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보다 나은 가짜 초록을 찾아서

<모여라 동물의 숲> 속 나의 섬 아덴 (Arden)

by 다정

2020년을 계기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바뀌었다. 원래는 어렸을 때부터 파란색을 가장 좋아했는데, 이제는 숲처럼 짙은 녹색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녹색 타령을 하는 나를 두고 동생은 “역병 때문에 피폐해졌네, 피폐해졌어"라며 혀를 끌끌 찼다. 틀린 말이 아니어서 반박하지 않았다. 분명 그 연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며 종종 내려다보게 되는 나의 손톱 색도, 필기구의 색상도, 옷도, 그리고 집의 신발장과 캐비닛도, 소파 위의 쿠션도 죄다 진한 초록색이었다. 오감으로 초록을 만끽하고 싶어서 향수와 샤워젤도 푸르른 향이 나는 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나의 이 초록을 향한 갈망은 상당히 인위적이었다. 초록은 좋되, 홍콩의 진짜 수풀 속에 있는 벌레들은 사양이었다. 우리가 2021년에 새로 이사 간 아파트는 도심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산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어느 동네로 이사 갔는지 이야기해주면 나의 홍콩인 친구들 중 일부는 "어! 우리 할아버지 산소 있는 동네네?"라고 반응하곤 했다. 그 정도로 도시의 중심지와는 떨어져 있는 동네이니 산을 마주한 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충망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엄청난 발명품으로, 홍콩에서는 볼 수 없었다. 나의 경험상 뉴욕, 타이베이, 홍콩, 프랑스 수도권 모두 방충망이라는 것은 아파트 거주의 기본값이 아니었다. 하지만 뷰가 좋으니, 손님을 초대하면 다들 거실에 있는 접이식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고 싶어 했다. 나에게 발코니란 장식장 안의 기념품 같은 존재였다. 보기에는 좋으나, 발코니를 향하는 문을 열면 무한대 숫자의 날벌레와 무한한 습도가 집 안으로 날아들어오니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손님이 원하면 열어주었지만, 그로부터 며칠간은 온갖 날벌레 퇴치에 성심성의껏 임해야 했다.


이토록 유리로 가려진, 방충망으로 가려진 단절된 초록을 좋아하는 나에게, 역병의 시기는 <모여라 동물의 숲>, 줄여서 모동숲이라 불리는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물론 나는 보자마자 냉큼 그 미끼를 물었다. 평생 게임이라고는 프린세스 메이커를 잠시 깔짝댄 것 말고는 없었는데, 나는 태양과 살랑이는 파도, 정겨운 동물 친구들이라는 기약에 반드시 이 게임을 해야만 했다. 하루만 더 홍콩에 갇혀 있다면 정말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은 때에 정말 적기에 알게 된 게임이었다. 더운 국가 출신의 남편은 한국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체감 기온 영하 20도라는 기온을 처음 경험해보았다고 한다. 삼한사온이니 사흘만 버티면 곧 영하 10도 정도로 한결 따뜻해질 것이라는 직장 동료의 위로 아닌 위로에 남편은 홧김을 연차를 내고, 태국행 티켓을 산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마운틴 뷰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유를 겁박하는 홍콩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홧김에 닌텐도 스위치를 사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도 홍콩에서는 한국만큼 닌텐도 스위치 게임 기기를 구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다. 그것도 모동숲 한정 디자인으로! 버튼을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이 한쪽은 에메랄드빛, 다른 한쪽은 하늘색으로 마치 (가본 적 없으나 분명 아름다울 것으로 사료되는) 몰디브의 바다와 하늘을 닮았다. 기기를 켜기도 전에 벌써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 게임을 시작하자 더 설렜다. 오프닝 송부터 너무나 건전하고 달달하지 않은가. 따랏따다따다따단 따라라라라단. 이 음악만 들어도 벌써 휴양지에 온 듯한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곧 무인도 이주 패키지라는 팻말이 보였고, 하와이안 셔츠 같은 여행사의 유니폼을 입은 귀여운 너구리 두 마리가 나타났다. 휴양을 가는 게 아니라, 아주 이주해버린다니. 내가 예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든 환영이었다. 콘크리트와 철물 사면보다는 무인도가 분명 나을 것이라는 확연한 믿음을 가졌다. 이 깜찍한 너구리 두 마리는 자기들 이름이 콩돌이 밤돌이라며 자기소개를 하더니 나의 신상부터 물었다. 생년월일이며 이름이며. 제법 공항이나 여행사를 방문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신상정보를 기꺼이 내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증명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머리를 손으로 재빨리 빗었다. 엉망진창이었던 머리라도 다듬어야 할 테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이는 내 아바타의 이목구비와 헤어 스타일 등을 설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왠지 콩돌이, 밤돌이에게 한 수 당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너희들 귀여우니 봐준다 그래. 무인도는 무작위로 배정되는가 했더니 지도 네 개를 보여주며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더라. 그래 내가 상하수도며, 현대식 화장실, 와이파이 등 문명의 이기를 포기하고 무인도로 갈 것이면 최소한 이렇게 선택지는 줘야지.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처음 해보는 게임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으니, 해변 (섬이니까 당연히 해변이 있겠지), 강, 땅이 있다는 것 밖에 인지가 안 되고 내 눈에는 그 섬이 다 그 섬 같아 보였다.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 또 먹으면 배탈 나, 척척박사님 알아맞혀 보세요, 딩 동 댕. 그렇게 섬을 하나 골랐다. 급박하게 무인도로 이주하게 된 것도 나의 운명이오, 그 어느 섬으로 가게 될지도 나의 운명과 코카콜라에 맡겼다.


