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대화에서 배운 것들

by 함박

이전 글에서는 남편이 싫어하는 대화 유형 중 하나인 ‘부정부터 시작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외에도, 남편이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말투가 두 가지 더 있다. 오늘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말이 길어지면 사기


남편은 단순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무언가를 설명할 때 쓸 데 없는 정보를 곁들이거나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남편은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설명이 길어지면 사기야.” 당당하고 타당한 말이라면, 설명이 길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 이 주장을 전적으로 믿게 된 계기가 하나 있다.


신혼 초에 내가 운전 연수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내 피부에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나서 한참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다. 선생님이 내 피부를 보더니 자기가 쓰는 화장품이 좋다며 판매하는 분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알겠다고 하고 약속을 잡았는데, 남편은 수상한 촉이 왔는지 같이 나가자고 했다.


아파트 상가의 카페에서 판매 사원을 만났다. 그녀는 자료가 잔뜩 들어있는 클리어파일을 하나 하나 넘기며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비포, 애프터 사진과 화장품에 들어간 기술 등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알고보니 검증되지 않은 다단계스러운 화장품 회사였다. 남편은 설명을 듣고 있다가 결정적인 질문 몇 개를 던지고, 그 사원이 말한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검색해서 확인했다. 그 판매 직원은 당황한듯 이곳 저곳에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 혼자 나갔으면 분명 혹해서 화장품을 결제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남편 덕에 별 일 없이 끝났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더 조심해서 듣게 되었다. 특히 그럴듯한 말들로 둘러대는 사람들을. 그리고 이 일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두고 두고 놀림감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밑도 끝도 없이 호소하는 것


한 때, 육아에만 매달리며 한참 우울한 감정에 빠져있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하고 싶은 것을 못 한다는 생각,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친구들과의 비교, 그래서 손해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겹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하고 집에서 틀어박혀 있을 때는 우울함이 극에 달했다.


털어놓을 사람이 딱히 없어서 남편에게 육아 때문에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하면 우쭈쭈 위로해주겠지' 생각했지만 남편의 반응은 냉정했다. 요약하자면,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였다. 어쩌면 남편이 가장으로서 힘든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 감정만 알아달라고 한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차가운 반응이 돌아오니 살짝 상처도 받았지만, 남편이 하는 말도 틀린 게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은 감정 표현이나 공감하는 것에 원래 서투르지만,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내가 전업주부로서 하는 일들이 하찮다고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감정적으로 공감해주지 않은 남편을 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감정적 위로를 남편에게 바라기보다,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줄 친구, 글쓰기, 심리상담 같은 외부 자원에서 찾기로. 어쩌면 그게 부부 서로에게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오랜 시간 지내며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매번 절감한다. 하지만 그 대화를 통해 조금 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말이 다르면 배울 것도 많다. 부부란 결국,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는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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