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보다 보면 마치 나를 놀리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다. 틈만 나면 장난을 친다. 아니, 장난을 치지 않으면 죽는 사람 같다.
그리고 그것은... 첫 만남부터 시작되었다.
#1 첫 만남부터 놀림 모드
우연히 만나고난 후 (소위 번호를 따이고... 푸하하) 처음 다시 만났던 자리에서, 나는 "저질 체력이라 계단도 잘 못 올라간다"고 했다. 그런데 밥 먹으러 간 식당의 입구가 반층 정도 위에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는 올라갈 수 있어요?"
그 때는 웃어 넘겼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2 한 번 놀리면 절대 잊지 않는다
남편과 연애하던 초기에,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나온 간단하고 맛있을 것 같은 레시피를 따라 요리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요리에 대한 기초가 없었던 나는, 고춧가루를 넣을 때 숫가락으로 덜지 않고 봉지째 부었다. 조절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서 나왔는지...
결국 고춧가루를 후라이팬에 와르르 쏟아버렸고, 나는 굳어버렸다. 자취 경력이 길었던 남편은 설탕과 꿀을 넣으며 요리를 수습해서 다행히 먹을 수는 있는 음식이 완성되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쉬운 요리를 어이없게 망쳤다는 생각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남편은 왜 우냐며 괜찮다고 위로해주었지만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 잊을만하면 내가 고춧가루 쏟고 울었던 것을 놀리고 또 놀린다.(부들부들) 지금은 고춧가루 쏟은 정도로는 울지 않는 요리 고수가 되었다는 말도 덧붙이지만.
아마 결혼 30주년까지도 놀릴 것 같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3 자는 척 전문가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우고 안방에 들어가면 남편은 어김없이 자는 시늉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진짜 자는 줄 알고 왔다갔다 했는데 어느새 눈을 '번쩍!'하고 떠서 나를 까무라치게 놀라게 했다. 연기도 그런 연기자가 따로 없다. 숨소리부터 자다가 놓친 것 같은 핸드폰 위치까지 매일 나를 속이려 든다.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 장난은, 이제는 우리 부부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나는 매일 안방에 들어갈 때마다 눈을 감고 있는 남편을 지그시 지켜보며 언제 눈을 뜨나 기다린다. 한 번은 다른 걸 하느라 자는 척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은근히 서운하더라?! 가끔은 진짜 잠든건데도, 자는 척인 줄 알고 1분 넘게 가만히 지켜본 적도 있다.
진짜 웃겨, 정말! 나... 길들여진건가?
#4 간지럼 대마왕
틈날 때마다 나를 간지럽힌다. 안아주는 척 하면서 겨드랑이 쪽으로 손이 가거나, 발바닥을 간지럽힌다. 밥 먹을 때 식탁에서는 무릎을 그렇게 간질인다. 간지럽다고 난리를 부리면 '예뻐해주는 건데 싫다고 한다'며 부루퉁해진다. 웃긴 건, 아이들도 아빠가 쓰다듬어주면 완전 나랑 반응이 같다는 것!
#5 설거지의 공포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조용히 다가온다.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며 놀래키거나 침을 낼름! 묻힌다. (왜 이러시는거죠?) 심장에 안 좋다. 덕분에 수시로 뒤를 돌아보거나 유리창으로 비친 내 뒷 공간을 확인한다.
#6 이불 속 기습과 도주 작전
자기 전에 갑자기 이불을 같이 덮자며 다가오는 남편. 얼굴까지 이불을 덮어버리고 방귀를 뀌었다......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계획적이다. 몇 번 당한 뒤 같이 이불을 덮자고 하면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하이라이트는 이거다. 방귀 뀌고 도망가기! 아니면 나를 붙잡고 방귀 뀌기! 얼마 전에는 내 다리에 앉더니 방귀를 뀌고 도망갔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비명을 질렀더니,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아주 만족스러워 보였다.
위에 적은 것뿐만 아니라, 화장실 불 껐다 켜기, 눈 부릅 뜨고 무섭게 웃으며 달려오기, 점프해서 깔아뭉개기등등... 이런 장난을 숨 쉬듯이 한다. 그래서 남편이 다가오기만 하면 나는 놀란 노루마냥 경계를 하거나 도망치기 일쑤다. 진심으로. 정말. 피.곤.하.다... 나도 처음엔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패턴이 예측 가능하다. 그래서 미리 피하기도 하고, 반격도 시도하며, 나날이 스릴 넘치는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장난을 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장난을 안 치면 '나에 대한 애정이 식었나?'하고 서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 지금의 장난스러운 일상이 조금은 고맙게 느껴진다. 결혼이란 결국, 나를 놀리는 사람과, 혹은 내가 놀리고 싶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혹시 당신 옆에도, 장난을 치지 않으면 죽는 사람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