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데리고 병원 다니다가 느낀 점
이 물만 마시면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서, 암환자와 환자가족들을 노리고 약팔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물정 잘 모르는 시골 마을에 와서 자식손주들보다 더 살갑게 굴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고가의 정체 모를 약을 파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내가 어리던 시절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도 않고 정말 그들이 사기꾼인지 판가름 난 것도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적법한 판매방식은 아닌 장사꾼들임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든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는 더 활개치고 다녔던 것 같다.
인터넷도 발달하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스마트한 시대에서 환자 가족을 울고 울리는 사람은 어느 분야에든 넘쳐나는 듯하다. 이는 발달장애분야에서도 활개치고 있는 듯하다. 병원에서 처방 내리는 치료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비주류적 치료법들이 난무하다. 나도 처음에 그것들에 상당히 혹했었다.
처음 아이가 진단을 받고 발달장애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부모들은, 부모도 처음인데 발달장애는 더더욱 처음이라서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이 말 저 말 듣다 보면 꼬임에 쉽게 넘어가기도 한다. 사실 비주류치료법들도 뜯어놓고 살펴보면 아이의 발달에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고, 그 나름의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그냥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자폐스펙트럼이나 ADHD를 한약으로 고친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는 사람도 있고 머리에 수십 개의 전기자극줄이 잔뜩 달린 철판 모자 같은 걸 둘러쓰고 전기자극을 주면 뇌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치료도 있다.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이상한 치료법도 있지만 식단법이나 청각훈련, 인지자극훈련 등 꽤 과학적인 논거를 가진듯한 방식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관심을 끌려야 끌 수가 없다.
애한테 좋다는 거 이것저것 다 해보면 결국 다 도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이다. 더욱이 어디 몸의 내장기관이나 뼈가 아파서 그 부분만 집중 치료받거나 수술을 받으면 해결되는 식의 물리적인 치료가 아니라 소아정신과적 치료는 그 분야도 방대하고 과정과 기간도 장기전이고 효과도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이런 비주류 치료법들이 활개를 치는 것 같다.
아이 시력이 부쩍 나빠져서 안과에 갔다.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한 시력은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나빠지는 속도를 줄이는 게 관건이었다. 근시 진행을 억제하기 위해 요즘 많이 시행되는 방법은 드림렌즈나 특정한 안약 사용 등이다.
그런데 안경을 맞추려고 안경점에 갔더니, 근시 속도를 늦춰주는 특별한 렌즈가 있다고 했다. 정말로 근시 억제 속도를 조절해 주는 임상 그래프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식약처에서 인증받은 회사에서 생산된다는 둥 꽤 그럴듯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나빠지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조금이라도 그 속도를 늦춰주는 게 부모로서 할 일이다 싶은 마음이 드니 그 특별하다는 렌즈에 관심이 갔다. 효과가 좋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중요한 건 가격이 얼마인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상당히 고가였다. 그것도 한 번 맞추면 장기로 쓰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마다 한 번씩 바꿔주어야 한다고 했다.
안과 검진을 간 김에 담당 의사 선생님께 한 번 물어보기로 했다. 정말 그런 렌즈가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즘 또 그런 제품 판촉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모르겠다며, 진짜로 그 렌즈가 근시 억제 효과가 탁월하다면 왜 병원에서 먼저 나서서 쓰고 환자들에게 추천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 제품이 이윤이 많이 남으니까 홍보를 자꾸 하는 것 같은데 속지 말라는 뉘앙스로 설명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판매가 되고 있는 건, 아주 간혹 정말로 근시 억제 효과를 본 사례가 있기는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기 때문에, 식약처 인증도 받고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고가의 렌즈를 몇 달마다 바꿔주면서 해줄 필요는 전혀 없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속이 다 후련했다. 비싼 렌즈를 못해줘서 속상한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고, 일단 전문의가 시키는 대로 스마트기기 사용을 제한하고 근시 억제 점안제를 사용해 보기로 했다.
사실 시력이든 다른 영역이든 간에 이 전공과 관련해서 장기간의 학업과 훈련을 병행한 전문의 말고 누구를 신뢰하는 게 옳겠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아프고 불편하면, 그에 적합한 전공을 공부하고 임상 경력을 쌓은 전문의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는 게 가장 이상적인 치료 방식이다.
그런데 자꾸 뭘 더 해주고 싶고, 묘안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비주류 대체 치료 요법을 찾아 헤매고 혹여나 하면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정말 최상의 치료효과가 있다면 대학병원과 의사들이 먼저 도입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환자들에게 처방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안과 선생님이 말을 듣고 나니, 뭔가 묘하게 반성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어설프게 책 좀 몇 권 읽고, 그 방식대로 따라서 해보면 뭔가 애가 하루아침에 좋아지고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뭐가 잘났다고, 그냥 의사가 처음에 권한대로 바로 약물 처방받고 시키라는 치료만 하면 될 것이지 엄마인 내가 내 애를 가장 잘 아니까,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이 한 몸 바쳐 뭔가 최선을 다하고 시간과 돈을 갖다 바치면 뭔가가 될 줄 알았다.
그냥 다 아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부모 본인이 그 분야 전문가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전문의를 찾아가서 진료 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장 낫다. 그보다 더 이상적인 치료법은 없다. 그분들은 엄청난 시간과 희생의 대가로 전문의의 자리에 있는 거고 하나의 전공을 의사만큼 그토록 오래 공부하고 시작하는 분야도 많지 않다. 내가 뭘 좀 안다고 아무리 잘난척해봐야 건강 문제에 있어서는 전공 분야 전문의보다 하등 나을게 하나도 없다. 어설프게 인터넷에서, 책에서 습득한 지식 가지고 아무리 노력해 봐야 설레발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아이가 발달장애라면 메이저 대학병원급 교수님 한 분과 가까운 지역 소아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기 진료로 두 분의 전문의에게 장기적으로 진료를 보는 게 맞다고 본다. 내 아이 잠깐 보고 판단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의사분들은 웬만하면 잠깐만 봐도 판단 가능한 실력과 경험을 갖추신 분들이다. 간혹 뭐 아주 아니다 싶은 분을 만났으면 거르면 되는 거다. 어떤 분야고 집단이든 좀 이상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니까. 아무리 이상한 의사라고 해도 내가 아는 것보다 그분이 보는 눈이 더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냥 앞으로도 아이 건강에 관한 문제든 나와 가족에 관한 것이든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자.
제발 다른데 한 눈 팔지 말자.
식단법도 과격하게 현실 적용 불가능한 것까지 할 필요 없고, 그냥 보통의 건강한 아이들에게도 나쁠만한 음식은 적당히 제한해 주고 몸에 더 건강한 음식 위주로 해주려고 신경 쓰면 된다.
전문의의 권위와 치료법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따라야한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그 이상의 나은 대안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