섬을 고른 후, 드디어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섬으로의 비행을 맡은 기장님께서 무엇이라 하는 방송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그렇게 운명의 무인도에 도달했다. 비행기가 지상에 가까워지자 섬의 과일수들이 보였다. 사람들이 좋아한다던 복숭아나무인 것 같았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무작위로 고른 섬이 무릉도원이라니, 나름 성공한 셈이다. 더불어 비행기는 지상의 런웨이에 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 위에 착륙했다. 이거 또 난생처음이고 새롭네. 도착하니 공항에는 나 말고도 다른 동물들이 더 있었다. 하나는 눈이 시릴 정도로 파워풀한 핫핑크 색의 암사슴 같아 보였고, 다른 하나는 연갈색 햄스터였다. 콩돌이와 밤돌이가 이끄는 대로 광장 같은 곳으로 가니, 그 둘 보다 거대한 너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딱 봐도 그 녀석이 대장이리라. 자신의 이름은 너굴이며 무인도 이주 패키지를 판매한 회사 Nook Inc.의 사장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기기를 홍콩에서 산지라 언어 설정이 변경되는지 모르고 영어로 플레이했는데, 너굴의 영어 이름은 Tom Nook이었다. 즉, 너굴은 자기의 성을 본떠 회사의 이름을 만들었다. Nook Inc.가 너굴이고, 너굴이 Nook Inc.인 것!) 무인도답게 숙소가 따로 없으니 섬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텐트를 치라고 한다. 나는 정형외과적인 문제가 많은 인간답게 텐트에서 자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텐트에서 자야 한다면, 거기가 어디든 가지 않는다. 글램핑이어도 싫다. 그렇지만 내가 진짜 자는 게 아니라 아바타가 자는 것이니까 뭐. 괜찮은 셈 치고 텐트 자리를 정한다. 텐트 자리 하나 정했는데, 나의 아바타는 너무나 기뻐한다. 누울 자리도 보고 피랬는데, 제대로 보고 폈으니 기뻐해도 되지! 일상의 소소한 성취에서도 기쁨을 느껴야 한다는 교훈을 이렇게 주다니, 모동숲은 건전하기 그지없는 게임이다.


다른 동물 친구들도 내게 텐트 자리 설정 도움을 요청했다. 핑크색 사슴의 이름은 제시카, 영어로는 푸시아 (Fuchsia), 연갈색 햄스터의 이름은 햄스틴, 영어로는 햄릿 (Hamlet)이었다. 제시카는 그렇다고 치고, 내가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건 또 어떻게 알고 이 게임의 알고리즘은 나에게 햄릿이라는 이름을 가진 햄스터를 안겨 주었나. 게다가 햄릿은 운동 중독자인 듯했다. 팬더믹 기간 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지 말고 제자리 조깅이나 스쿼트라도 하라는 건강 독려 신호까지 주다니. 게임이 이렇게나 온건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이들은 0과 1로 만들어진 존재일 뿐인데 이렇게 귀엽고 건실해도 되는 것인가.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는 대신에 조깅 루트를 인사의 대상의 이름의 철자 모양으로 바꾸겠다는 햄릿.


