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영아 Oct 22. 2021

#15 일본 도쿄의 북향 방에 살았습니다.

특이한 구조였지만 즐거웠어요


  

일본 도쿄에서 유학했을 때, 북향집에 산적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 남, 북이 뚫린 집이었다.  

  

“특이한 구조네….”

처음 이 집을 보게 된 건 일본의 부동산 사이트에서였다. 일본에서는 외국인들에게 집을 잘 주지 않기 때문에 좋은 집을 구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1년간은 어학원을 다니며 기숙사에서 살았고, 이후 대학에 붙은 뒤 맨션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부동산마다 다르지만,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입자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집은,


1. 집세를 낼 수 있는지.
2. 일본인 보증인이 있는지.
3. 보증회사를 꼈는지.


그리고 외국인인 나는 신원확인을 위해 신분증뿐만 아니라 대학교 합격증, 통장 잔고도 보여줘야 했고, 일본인 보증인도 있어야 했다. 꽤 까다로웠지만, 운이 좋아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았던 곳은 1 DK(방 1, 다이닝룸 1, 키친 1) 형식이었는데, 넓고 깔끔한 맨션이었다. 남향과 북향에 발코니가 두 개인 특이한 구조였는데, 집세에 비해 넓은 평수였기에 한눈에 반해버린 곳이었다. 땅값 높은 도쿄 23구 내가 아닌 도쿄지만 외곽지대에, 도심과는 떨어진 주택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었다. 그래서 이 주변 대학생들은 비교적 넓은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다.

     

미술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작업을 위해선 넓은 집을 구해야 했는데, 들어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집이 딱 이었다. 


교통도 무난했고, 주변에 편의점도 있었고, 대형 마트도 있었다. 학교도 엄청 가까워 자전거로도 10분 이내에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부엌 쪽은 남향이라 햇빛이 잘 들어오지만, 방 쪽은 북향이라는 것.

그래도 방이 동, 북 다 창이 있었고, 다이닝 쪽의 베란다도 남향이었기 때문에 집안 전체에 햇빛이 잘 들어왔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가격에 이런 집을 구할 수 있다고…? 설마….’     

순간 내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사고 물건.’ 일본에서 살인 등과 같은 문제가 생긴 집을 말하는 단어다.

 

“…이 집은 사고 물건일까요~”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내 생각을 읽었는지 부동산업자는 나에게 묘한 웃음을 보이며 말한다. 

“어….”

‘사고 물건’이라는 단어에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자 부동산업자는 잠깐 뜸을 들인 후,

“짠! 아닙니다!”

라는 말을 해주었다. 다행이다. 


    

“이 집으로 할게요.”

북향이 끼여 있어서 집세가 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일본에서도 북향 방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추워….”


일본은 바닥 냉방이 없다. (아주 극소수다) 그래서 겨울엔 스토브를 켜고 코타츠(난방되는 좌식 이불 테이블) 전기담요를 써야 한다. 하지만 난방기구를 아무리 써도 차가운 공기를 데울 순 없었다. 겨울이 되자 코타츠 이불 안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나오는 순간 북향의 차가운 공기가 슝슝 느껴졌다.     


과제가 많았을 때는 아예 코타츠 주변에 먹을 것과 과제를 잔뜩 쌓아두고 코타츠 이불을 덮고 작업하다가 잠들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감기에 자주 걸렸다.     


일본 도쿄는 내 고향 부산과 겨울에도 비슷한 온도였지만, 집안 온도는 현저히 차이가 났다. 가끔 집안에서도 두꺼운 패딩을 입고 다니곤 했다. 

    

지진이 잦았기 때문인지 일본의 창문은 1겹만 되어있었는데, 이 덕분에 겨울엔 너무나도 추웠다. 태풍이라도 오는 날이면 창문이 덜커덕덜커덕하며 바람이 슝슝 들어온다.

지진이나 태풍이 있는 날에는 창문이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남과 북이 일직선으로 뚫려있어서 여름엔 맞바람이 쳐서 시원했지만, 겨울엔 뽁뽁이를 붙이고,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집안은 전체적으로 추운 편이었지만, 다행히 남향 베란다에는 햇빛이 잘 들어왔기에 가끔 남향 베란다에서 햇볕을 쬐며 부족한 햇빛을 보충하고 빨래를 말렸다. 그래서 방은 북향이었지만 집 전체가 남향에 가까워서 생활에 문제는 없었다.     


봄날이 되어 따뜻해지면 이불을 걷어놓은 코타츠에 앉아 그림을 그리곤 했다. 북쪽에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때문에 가끔 기침이 났지만, 머리를 식히기엔 좋았다.


북향 창가를 바라보며 건축모형을 만들고, 일러스트를 그리고, 만화를 그리고, 소설을 썼다.

그렇게 북향 창가에서 창작을 끊임없이 했다.

          

코타츠와 전골이 생각나는 일본의 북향 방에서 생활했습니다.                

이전 15화 #14 북향 방에 살았던 옛날이야기를 해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