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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9.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4

아동학대 소설

나에게도 드디어 사랑을 주는 존재가 나타났다.


당황스러웠다. 반가웠다. 이해할 수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결론은 아래로만 흘렀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행운이었다. 나 같은 걸 좋게 생각하다니. 그냥 호감을 품은 것에 지나지 않고 선물을 하다니. 그것도 일회성 선물도 아니고 줄기차게 선물을 하다니. 그녀는 서준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 서준은 새삼 자신의 ‘아무 이상 없음’ 연기력에 감탄했다.


진석이 말했다.


참 나, 세상에 나 그동안 입막음 당하느라 힘들었다. 
너한테도 뭐 줬냐?
뭘 준 건 아니지만 누가 두고 가는 건지 알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근데 의외로 네가 캐묻진 않아서 어려울 건 없었다.
그랬군. 


서준은 이제서야 너도 먹을래?라고 진석에게 건성으로 권했을 때 난 아침 너무 먹어서 배불러. 라면서 그가 사양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너, 쟤한테 보답 안해?
무슨 보답?


진석은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는 얼굴이었다. 넌 너밖에 모르는 몹쓸 자식이었구나 하는 얼굴.


야, 한 달을 얻어먹고서 그냥 내버려둔다고? 와 이런 놈을 뭐가 좋다고 정성이야. 이해할 수 없네. 


진석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진석과의 대화는 우호적으로 끝난 적이 없었다. 그는 서준을 비난, 폄하하는 말을 주로 했지만, 서준은 무감했다. 집에서는 더 심한 말을 들으니, 상대방이 악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캐치하는 데 느렸다. 그저 나같은 인간과 말을 섞어 주니 고마운 친구의 일종이겠거니 하고 판단했다. 


여자애의 이름은 백수아였다. 서준은 수아에 대해 생각했다. 수아는 서준이 집에서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 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런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서준은 자신이 어떤 위치의 계급에 해당하는 지 알게 되었던 여름을 떠올렸다. 중학교 때였다.


그 여자가 승낙을 했던 건 전화를 건 사람이 아이가 아닌 대희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대희 엄마인데요, 로 시작하는 대화는 어머니에게는 협박과 같았으리라. 대외적으로는 멀쩡한 정상적인 학대따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연기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괜찮대. 너 오늘 자고 가래.


그 여자가 왜 승낙했는지, 승낙할 수밖에 없었는지 당시 서준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랬다. 안면도 있는 성인이 전화를 걸었으니 원래 하던 것처럼 다짜고짜 집에 데려오거나,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예정을 취소할 수는 없었겠지. 


대희와는 초등학교 육학년때부터 함께 다녔다. 어딘가 말쑥했고, 머리는 제 때 산뜻하게 깎여있었고, 시즌마다 새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친해진 계기는 같은 아파트에서 학교로 출발하니까. 그러므로 대희 역시 근본적으로는 서준에게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다가 나왔을 뿐이다. 다크 판타지 계열 만화책을 두고 이게 좋고 이건 현실성이 없다 평론가처럼 주고받던 도중 들먹이게 되었다. 그 만화책은 주인공이 계부에게 학대를 받다가 초능력을 각성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대희는 역시 계부모는 문제가 많다, 친부모는 그렇지 않은데 라는 뻔한 편견을 말했고, 서준은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 집도 많이 때린다, 훈육이 아닌 것 같다 정도까지 말을 꺼냈다. 그러자 대희가 정색했다.


부모 이름에 먹칠하는 거 아냐. 부모랑 싸울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난 그런 우울한 소리는 듣기 싫어.


서준은 말을 멈췄다. 그래, 알았어. 다른 얘기 하자. 남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 누군가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는 것, 얼굴 표정이 굳는 것, 표정이 사라지는 것, 표정이 바뀌는 것, 눈을 질끈 감는 것, 한숨 쉬는 것, 딴청 부리는 것, 이쪽을 노려보는 것, 대답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 전부 무서웠다. 갈등 요소가 있는 대화는 피하고 다른 주제로 대화하면 된다. 상대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않은가. 서준은 자신의 미소가 비굴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서준은 왜 대희가 그렇게 반응했는지 곧 알게 되었다. 저녁을 먹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희 어머니가 불렀다.


