 수 있나 싶다.
내가 만약 키스에 대해 시를 쓴다면 그다지 문학적이진 않을 듯 하다.
이과가 디자인을 하면 망한다더니, 이런 게 좋은 예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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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 대해 생각을 하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 Wittgenstein)의 논리철학논고가 생각난다. (내 개인적인 추측이건데, 이 사람, 미친듯이 수학을 좋아하는 공과계열 공대남자 같아 보인다.)
별 시덥잖은 말 장난 정도로 여겼었는데, 언제 한번 고등학교 국어 지문에 나와서 골치아프게 만든적이 있다.
그 사람이 주장했던 여러가지 말들이 있는데 나한테 의미 있었던 말은 이 문장이 아닌가 싶다.
도끼를 나무꾼이 쓰면 공구가 된다.
도끼를 살인자가 쓰면 흉기가 된다.
문제는 도구 자체가 아닌 어떻게 쓰고 어떤 의미를 가지냐이다.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신이다.
그 말은 사람을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다.
그것을 결정하는 선택권은 당신의 입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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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며, 정치가이고, 화가로도 활동한 베이컨(Francis Bacon)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언을 했다.
하지만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명언들이 상충될 때는 어떤 것을 따르는 것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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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한 다양한 서적을 읽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인생이다.
어렸을 적, (내 기억으로는 15살 즈음이였던 듯 하다.) 베이컨은 어머니의 속옷을 훔쳐 입다가 걸려서 가출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인생의 쪽팔린 기억도 과연 "아는게 힘이" 될 거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모르는 체 당당히" 살아가는게 인생에 득이 될까?
괜히 장난스레 베이컨 씨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라면 어쩔건가요? 베이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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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린 기억을 구태여 드러내고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과자를 먹은 후에 포장지를 버리듯, 인생의 내용을 겪고 "깨달은 교훈"을 섭취를 한 후에
그리고 나머지 자질구레한 기억은 버리면 된다. 뭐, 포장지를 가지고 싶으면 가져도 좋다! 다만 집이 너저분해 질 뿐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철학자는 아니지만, 경험 자체가 아니라 의미를 깨닫고 그것에 대한 인생의 교훈을 안다는 것, 그것이 베이컨이 말하고자 했던 말이 아닐까? 정작 베이컨은 경험했던 것을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했던 것 같지만 말이다.
뭐, 적어도 베이컨 씨는 이후에 여성 속옷을 입는 취미가 사회적으로 나쁘다는 것은 확실히 깨달을 기회는 됬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