텐트 위치를 모두 설정하고 나면, 나뭇가지를 주워 캠프파이어를 한다. 진짜 삶에서도 해본 적 없는 그것. 영화에서처럼 마시멜로를 구워 먹지는 않지만, 섬에 있는 복숭아나무에서 과실을 따서 축배의 생과일주스를 마신다. 이로써 자급자족, 안분지족 이런 사자성어를 진정으로 이해해버렸다. 교과서에서는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섬의 이름을 정한다. 김춘수 시인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이었던 이가, 이름을 불러주니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섬에는 햄릿이 사니, 섬 이름을 아덴 (Arden)이라고 붙여주었다. 정말 콘셉트에 충실하려면 햄릿 왕자가 살던 덴마크의 성 엘시노어 (Elsinore)여야 하겠지만, 희곡 <햄릿>은 비극이니 내가 게임에서 얻고 싶은 바와 상이했다. 희곡 <햄릿>은 모두가 피 흘리고 죽어버리지만 이 게임에서 만큼은 그 누구도 피 흘리게 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나는 셰익스피어의 어머니의 결혼 전의 성이자, <뜻대로 하세요>에서의 목가적인 풍경의 숲의 이름인 아덴을 따왔다. 안 그래도 정이 들 요소가 충분했는데, 무인도에 이름까지 붙이니 정말 주인 의식이 생긴다. 아덴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보니 섬 이름을 짓는 데 있어서 한국인들은 또 언어유희의 특출남을 보여주더라. 보아하니 카테고리는 여섯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실제 지형이나 지리와 관련된 고유명사나 단어에서 따온 이름들.

독도, 울릉도, 제주도, 대동여지도, 전국팔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


둘째는 ‘도'나 ‘섬’을 포함한 한국어 단어들.

효도, 주섬주섬, 아마도, 그래도


샛째는 음식에서 따온 섬 이름들.

아보카도, 청포도, 크라운산도, 딤섬, 공차당도몇도


넷째는 이과형.

인구분포도, 밀도, 습도, 온도, 속도, 가속도,


다섯째는 유머형.

내청춘을돌리도, 비내리는호남섬, 이조명온도습도, 하울의움..쥑이는섬


그리고 마지막은 체제 비판형.

퇴근없섬, 대출한도, 자본주의제도.


이 마지막 카테고리의 섬 이름들을 미리 접했더라면 내가 모동숲의 본질을 처음부터 더 잘 이해했을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곧 다시 첨언하겠다.


잠시 모동숲 1일 차의 달콤한 환상으로 돌아가서, 섬은 동화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공간의 모습이었다. 완벽하게 인위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자연스러웠다. 풀숲을 거닐면 자박자박 풀을 밟는 소리가 나고, 해변을 돌아볼 땐 사각사각 모래 소리가 난다. 파도 소리에, 따스한 기타 음악에. 그래, 이게 바로 모두가 꿈꾸는 글램핑이지! 심지어 곤충도 내 피부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닐 일이 없다. 이 새로 발견한 세계에서 모든 것이 신기했다. 강물이 흐르는 것, 풀벌레의 소리, 모닥불 속 불꽃의 움직임, 인간의 말을 하는 다정한 동물 친구들. 낭만에 젖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그런 낭만을 와장창 깨부수는 소리. 너굴 사장이 무인도 이주 패키지 비용을 이제야 나에게 청구했다. 항공료, 이주 비용, 텐트 비용 등등해서 나는 너굴 사장에게 49,800벨에 해당하는 금액을 상환해야 했다. 아니, 장사를 이렇게 해도 되나? 요새 한국 미용실에서는 머리 시술 전에 가격부터 알려주면서 동의서에 서명을 요청하던데! 나는 이런 무지막지한 빚덩이를 안을 생각이 없었다. 걱정이 가득한 내게 너굴 사장은 섬에서 이런저런 잡일을 해서 갚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일명 ‘마라맛' 자본주의는 아니어서, 무이자에, 무기한 상환 조건인 듯했다. 이자율이나 상한 기한이 있었다면 나는 2일 차에 게임 기기를 켜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파라다이스인 줄 알았던 나의 아덴. 아덴에서도 우리는 자본주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동숲 제시카.jpeg 무사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느 다른 음식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는 제시카, 나도 그리스 음식 좋아해!