대희야, 밥먹자. 서준이도 나와.


포근한 목소리였다. 왜 지금 날 부르지. 서준은 의아했다. 항상 가족들이 밥 다 먹고 남은 반찬을 먹는 게 당연하기에, 먹는 데도 순서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들이 식사를 하고 나면 첫째 아들, 그 다음이 우리 차례겠지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는데. 128제곱미터, 39평 아파트의 중심에 있는 대희네 세라믹 6인 가족 식탁은 주방을 면하고 있었으며 원래는 중앙부에 작은 화초와 각설탕그릇이 놓여 있었다. 대희 어머니가 아까 커피를 타줬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화초 자리에는 대구 곤이, 홍합, 꽂게 등이 듬뿍 들어간 해물탕이 메인 요리로서 놓여 있었으며, 황태무침, 마늘쫑볶음 같은 반찬들이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는 비슷한 양의 밥, 그 옆에는 수저와 젓가락이 도자기 받침대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 대희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대희네 형이 있었다. 자신의 자리도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서준네 집같지 않았다. 서준은 집에서 밥먹을 때의 평소 풍경을 떠올렸다.


먼저 부모와 강준이 밥과 반찬을 소비하고 자리를 뜬다. 거실로 가서 TV를 보던지, 제 방에 가서 쉬거나 게임을 하던지. 그러면 강준 차례가 왔다. 어머니는 마치 개밥을 주는 것처럼, 그런데 그냥 개가 아니라 못생긴 나머지 멸종되고 만 턴스피트(Turnspit)에게 밥을 주는 것처럼 밥그릇을 함부로 던졌다. 야, 밥먹어. 남아 있는 반찬은 그리 많지 않았고, 아버지와 강준이 대여섯가지의 반찬에 메인 디쉬를 받는 것과 다르게, 서준은 그들이 먹고 남은 메인 요리와 한 가지 반찬 정도를 받았다. 반찬이 많이 남았을 때는, 한 접시에 모두 모여 있기도 했다. 그나마도 감사한 일이었다. 배급받는 품목에는 정치경제 이슈마다 판이 뒤집어지는 암호화폐처럼 기복이 있었다. 찬밥과 김치일 때도 많았다. 밥통에 따끈한 밥들이 잔뜩 남아있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굳이 찬밥을 줬다. 그래도 배고픈 것보다는 나으니까 재빨리 수저를 들면, 어머니는 식사를 하느라 도망치지 못하게 된 서준을 향해 비난을 쏘았다. 넌 어떻게 수저 쥐는 법도 그렇게 못나냐. 다른 데 가서 내 망신을 시킬 셈이냐. 그러고 보니 어제 시킨 건 왜 제대로 안했냐. 설거지 얘기였다. 제대로 했는데요, 라고 하니까 어머니가 이를 갈았다. 너 제대로 안 닦아서 그릇에 세제가 남았었잖아. 내가 못 찾아냈으면 어떻게 할 거야. 너 일부러 그런거지? 아닌데요. 아니, 일부러가 틀림없어. 강준 아빠, 이리 와봐요.


그녀는 서준 아빠라고 그를 부른 적이 없었다. 


서준이가 일부러 해놓고는 아니라고 또 우기고 있네요. 그런데 말대답 하고 반항해요. 엄마한테 함부로 대해요. 거실에서 TV를 보느라 대화를 듣지 못한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만을 믿었다. 너 이놈 새끼 또 엄마한테 대들었어? 안 그랬어요. 오, 말 대답까지. 사과하지 못해? 큰소리에 전등이 징 울렸다. 또 시작될 것이 틀림없는 스릴러를 끊기 위해서는 억울해도 사과를 해야 한다. 하지만 서준이 억지로 입을 떼는데 드는 시간, 순응을 하여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그 몇 초의 침묵을 아버지는 참지 못했다. 이 새끼 정신머리 빠진 거 봐. 어제 안 때렸더니 또 이러네. 넌 매일 맞아야지만 정신을 차리는 구나. 내가 얘를 때리기 싫은데 얘가 맨날 날 때리게 만들어. 아뇨, 아버지 잘못했어요. 제 잘못이에요. 이제 와서 맞을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 사과냐? 너 날 뭘로 보는 거야? 당장 이리 나와! 아직 밥은 반도 못 먹었다. 맞은 편의 어머니는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계획은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두 시간의 폭행이 끝난 다음 아버지는 시원한 얼굴로 놓아주었고, 30분 정도 지나 어머니가 나타나서 아버지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네 잘못으로 아버지가 손목이 아프시다, 가서 주물러 드리면서 죄송했다고 사과해라.


