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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5.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0

아동학대 소설

서준에게 어머니의 맛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 라면은 최선의 선택이었으나, 라면만 먹는 아이가 골고루 먹는 아이를 당해낼 수 있을리가 없다. 그래서 형과 서준의 체격은 달랐다. 물론 둘의 체격이 다른 건 식사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아들 정말 잘생겼네, 어쩌면 이렇게 또렷하고 똘망똘망할까, 정말 착하네, 다른 여자애들이 너무 탐내겠네.


이것이 아들을 가진 어머니들의 기본적인 찬사라고 한다. 서준은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물론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듣기는 들었다. 다만, 항상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 아이에게 돌아가는 찬사를 구경할 때. 어머니는 서준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저 말을 하지 않았다. 찬사의 주인공은 언제나 형인 강준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잘생겼을까,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잘생겼을까. 


마치 오늘 갓 입양한 래브라도나 미소천사 사모예드, 곱슬곱슬한 비숑 프리제를 데려다놓고 집사가 한없이 사모의 눈길을 보내는 것처럼, 어머니는 몇 개월이 아닌 몇백 개월이나 이미 자신과 함께 살아온 첫째 아들을 매번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사랑하는 것은 몇 번이고, 몇 시간이고 쳐다보아도 질리지 않는 법. 한결같은 그 시선은 소유욕 같기도 하고, 연정 같기도 했다. 


비셔스 서클이다. 지구온난화로 여름이 예년보다 더워지면 에어컨을 더 사용하고 그러면 온난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고용을 줄이면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니 다시 고용을 줄이는 것처럼, 가진 자의 서클은 못 가진 자의 그것과는 반대로 돈다. 좋은 것을 챙겨먹으니 체격이 커진다. 체격이 크면 아이들이 승리의 가능성을 본다. 축구든 농구든 남들보다 빠른 성장 덕에 좋은 결과를 내니 강준 역시 재미가 붙어 더욱 운동에 힘을 쏟는다. 좋은 결과가 난다. 강준이 끼면 어떤 게임이든 이긴다는 인식이 생긴다. 그를 더욱 찾고 따른다. 사람이 모이면 중요 정보들이 오고간다. 좋은 정보들이 있으니 더욱 그는 아이들의 중심에 선다. 어머니의 사랑이 퍼부어졌기 때문에 강준은 인기인이 될 수 있었다. 매일 입고 가는 옷의 디자인을 어머니가 열심히 고심한 것 또한 그와 같은 인기의 원인 중 하나겠다. 


강준이 서준보다 체격이 좋은 것은 차별적 수혜를 받은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서준의 몫까지 강준에게 먹였다. 식사는 강준이 먼저 했고 남은 것이 서준 몫이었다. 강준은 어머니와 혹은 어머니 아버지와 동시간대에 식사를 했으며, 이때 고기 반찬 등 고급진 것은 큰 아들에게 몰아주었다. 서준에게는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이 주어졌는데, 십여 년 전에 강아지에게 사람이 먼저 먹고 남은 것을 내밀어주던 풍조와 비슷했다. 원래부터 그랬기 때문에 서준은 그런 상황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나이가 어리고, 몸집이 작고, 늦게 태어나 식사량이 적고, 가장 어리고 약하니 아직 함께 먹을 권리가 없어서 부모님과 형이 먹고 남은 것을 받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어머니 아버지와 형이 한우 꽃등심을 먹고 나면, 서준에게는 한두 조각과 남은 채소들이 주어졌으며, 어떤 날은 그마저도 없었고, 한동안은 어머니가 거기에 세제도 섞어 줬다. 


남은 찌꺼기만 먹은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있을까.  강준이 40kg을 찍었던 나이에 서준은 고작 32kg에 불과했다. 8kg 는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엄청난 차이다. 보통 9살 아이가 31kg정도고, 11살~12살 평균이 40kg이다. 물론 키에서도 차이가 났다. 5cm, 6cm씩 평균만 못한 게 서준이었다. 그러니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불리했다. 어머니는 원인을 제공한 본인의 책임은 제한 채 그에게 책임을 돌렸다. 역시 넌 형만 못해. 넌 역시 기대에 못 미쳐. 넌 역시 태어나선 안 될 아이였어.


처음부터 페어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걸 몰랐다. 너에겐 역시, 원래부터 자격이 없어, 라는 어머니의 말이 근거가 있는 줄로 착각했다.


반면 강준은 그 시선을 귀찮아했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에게 집중되어 쏟아진 덕분에, 그는 아이들의 중심에 설 수 있었고, 아이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기를 수 있었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그들의 시선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타고난 성격이라 여겼으며, 같은 핏줄이건만 자신만 못한 서준을 보며 경멸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꼈다. 어머니의 사랑은 당연한 것이었고, 귀찮을 정도로 달라붙는 관심과 걱정은 강준에게는 점점 중요하지 않은 디폴트가 되어 갔다. 그런데 같은 집에 사는 남자아이는 대체 뭐가 부족하길래 이 당연한 것을 조금도 얻지 못하는 것일까.  강준은 어머니가 흘리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서준은 그럴 만 하다는 것이다. 타고나길 그렇다는 것이다.  


스무 살이 지나고 서준은 그 집안에서 탈출했다. 탈출한 직후엔 좋았다. 더 이상 그런 꼴은 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세상은 어머니와 강준과 서준으로 이루어져있었다. 어딜 가도 어머니 같은 사람들은 강준을 사랑했고, 서준을 가만 놔두질 않았다. 이건 강준이 꺼, 서준이 너에게 줄 건 없어, 왜냐하면 너는 그런 자격이 없으니까. 그들은 큰 소리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서준은 항상 그 말을 들었다. 환청은 아니었지만 환청처럼 생생했다. 귀를 막으면서 소리치고 싶었다. 왜 어머니와 똑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야. 왜 어머니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하는 거야. 왜 어머니처럼 행동하는 거야. 


매년 약 15,000마일을 이동하는 혹등고래에게 나아진 환경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북반구의 철새들이 곤충의 밀도가 더 풍부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다들 모험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서준은 잘못 배정된 가족과 결별함으로서 불행과 멀어지거나 불행으로 이어지는 요소를 몇 가지 줄일 수 있을 줄 알았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고,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와 강준과 다를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세상 사람들은 그들과 그렇게 다르지만도 않았다. 사람이 모이면 지배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고, 밀려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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