그래도 이 자본주의에는 달달한 파우더 슈거가 여기저기에 솔솔 뿌려져 있었다. 나의 동물 이웃들은 나에게 모자나 옷 같은 선물을 해주기도 하고, 그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걸면 자기들이 만드는 물체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주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누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기술을 무료로 공유해준다는 말인가. 그런가 하면 내가 채집한 물고기, 곤충, 화석은 박물관 개관에 기여했으며, 실제로 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내 평생 이런 기회가 다시 올는지 모르겠다. 박물관 관장인 부엉은 내가 기증품을 제시할 때마다 기증품에 대한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또 부엉의 여동생인 부옥은 내가 별똥별 조각을 가져다주면 별자리에 얽힌 신화를 알려주기도 했다. 또 계절마다 섬이 변화하는 모습도 내가 일 년 이상 모동숲을 붙들고 내려놓지 못하는데 기여했다. 봄에는 홍콩에서 보기 힘든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겨울에는 눈이 왔다. 단풍과 눈 역시 홍콩에서 보기 힘든 것이었다. 내가 홍콩이나 동남아 국가에서 자랐으면 모를까, 홍콩처럼 상대적으로 계절의 변화가 눈에 두드러지게 띄지 않는 지역에 거주하니 사계절의 변화를 게임 속에서나마 접할 수 있어서 기뻤다.


나는 꽃이 되어 내게 다가온 아덴을 정성 들여 꾸미고 돌보았다. 잡초라도 피면 뽑고, 아이템 제약에도 불구하고 햄릿이 살기 편안하도록 16-17세기 영국의 모습을 재현해보려 했다. 지형 공사를 할 때는 학교에서 벌으 받아 빽빽이 (같은 글귀나 그림을 반복적으로 쓰거나 그리는 벌)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도 주민 대표니까 찡찡거리지 않고 뚝심 있게! 단순 노동이 지겨우니, 팟캐스트를 들으며 정신은 팟캐스트에 손가락은 버튼에 맡겼다. 모동숲에 질릴 뻔한 위기였지만, 책임감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이겨냈다.


동숲 주민들.jpeg 이렇게 다 같이 모일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그리고 현실 속에서 만나지 못하는 나의 정겨운 친구들. 어째 나처럼 나의 친구들은 지구상에 뿔뿔이 흩어져 한인 디아스포라 현상에 이바지하고 있는데, 나의 친구들을 내 섬이나 그들의 섬에서 만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지점 중 하나였다. 사는 국가가 달라도 우리 모두는 세상과 고립되어 살고 있었는데, 모동숲의 섬에서 우리는 서로의 섬을 구경하고, 별똥별을 보며 같이 소원을 빌고, 같이 낚시를 하거나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집했다. 또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는 나와 내 친구들은 팬더믹으로 인해 스쿠버 다이빙을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찰나였다. 우리는 아덴의 바다에서, 그리고 내 친구들의 섬 해역에서 바다 잠수를 하며 노녔다. 함께 휴가라도 간 기뻤다.


