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로]라는 연애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은 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부터 각각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긴다. 시청자는 출연자가 입고 있는 옷, 외모, 걸음걸이로 단 몇 초 만에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현장에 있는 다른 출연자들이나 시청자와 같이 영상으로 접하는 패널들의 생각과 대체로 일치한다.
이처럼 이미지는 첫인상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이를 바꾸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나 특별한 사건이 필요하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근무자들과 만나는 극초반, 널널하게 잡아도 한 달 정도면 한 개인의 이미지가 견고하게 형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초반에는 과하다 싶을 만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출근 시간에 남들보다 일찍 나와서 마당을 쓸고 있는 모습, 한 번 가르쳐준 건 다음 날 몽땅 외우고 스스로 깨우치며 척척 해내는 모습은, 나란 놈의 깜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소문을 듣는 여러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면 딱 한 달만 미친놈처럼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만든 이미지는 정말 정말 오래, 또 멀리 가니까.
전 직장에서도 그랬다. 아침에 일찍 와서 문 앞에 쌓인 눈을 쓸며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일과 중에 배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출력해서 퇴근 후 집에서 달달 외웠다. 다음 날부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에게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들을 읊으며 간단한 업무들은 여기서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이런 신규는 처음 본다는 소리가 나오고, 나를 탐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때부턴 조금 살살해도 괜찮다.
여기서도 그렇게 하겠노라 마음먹었지만, 정직원이 세 명뿐인 전국 최남단 사무소는 조금 환경이 달랐다. 애초에 여기는 신규직원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육지에서 온 26살을) 비교 대상이 없으니 돋보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다른 직원들도 이곳은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힘들고, 욕 많이 먹고, 인정 못 받는 곳으로 알려져서 일을 정말 열심히 하시는 내 사수를 탁 박아놓고 적당히 굴러가게 만든 다음, 아무도 같이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아들이나 퇴직을 앞둔 고령 직원을 보내는 곳이었다.
제주도 온 게 유배인 줄 알았는데, 그 유배지 안에서 또 유배였다.
그런 분위기다 보니까 몇몇 직원들은 너는 무슨 잘못을 해서 여기 왔냐고 물었다. 면접을 잘못 본 것 같다고 웃으며 넘기긴 했지만, 면접을 잘못 봤으면 떨어졌겠지. 도대체 왜 나를 여기 보낸 건지 궁금했었다. 최근에서야 들은 비하인드로는 아무래도 이곳이 제주 내 유배지가 되다 보니 민원을 비롯한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겨났고, 기존 직원들 중에서는 아무도 여기서 일하길 희망하는 사람이 없어서 신규 중 하나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내가 버틸 것 같았다고 한다.
축하드립니다 인사팀 여러분! 정답이었습니다.
띠리리리리-
전화벨이 울리면 나는 번개처럼 전화를 받았다. 아마 띠뤽? 정도에서 받았을 것이다. 나의 첫 출근 날 '그'는
앞으로 오는 모든 전화는 네가 받으라며 해병대식 적응 훈련을 가장한 짬을 때렸다. 물론 사수가 그렇게 내버려 두진 않았지만, 정말 힘들었다.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제주자재센터 000입니다!"
모시긴 뭘 모셔. 리무진 택시냐? 그렇지만 정말로 모셔야 했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잠꼬대를 할 정도로 입에 달고 살았다. 수화기를 드는 그 순간부터 나는 철저하게 을이 되길 자처해야만 했다.
전화를 받고 폭풍 같은 제주어를 되묻고 욕먹고, 메모하고, 이해하고 혼자 찾을 만큼 찾은 후에 사수에게 묻고 해결하고, 다시 전화를 받았다. 본부에 근무하는 모 동기는 하루에 전화를 6통씩이나, 너무 많이 했다고 징징거렸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쏟아지는 급한 일과, 그중에서 더 급한 일. 갑 중 갑이 지금 당장 해주라면서 처리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겠다는 협박과 요청 사이 그 어딘가의 엄청난 압박 속에서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들을 총동원해야만 겨우 겨우 '문제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 회사는 입사 후 6개월을 수습기간으로 두고 멘토링을 비롯한 갖가지 교육을 진행한다. 보통의 사무소라면 팀장급의 지도 감독아래, 사수인 차 과장이 멘토로 활동하고 신규직원은 그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우리 사무소의 센터장은 술에 취해 자고 있었고, 사수는 내가 맡은 것보다 더 복잡한 업무를 담당해서 그 역시 전화기를 하루종일 붙들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다 했다. 멘토링 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스케줄에 맞춰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고 일주일 만에 배운 업무들을 세 달 동안 배운 것처럼 꾸며서 써냈다. 당장 제 몫을 다해야 하는 현장에서는 영 효과가 없는 교육과정이었다.
그렇게 멘토링 보고서를 작성할 때나 문서를 발송할 때 나오는 직급을 볼 때 맞다 나 수습이었지 하고 자각했다. 6개월이 지나고 '면수습' 기념으로 간식을 돌렸을 때 아직도 수습이었냐며 놀랄 정도였으니 남들이 보기에도 수습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야생의 산야나 들에서 벌이는 전투를 '야전'이라고 한다. 군 장교 사회에선 야전에서 고생한 경력이 진급의 기반이 된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아무래도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면 비교적 빨리 배우고 성장하니까 그럴 것이다.
나 또한 힘들긴 했지만 그런 효과는 톡톡히 누린 듯하다.
발령 한 달 만에 50억 규모의 구매공급 계약을 밀고 당기는 시담부터 계약서 작성까지 맡아서 했고, 발령 세 달 만에 감사를 받으며 탈탈 털리고 경위서를 두 개나 쓰면서 경험치가 팍팍 올라갔다. (아마 내 완벽주의는 이때를 기점으로 더 심해졌을 것이다.) 왜 새파란 신규가 그걸 다 했냐고 묻는다면, 나의 야전에는 일 말고도 어려운 것이 한 가지 더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사람', 근데 이제 알코올중독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