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우리 담임 선생님은 너희들이 꼭 봤으면 좋겠다며 드라마 '미생'을 소개했다. 전교생이 모두 강당에 모여 어떤 특강을 듣고 있던 그 시간에, 우리 반은 '담임 선생님의 인생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드라마를 시청했다.
어머니가 사준 새 정장을 입고 꼴뚜기를 뒤적이는 주인공 장그래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쓴 맛을 보여주려고 하셨던 걸까?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 또는 지금의 노력이 나중에 어떤 보상으로 돌아올지 상상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시간 관계상 두 회차만 봤지만, 직장생활을 간접체험 해볼 수 있던 이 시간이 꽤나 재밌던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 취업을 준비할 때도, 첫 직장에 입사해서 말로만 듣던 직장생활이란 것을 시작했을 때에도, 이 드라마를 찾곤 했다.
미생 11화에는 내부고발 이후에 받게 되는 주변의 시선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아래는 주인공 장그래의 독백이다.
3팀 내에서 우리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지만, 복도만 나서도 우리 3팀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중략) 우리 팀은 내부고발로 인한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왜 조용히 처리하지 못했느냐, 동료를 버리고 이익을 취했느냐, 너희들은 깨끗하냐. 사직서를 낸 상무님과 전출된 사람들의 동정론이 회사 전산망을 타고 전파됐다.
회사 내에서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내부고발자가 감내해야 할 뒷감당의 무게는 얼마나 큰지. 영상을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과 함께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이번 글의 제목과 지난 글들에서 묘사한 '그'의 모습을 조합하면 쉽사리 할 수 없는 그 행동을, 내가 결국 해버렸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발령 후 6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지옥 같은 퇴근길을 거쳐 합숙소에 도착한 나는 힘 없이 누워 정신과 예약을 잡고 있었다.
여러 날들의 기억이 섞여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날도 그의 아내가 왜 음주를 막지 못했냐고 나를 질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제주어도, 거래처의 갑질도, 가족 친구들과 만날 수 없는 외로움도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마주하는 중증 알코올의존 환자와 그의 가족이 요구하는 8 to 7 토탈케어의 수준은 -멘탈 세다고 자부하던 내 자존심이 상하긴 하지만- 정말 버티기 어려웠다.
나는 그와 함께하는 6개월 동안 "버텨야지" - "아냐 이젠 진짜 안 되겠다" - "그래도 나름 할만한데?" - "술 안 마실 때는 참 좋은 사람이구나" - "그래 버텨야지" - "아니 더 이상은 못하겠다" 라는 생각의 흐름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이런 고민을 수도 없이 하던 탓에 난 정신적으로 굉장히 지쳐있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제주도 좋지?'와 비슷한 말만 들어도 발작버튼이 꾹 눌려서 상대가 누구든 공격적으로 쏘아붙이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당신이 뭘 알아.'라고 생각하는 당시의 내 마음은, 많이도 불안정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근처 운동장을 정신없이 달리고 멍하니 뜨거운 물을 맞으며 샤워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고민들, 내 인내심의 임계를 톡톡 치며 넘보던 순간들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차곡차곡 축적되어 높은 감정의 파도를 이루었고, 그 파도는 친구와 통화하며 신세한탄을 하던 어떤 날에 그동안 애써 붙잡고 있던 방파제를 훅, 하고 넘어버렸다.
이 결심이 다시 사그라들기 전에 서둘러 끝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또 참으면 한 달 두 달은 금방일 것이다. 다급한 마음으로 사내 익명제보시스템에 들어가서 내용을 접수하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익명제보시스템이지만 당연히 나인줄 알았을 것이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고, 그저 그와 나를 하루라도 빨리 분리시켜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내부고발자로 인식되면 앞서 언급한 미생에서와 같이 꽤나 골치 아파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인사팀은 내가 고발했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 이런저런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나 그 방법들은 여의치 않았고, 나는 괜찮으니까 빨리 좀 도와주라고 말했다. 난 각오했다고.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그 후 특별감사와 징계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감사가 사무실에 들이닥친 후 그는 내게 네가 신고한 거냐며 화를 냈는데,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본인을 신고해 보라고 직원들을 도발하지 않았냐며, 그래서 내가 했다고 응수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의 아내는 신고 잘했다며 비꼬는듯한 문자를 보내왔다. 답장은 하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여기저기서 '제주의 내부고발 이야기'가 궁금했던 건지 내 주변인들을 파기 시작했다. 남 얘기하길 좋아하는 그들은 그저 재밌는 사건이 생겨서 신이 난 듯했다.
동기들이 있는 단톡에서 내 소식을 묻는 사람이 있다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그렇게 궁금하면 나한테 묻든가, 굳이 단톡에서 떠들어서 모르던 사람들도 알게 되는 게 아니꼬웠던 나는, 소식의 근원지들을 찾아 연락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대답해 드릴 테니 직접 물어보셔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여서 비밀로 할 일도 아니거니와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동시에 구태여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단톡에서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건 피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그는 생각이 짧았다며 진심으로 내게 사과했다.
본사에서도 꽤나 이슈가 됐나 보다. 00 씨는 나 술 좀 먹는다고 신고하면 안 된다? 따위의 말을 하는 상급자들이 꽤 생겼다고 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그들의 눈에 이 사건은 새파랗게 어린 'MZ'신규직원이, 상사가 낮에 '술 한 잔' 한 것 가지고 '겨우' 그거 가지고 고발을 한, 기가 차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진짜 그런 거였으면 징계가 내려졌겠나? 남들에겐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과장 조금 보태서 내겐 생존의 문제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자인 나를 보호하고자 인사팀은 그렇게 용을 썼는지도 모른다. 천리 밖 제주에 보내버린 부채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제출한 자료와 현장 감사의 보고서를 보고 그가 너무 심했다고 느껴서였을까?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몇 번이고 말하는 인사팀과 감사팀 직원에게 나는 외려 따뜻함을 느꼈다.
그가 정직처분을 받고 타 부서로 이동한 후에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사무소 유일의 책임자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결재부터, 전산 상으로 처리가 불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튀어나왔다. 모든 게 나 때문에 일어난 일들 같았다. 좀 더 참아볼걸. 이란 생각도 자주 했다.
나는 종종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고 싶어서, 내부고발이라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나 때문에 벌어진 듯 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감을 느껴서, 더더욱 일에 몰두했다. 그가 떠난 후 해가 바뀔 때까지 정말 많은 일들을 해냈다. 열심히, 또 완벽하게.
그런 모습이 인정받은 건지, 적어도 나와 업무적으로 엮였던 사람들은 주변에 나를 비호하기 시작했고, 그 덕에 따가운 시선들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어쨌든' 얘는 일을 잘한다는 인식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유명해지며 제주에서의 첫 일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