다시 모동숲 속의 매우 현실적인 요소인 자본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모동숲은 우리에게 노동과 자본 창출의 쇠고랑을 아주 은밀하게 채워버렸다. 나는 서른 넘어서까지 아직도 주식을 한 주도 사본 적이 없는 재테크에는 무지한 인간이며, 비트코인을 본 적도 없다. (비트코인이... 시각화는 된 것인가?) 하지만 섬에서는 나날이 변하는 무 가격에 절절매며 '무코인'을 해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섬에 무 장수가 온다. 그에게 무를 사면 일주일 안에 먹거나 아니면 팔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는 썩어버린다. 그리고 상점에서 매기는 무의 가격은 매일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사려는 무의 가격은 적절한지, 오늘 이 가격에 파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 것인지, 아니면 여태까지의 상승곡선이 내일도 유지될지 전전긍긍했다. 그러니 Turnip Prophet, ACNH Turnip Calculator, Turnip Exchange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격적으로 무테크를 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Nookazon이라는 플랫폼에서는 게이머들이 아이템만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인기 동물 주민을 ‘인신매매'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너굴 사장은 무기한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었지만, 대출을 모두 상환하는 족족 집 증축 등을 통해 또다시 대출을 받을 것을 권장했다. 이러니 영미계 게이머들은 모동숲의 시스템이 ‘카와이 자본주의'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뉴욕 대학교의 나오미 클락 교수는 모동숲의 이러한 경제 체제가 18세기 일본의 촌락 빚 제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아니냐는 해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동숲 게임 시리즈는 일본의 경기 침체 시기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데, 1990년, 2000년대 초반에 조상들의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광고가 많았다고 한다. 마치 팬더믹 시기에 한국 사회에서 귀농이나 귀촌이 하나의 화두로 제시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였던 것 같다. 도시의 삶이 각박하니 고향으로 돌아가서 어른들은 농사를 짓고, 아이들은 깨끗한 자연환경 속에서 물고기를 잡고 잠자리를 잡으며 놀면 어떨까 하는 도시인의 판타지 말이다. 아니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유튜브 채널 <오느른>이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클락 교수는 에도 시대에는 공동 빚(collective debt) 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농민들이 봉건 지주나 부유한 상인들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의 촌장이 협동조합처럼 빚을 다 쥐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해 계속 빚을 내고, 빚을 갚아야 해서 평생토록 그 누구도 빚을 다 갚지 못했다고 했다. 듣고 보니, 에도 시대의 공동 빚 제도와 너굴 사장의 착취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긴 한다. 이러니 퇴근없섬, 자본주의제도와 같은 체제 비판형 섬 이름이 탄생한 것 아닐까?


모동숲을 수백 시간 플레이한 자로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게임을 하다 보니 지속되는 노동의 굴레에 따분해졌다. 물론 모동숲이라는 게임의 장르가 애초에 라이프 시뮬레이션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수적이다. 그 형태가 농사, 낚시, 채집 등으로 변주될 뿐이다. 모동숲 후에, 모동숲의 인기와 성공을 본떠서 나온 베어 앤 브랙퍼스트 (Bear and Breakfast), 디즈니 드림라잇 밸리 (Disney Dreamlight Valley), 호코 라이프 (Hokko Life) 등 같은 장르의 게임은 모두 비슷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삶에서의 노동의 고단함을 벗어나려다, 유흥 속에서도 노동을 연장하게 된다니,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정녕 내가 모동숲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연유는 다름 아닌 동물 주민들이었다. 처음에는 햄릿이 운동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도 스쿼트를 다섯 개는 해보겠다며 큰 포부를 품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든 각 주민의 성격별로 대본이 미리 정해진 것처럼 반복적인 대사가 나오다 보니, 더 이상 주민들과의 대화가 흥미롭지 않았다. 어휘력이 제한된 앵무새와 대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언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영어로만 플레이해보았으니 한국어로 플레이해보면 새롭지 않을까 했다. 동물 주민들의 이름도, 말투도 조금씩 달라져 며칠간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런 묘미도 시간이 지나며 시들어버렸다. 결국 동물 주민들이 진정한 나의 이웃이 아니라 0과 1로 이루어진 알고리즘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닌텐도는 '다꾸 (다이어리 꾸미기)'처럼 모동숲을 '섬꾸 (섬 꾸미기)' 게임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자꾸 섬을 장식할 수 있는 아이템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콘텐츠 업그레이드가 진행됐다. 나는 섬꾸보다는 주민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헀는데 말이다. 나 같은 플레이어에게는 주민과의 대화 스크립트가 보충되는 것이 훨씬 더 만족스러운 업데이트였을 것이다. 닌텐도가 모동숲이 '섬꾸' 게임이라는데 내가 섬꾸는 안 하고 딴짓을 하려니 문제가 된 것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래 놓고 이에 대해서 도대체 몇 단어를 쓴 것인가.)


그리고 나니 해변가의 조개껍질도,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그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하게 되어 버렸다. 그 어떤 가짜도 진짜를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가짜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와 관계없이.


더, 더, 더 초록이고 더, 더, 더 목가적인 삶을 바랐던 나는 결국 가짜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다정도 병인 양 하여 모동숲을 삭제하지도, 섬을 리셋하고 다시 설레는 무인도 이주 패키지의 첫날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아무리 가짜임을 깨달아 버렸어도 한때는 내게 진짜를 경험하지 못할 때 진짜보다 달콤한 가짜를 선물해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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