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 바 슬림스 (Slim's)
홍콩 금융계에서 일했다는 프랑스어권 사람들 중에 바 '슬림스 (Slim's)'를 모르는 자가 있다면 간첩인지, 아니 허위 경력자는 아닌지를 의심해봐야 한다. 나는 프랑스어권 사람도 아니고, 프랑스살이 9개월 차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프랑스어를 잘못하고, 금융계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슬림스를 빼놓고 내 홍콩에서의 삶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웃긴 건 내가 여기서 술을 마신 적은 거의 없다는 거다.
당연히 내가 버블 속에서 살아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만, 홍콩의 지인들이 자주 하던 이야기가 있다. 홍콩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언어는 광둥어, 북경어 순이고, 영예의 3위는 이제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라고. 내가 통계를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2010년대 정도부터 프랑스 내에서 정규직 취직이 힘들었던 이들 그리고 프랑스의 무시무시한 소득세율을 피하고 싶어 하던 이들이 죄다 홍콩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영국식 영어보다 더 많이 들리는 언어가 프랑스어가 되어버렸고, 완차이에 위치한 바 슬림스에서는 프랑스어 밖에 안 들렸다.
슬림스는 실내보다는 실외다. 이름 그대로 바가 엄청 작고 슬림하여 실내 좌석은 협소하다 못해 존재할랑 말랑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거기에 퇴근 후에 바깥바람 쏘이며 술 한잔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의 문화가 만나, 슬림스 앞 프랑스어권인들의 사교장이 이뤄진 셈이다. 평일 저녁 여섯 시 부근부터 슬림스 앞에 가면 프랑스어권 금융인들이 길가에서 맥주를 한 잔씩 들고 바에서 공짜로 주는 땅콩을 먹으며 삼삼오오 모여 있는 광경이었다.
내가 금융계 헤드헌터라면 분명 여기서 현재 포지션이나 상사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이직 권유 및 영업을 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내 배우자의 회사 동료들은 밥먹듯이 퇴근 후에 슬림스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했다. 아니 바쁘거나 속이 안 좋아서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있으면 모를까, 슬림스에서 '불평하기'를 하지 않는 날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프랑스에 오기도 전에 홍콩의 슬림스에서 프랑스 문화 중 하나를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프랑스의 국민 스포츠라는 '불평하기'다. 물론 프랑스 남부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남편의 말로는 이게 다른 지방보다는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지는 특성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실제로 프랑스에 와서 제일 먼저 길가에서 주워 들어 배우게 된 표현이 '쎄 빠 뽀시블! 쎄 빠 노흐말! (C'est pas possible! C'est pas normale!)인데, 이는 '이건 말도 안 돼! 정상이 아니야!'라는 분노와 한탄이 섞인 표현이다. 봉주르보다 오히려 이런 표현이 더 자주 들리는 것은 나의 선택 편향적 듣기인 것일까?
다시 슬림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슬림스에 자주 드나드는 회사원들은 일이나 상사에 대해서 매일같이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면서도 정작 이직은 잘하지 않고 일자리를 지켰다. 금융계는 이직이 잦은 업계라고 들었는데, 슬림스를 방문하는 프랑스권 금융인들은 유독 근속연수가 길었다. 영미계 금융계에서 일한 사람들은 보나 마나 '프랑스인들이 게으르고 능력 없어서 그렇지'라고 할 테고 그게 맞는지는 틀린지는 내가 양쪽 세계에 속한 적이 없어서 평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만난 프랑스어권 사람들은 부지런한 능력자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중앙값의 프랑스인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다만 내 친구들은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일하거나, 프랑스계 회사와 달리 휴가일 수가 확 줄어들만한 곳에서 일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또 이직을 많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문화 차이다. 친한 친구 중 하나는 15년 근속을 해서 회사에서 머그컵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자기를 못살게 구는 상사가 있는데도, 근속을 15년이나 하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나는 한 조직에 십오 년 동안 속해본 적이 없고, 너의 끈기를 높이 사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내게 자기 흉을 보는 것이냐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 친구는 일 이야기만 하면 자기가 계속 같은 회사를 다닌다는 점에 대해서 자기 비하를 많이 했다. 순간 가톨릭 성당에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외며 기도하는 친구의 모습이 상상되어 버려 곤란했다. 