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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8.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3

아동학대 소설

문제는 강준이 대학에 가 버려서 생겼다. 책임을 전가할 자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적으니 서준도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아침을 굶는 나날이 이어졌고, 요란하게 배가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서 옆 옆 자리에 앉은 애마저 이쪽을 보면서 키득거리거나 수업 중이니 웃음을 참거나 했다. 

그날도 아버지에게 신나게 걷어차인 다리를 살짝 절뚝거리면서 맨 뒷자리에 털썩 앉았는데 책상 위에 삼각김밥과 햄치즈 크루아상 샌드위치가 보였다.


옆자리 김진석에 물었다. 이거 뭐야, 누가 나 주고 간 거야?

심드렁한 대답이 돌아왔다. 몰라. 


출처 불명의 음식. 하지만 유통기한은 넉넉한 걸 보니 쓰레기는 아니다. 일단 먹자. 쪽지도 없고 메시지도 없건만 서준은 겁도 없이 그 음식들을 순식간에 털어 넣었다. 아마 유통기한이 지났어도 먹었을 거다. 그리고 나서는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잊고 있었다. 누가 둔 걸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옆 옆자리가 불쌍해서 놓아줬던가, 아니면 누가 잘못 사서 버리려다가 둔 거지 싶었다. 


다음 날에는 다른 메뉴가 올라와 있었다. 전날 것도 매점 건 아닌 걸로 보아, 일부러 어딘가에서 사오는 모양이었다. 아마 근처 김밥집인 모양인데, 참치에 샐러드에 불고기 김밥이었다. 손바닥 만한 정갈한 박스가 세 개 놓여 있었고, 서준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 다음날은 에그치즈 토스트에 초코우유, 다음 날은 단호박 샌드위치에 핫 바. 연어 샌드위치. 팔뚝만한 롤케이크. 야채 튀김에 맥반석 계란. 단 한 번도 메뉴가 겹치지 않았다. 라면과 과자로 하루하루 연명하던 서준에게는 대단한 음식들이었다.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서준은 그렇게만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누군가가 본인이 선물 받은 걸 자신에게 버리거나, 누군가에게서 먹으라고 받았지만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거나, 아니면 공들여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옆자리 진석이 ‘야 너 미지의 누군가를 상상했어? 바보 같기는. 누가 너한테 반할 리가 있겠어? 사실은 내가 올려뒀던 거야’라고 밝히거나.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음식으로 길들이려는 게 틀림없으니 의심을 해볼 만도 한데, 음식을 갖다 놓는 상대방이 궁금하진 않았다. 음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다음 메뉴는 뭘까 하고. 그게 이 주 째에 접어드니 의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물어봐도 아이들은 잘 모르겠다는 말뿐이었다. 그쯤 되면 뭔가 부탁이라도 받았나 의심 해 볼 만도 하건만, 서준에게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에게 덜 맞을 수 있을까, 어디서 음식물을 조달할까 같은 것이 머릿속을 점령한 상태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건 3주 째에 접어들고 나서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자신의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는 서준에게 일부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전에는 서준이 등교하기 전에 모든 작전을 끝냈었는데 그 날만은 꽤 늑장을 부렸으니까. 십 분 뒤면 담임이 교실이 들어올 거라 다급히 뒷문을 연 서준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오늘의 메뉴를 놓고 가는 여자를 발견했다.


앗, 혹시 이제까지 음식 두고 간 거 너야?


여자애는 갈색 단발머리에 안경을 끼고 있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고마워, 이거 잘 먹을게. 라고 말하면 이쪽으로 눈길을 줄지 알았는데, 여자애는 끝까지 서준과 눈을 맞춰 주지 않았다. 여자애는 사라졌고 서준은 안심했다. 이젠 안전하다. 누가 주는 건지 알았으니까. 독은 안 들어있구나. 하지만 그 음식들은 독이 들어있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독이 아니었다. 나에게 관심을 줘, 그렇지 않으면 널 미워할 거야, 라는 독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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