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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7.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2

아동학대 소설

서준이 어머니와 강준의 다른 버전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비타민 A 레티놀이 결핍되면 야맹증, 안구건조증에 지속되면 실명까지 된다. 비타민B가 없으면 대사질환은 물론 뇌질환, 신경손상까지 일으킨다. 탈모, 집중력 장애, 우울증…. 영양소가 부족하여 얻게 되는 병은 다양하다. 사람들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지 않아서 병에 걸린 것을 남에게 알리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런데 왜 애정이 결핍된 아이들은 그걸 이야기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걸까. 부모가 학대해요, 혹은 학대했어요 라고 말하면 거짓말쟁이로 폄하되거나 관종으로 낙인찍힌다. 영양소를 제대로 먹지 않은 것에는 본인 잘못이 있지만, 애정을 받지 못한 것에는 본인 잘못이 없으니 오히려 더 당당하게 굴어도 아무 상관 없지 않은가. 도대체 이유가 뭘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모종의 음모라도 있는 걸까. 부모들이 더 중점적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일까.  


서준 역시 이 시스템의 영향력을 고려하여 함부로 자신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고백하지 않았다. 학교란 놀이터가 아니고 전쟁터다. 당장 진흙탕에서 삿대질하며 치고받고 싸우고 갈비뼈가 부러지고 얼굴이 부어오르지 않으면 어른들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 사이에서도 평가, 편견, 정치질은 엄연히 존재하며, 어른의 그것과 비교해 잔인하다. 그래서 서준은 거짓말쟁이였다. 학교에서라도 살고 싶었다. 숨 좀 쉬고 싶었다. 타깃이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너 왜 아침 안 먹고 와, 하면 어머니가 형만 주고 난 먹지 말라고 하니까 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라 아침에는 늦잠 자느라 라고 답했고, 눈밑에 상처난 거 뭐야, 라면 리모컨으로 맞아서가 아니라 졸다가 책상에 박았는데 하필 필통으로 골인했네,라고 답했다. 왜 다리를 절룩거려라고 물어보면 발목을 삐었다고 하지 허벅지살이 파였다고 답하진 않았다. 어차피 안 보이므로. 살아남기 위해서 말과 행동을 조절한다. 그것에 힘을 쏟았다. 그랬기에 그날의 사건은 서준에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약해져 있을 때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란 법은 없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선으로 확연하게 그어질 수 없다. 먹잇감을 찾는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 집단은 누군가가 앓아누우면 잊지 않고 약 사들고 찾아간다. 그때가 공략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감안하기엔 서준은 지나치게 오랫동안 굶었다.


서준은 그날 아침도 위장이 비어 있었다. 작전이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잔반 처리인데 아침을 챙겨주는 게 당연할 리 없다. 물론 일관성은 없다. 오락가락한다. 감정에 기반한 결정이니까. 줄 때도 있다, 물론. 그러나 그러고 나서 어머니의 기분은 급하락이다. 마치, 유치원생에게 선물을 준 다음 착한 어린이는 옆 어린이와 나눠야죠, 하면 마지못해 네 하며 급격히 얼굴이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남 시선 의식해서 한 일은 본인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데, 그녀는 그걸 혼자 다루지 못해 바깥으로 표출해야만 했으며 그 목적지는 대개 서준이었다. 아침을 먹은 날은 서준은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서준이 얼마나 못되고 부모의 은혜를 모르며 문제가 많은지에 대한 알차지만 근거 없는 주장을 읊는 어머니의 연설과, 그에 따른 단죄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쾌한 기분을 전가하고 시원해진 어머니의 기분은 크게 두 가지로 발현되었다. 다음 날도 아침을 차려준다. 혹은 이 상쾌한 기분을 지속하기 위해 원래의 방침으로 돌아간다. 서준에게는 어제 네가 잘못했으니까 못 준다는, 남들이 보기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이밀 수도 있으니 얼마나 맘 편하겠는가. 그 변주의 반복이었다.


물론 서준은 아이였고, 아이답게 적응력이 좋아서 그런 은근한 괴롭힘에 대한 해결책을 일찍부터 마련해 두었다. 저장 가능한 식품을 전날 몰래 챙긴다던가, 일찍 일어나 냉장고를 뒤진다던가. 어머니는 6시에 일어나니, 서준은 5시 30분쯤에 냉장고에 있는 음식의 일부를 지퍼백에 쌌다. 물론 너무 많은 양을 챙기거나, 어머니가 서준을 제외한 다른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예비해 둔 고기와 생선을 건드려선 안 됐다. 밥을 퍼낼 때도 밥솥 안의 밥을 티 나지 않게 위에서 살살 긁어 밥을 빼냈다. 미리 챙겨놓은 라면은 학교 사물함에 몇 개 들어 있었고, 어머니가 찬장에 넣은 뒤 존재를 잊어버린 과자도 있었다. 


원래라면 비상식량을 비축해놓는다. 그러나 최근 제대로 된 보급품을 손에 넣기 어려워졌다. 다년 간의 훈련으로 성장한 것은 서준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도였다. 어머니는 왜 밤 사이에 밥통 안에 예쁘게 맺혀 있어야 할 쌀알들이 부자연스럽게 누워있고 쓸려 있는지, 반찬들의 부피를 대충 확인할 때는 그대로인데 퍼올렸을 때는 어쩐지 내부가 비어 있는 것 같다든지, 분명 저번 주에 마트에서 쓸어온 생필품이 남았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 지 수상히 여겼다. 


아들, 혹시 라면 먹었어?
어, 아니.
여기 라면 다 떨어졌는데. 
아, 그저께 하나 먹었던가?


강준과 어머니와의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는 게 대부분이라 다행이었다. 어떤 날 어머니는 아침에 냉장고와 밥통을 열어보다가 중얼거렸다. 쥐가 있네, 집에. 지긋지긋한 쥐새끼. 그러고는 쾅쾅 소리를 내며 국자나 냄비를 내려놓았다. 서준은 숨죽이고 들었다. 아마 자신을 의미하겠지. 그럴 땐 며칠 간격을 두면 괜찮아졌다. 

라면 하나, 밥 100g도 서준에게는 아까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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