아 물론, 회사라는 곳이 다니기 너무나 힘들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것, 그것이 나나 그와 같은 중산층 노동자의 흔한 모습 아니겠는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나는 슬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바가 싫은 게 아니라, 홍콩의 그 열기와 습기에도 불구하고 긴팔 셔츠 차림으로 야외에서 술을 마시는 이들이 이상하고도 대단해 보였다. 홍콩은 에어컨의 도시 아닌가. 실내에만 들어가면 기후 위기에 과연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시원한 것이 아니라 '춥게' 에어컨을 빵빵 틀어주는데, 왜 35도, 습도 90퍼센트의 여름에 밖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만 물어보면 막상 환경을 위해 에어컨이 틀어진 바보다는 슬림스에 온다는 사람은 없었다. 퇴근 후 남편과 저녁 계획을 짜려고 하면 매일은 아니어도 꽤나 자주 남편이 슬림스에 들렀다가 나머지 저녁 일정을 보내고 싶어 했다. 한국식 회식처럼 도수가 높은 술을 장시간 마시는 것이 아니고 맥주를 한 시간 정도 서서 마시고 오는 것이니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더러 같이 함께하자고 하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종종 잠시나마 슬림스에 들르는 저녁도 있었다. 직장인답게 모두가 휴가 계획을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오래간만에 가족을 만나러 프랑스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고, 휴양지들과 항공편이 잘 이어져 있으니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로 떠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 홍콩에 도착해서 프랑스인 친구들에게 '너는 홍콩의 어떤 점이 가장 좋아?'라고 물으면 '공항이 도심이랑 가까워서 좋아. 다른 나라로 여행 가기가 편해'라는 답변을 꽤나 자주 들었다. 그러면서 '홍콩에 2주 이상 연속으로 있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다'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정도로 내 지인들은 아시아 내의 여행을 사랑했다. 초밥을 먹으러 일본으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태국으로, 요가나 서핑을 하러 인도네시아로. 그렇게 휴가를 가기 위해서 매일 완차이에 위치한 회사에 출근하고 회사 앞 슬림스에서 퇴근 도장을 찍었다. 어렸을 때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서 문학과 철학의 나라 출신인 프랑스인들은 모두가 철학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림스 앞에서 내 친구들은 머리에 베레모를 쓰고,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하나 들고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사유하는 대신,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으로 회사에 대한 불평불만 가득한 수다와 휴가에 대한 (비교적 이루기 쉬운) 소망을 다소 들뜬 목소리로 나눴다.
금융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어도,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야 다 뻔한 사람 일하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내가 들어도 그 회사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수년간 그 회사에 붙어서 회사의 덩치를 불려주고 회사의 주주들의 통장을 톡톡히 채워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슬림스였을 것이다. 정말 슬림스가 없었다면, 다들 팬더믹 이전에 퇴사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슬림스는 단순히 바가 아니었다. 그곳은 내 남편이 다녔던 회사의 현 및 구 직장인들의 고해소요, 심리상담소요, 한풀이장이요, 해우소, 오피스 와이프/허즈번드, 단짝 친구, 싸이월드 다이어리, 까스활명수였다.
물론 이 모든 건 팬더믹 이전의 이야기다. 2022년 10월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 팬더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가 엄격했던 기간 동안에 슬림스에는 손님이 뚝 끊겼다. 더 이상 해소해야 할 속상함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홍콩 정부의 지침 때문이었다. 당시 신심으로 가득 찬 홍콩 정부의 수장은 이 때다, 하고 바와 클럽 운영 제재부터 시작했다. 금주령과 다름없었다. 영업이 아예 금지된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정말 홍콩에 내로라했던 바들이 팬더믹 동안 사라지고야 말았다. 글을 쓰며 구글 맵으로 찾아보니, 다행히도 슬림스는 살아남은 것 같다. 다만 남편도 전 직장을 떠났고, 그 바에 뺀질나게 드나들던 남편의 전 동료들도 모두 이직해버렸다. 계속 슬림스에 드나들 수 있었다면 그 많은 이들이 정말 다 이직해버렸을까? 더 이상 프랑스의 '국민 스포츠'를 할 장이 없어진 이들이 이직을 결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는 듯 근속 15년을 채운 친구는 근속 20년을 채우기 전에 퇴사했다. 그 소식에 내가 본인이나 그의 가족보다 더 기뻐했다. 뉘우침으로 매일을 채우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값지니까. 그는 2022년 봄에 여자 친구와 호주 시드니로 이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아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랑스의 모든 직장인이 불평불만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더라. 현재 파리에서 남편은 건강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그 회사를 다니는 이들에게 슬림스에 준하는 바는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