그런데 대희네 풍경을 보라. 동시에 식사를 한다. 폭력도 없다. 그리고 대희 어머니는 대희 숟가락 위에 해물 몇 점을 골라서 얹어주었다. 이것도 좀 먹어. 


이럴리가 없어. 서준은 놀라지 않은 척 하며 그들의 식사 풍경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강준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넌 이따 먹으라면서 거실에서 내쫓겨 왔으니 함께 자리를 앉은 것도 신기했는데, 숟가락 위에 요리를 얹어 주는 지나친 다정함이라니. 


그것을 빤히 쳐다본 것은 네 자식 말고 손님인 나에게도 달라는 무언의 압력은 아니었다. 신기해서였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똑바로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희 어머니는 다소 무안한 듯한 기색으로, 서준의 숟가락에도 반찬을 얹어주었다. 서준아, 너도 많이 먹어라. TV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를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연기인가? 나라는 손님이 왔다고 여기 있는 네 사람이 단란한 가족 연기를 시작한 건가?


아니다. 연기가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이 일반적이지 않은 거다. 그런 증거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이들과의 대화에서 새어나왔다. 어제 엄마랑 밥먹는데. 엄마랑 밥을 먹어? 서준은 어머니와 마주 보고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어제 형이랑 뭐 먹다가. 형이랑 뭘 어떻게 같이 먹는단 말인가. 형이 다 먹고 나서야 내가 밥 먹을 자격이 생기는데. 반찬을 두고 싸웠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동시에 식탁에 앉았다는 말인데. 수없이 들으면서도 부정했다. 그럴리가 없어. 그냥 하는 말이겠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야. 아니야. 내가 착각한 거야. 우리 집도 이상한 건 아니야. 따로 먹는 집도 많은데 말을 안 하는 걸거야. 쟤가 거짓말하는 거야.


대희 어머니는 한 번만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준 게 아니다. 서준이 먹어치우고 나서 몇 분 뒤 또 다시 해물을 잘라 얹어주었다. 어유 잘 먹네. 접시에 좀 덜어 줄까? 아뇨 괜찮아요. 아, 접시에 좀 덜어 줘. 대희 아버지가 거들었다. 본인은 괜찮다는데 접시에 커다란 게를 얹어 내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어서 많이 먹어. 대희는 그 장면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자기네 집안에서는 일상이고 평범하며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이런 일이 하루에 한 번, 많게는 두세 번, 그리고 일주일 내내, 일 년, 이 년을 반복한다. 대희가, 강준이, 다른 모든 아이들이 수백 수천 번을 받고 있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받아봤다.


서준은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대희 방으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뒤 대희는 제 방으로 돌아와서는 말했다. 


너 진짜 말없더라. 밥만 먹고. 우리 엄마가 너 원래 말 없는 애냐는데. 야, 너 뭐해. 너 울어?


이상을 눈치챈 대희가 구석에 앉아 있는 서준의 정면으로 파고들어왔다. 아까의 대화가 생각났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설명하겠는가.


이 만화책 진짜 사람 울게 만든다. 너도 함 봐.


서준은 엉뚱한 만화책을 가리키면서 현재 울고 있는 게 그것 탓인양 변명했다. 대희는 속아넘어간 것 같았다. 대희네 집이 싫어졌다. 그 집에 있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고문이었다. 

몰랐으면 좋았을 걸. 몰랐으면 괴로움이 배가되지 않을텐데. 다른 집들도 우리집 같다고 알고 지내는 게 더 나은데. 스스로에게 했던 거짓말의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대희네 집에 오는 게 아니었다. 서준은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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