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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29.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5

아동학대 소설

왜냐하면 대희네 집을 나오면 서준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어차피 당할 거라면 머리가 돌아있는 게 낫다. 이건 다른 집에서도 일어나는 일반적인 일, 이라고 착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의 식사로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게 되고 나서도, 그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서준은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어딘가 못나서다. 잘못되어서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남의 기분을 거스르는 뭔가가 있는 거다. 원래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지 않은가. 나는 어딘가 부족한 데 그 점조차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백수아는 뭘 모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알게 된다면, 지금처럼 서준에게 호감을 가질까? 서준의 정체를 알게 되는 그 날로 지금까지의 호감을 접고 화를 내진 않을까? 


백수아의 정체를 알게 된 그날, 어머니에게 이유 없이 얻어맞고, 거실에 뿌려진 반찬을 주워 먹으라는 요구를 순순히 실행하면서 서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나 비참하지, 반복되면 그 행위에 익숙해지고 오히려 달갑게 생각한다. 맞는 것이나 혹은 새로 발명한 모욕 방법보다는 나으니까. 그래서 한편으로 서준은 생각했다. 이런 것이 굴욕적이지 않다니, 나는 역시 어머니가 말하는 대로 어딘가가 부족한 인간일 지도 몰라, 아니면 인간이 아닐 지도 몰라.


그 며칠 뒤, 서준은 그 여자애와 함께 집에 가게 되었다. 같이 집에 갈래, 그렇게 물어본 말이 선뜻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여자애의 말수는 많지 않았다. 이쪽을 쳐다보는 것도 아니라서 서준은 여자가 음식을 가져다 준 의미가 처음에 자신이 추측했던, 유통기한이 지나서 같은 이유가 아닐까 헷갈렸다. 어깨까지 오는 밝은 밤색 단발은 얇고 부드럽고 바람에 수시로 살랑거려서 시선을 빼앗았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지 않은 외진 흙길, 텃밭이 모여 있는 공터를 함께 걸으면서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구고 어떤 만화와 책을 좋아하는지 알아냈다. 평화롭고 낙천적이었다. 그 애와 만나면 맨발로 시골 별밤이 펼쳐진 흙길을 천천히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애는 너를 좋아한다는 둥 하는 낯부끄러운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서준은 수아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새로 배정받은 반에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애를 발견한 것처럼 편안했다. 사람이 포근할 수 있고, 굳이 껴안지 않아도 포근함을 전달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애의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과한 유혹이 숨어 있지도 않았다. 


같지는 않았다. 말해볼 수록 지독하게 달랐다. 살아온 세월도 취향도 좋아하는 작가도 미래 계획도 가치관도 하나하나 비교할 수록 일치하는 게 없어서 서준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에서 자신을 피해온 것만 겪어온 나머지 반절을 만났구나 생각했다. 달라서 좋았다. 말이 통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의견이 비슷하다는 것이고, 그건 서로에게서 배울 게 없다는 거니까.


수아는 알앤비부터 레게, 인디팝부터 노이즈락까지 안 듣는 게 없었다. 한국에서는 전혀 안팔리는 생소한 프랑스산 작가나 몇백 년 전의 시인을 좋아했다. 성격적으로 모나고 꼬인 부분도 없었고 열등감이나 지나친 우월감도 없었다. 지루할 정도로 수용적인 가정에서 자라서 본인도 그랬다. 함께 교정이라도 걷고 있으면 말 붙이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럴 만도 했다. 쾌활하고, 사물을 보는 시선이 독특하고,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한데 밖으로 표출하거나 고집부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단점이 있을 만도 한데 서준에게 보여주지 않는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없는 건지 아니면 서준이 눈이 멀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준은 그 애가 알면 알수록 좋아졌다. 그리고 점점 수아가 어려워졌다. 상대방이 호감을 표현해서 만나기 시작했으니 쉬운 퍼즐이고 이기는 게임인 줄 알았다. 왜 나 같은 것에게 선물 공세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특이한 걸 수집하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나 역시 수집한 것일까. 직접 그렇게 물어봤지만 수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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