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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nameisanger Oct 30.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6

아동학대 소설

테라리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녀와 두 시간을 얘기한 어떤 날에 서준은 그렇게 적었다. 밀폐형 테라리움은 그 자체로 다른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흙과 식물을 유리병 안에 넣고 밀폐하면 수증기가 비가 되어 내리고 그걸로 식물이 자라고 수증기가 되는 무한 반복의 완성형 개체가 된다. 서준과 수아를 어딘가에 따로 감금할 수 없을까. 수아를 만나고 수아와 걷고 수아와 얘기하게 되면서 서준은 집에 가는 것이 덜 힘들어졌다. 그러나 욕심이 생겼다.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서준은 학교를 그만두고 혹은 학교를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숙식알바 같은 게 있는지 알아보았다. 집을 빌려서 수아에게 같이 살자고 하면 어떨까.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존감의 회복이었다. 긍정받지 못하는 게 거듭되어 자격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을 뿐이었다. 여기 어머니와는 정 반대로 자신을 평가해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유도 없이 포옹을 해준다. 말을 들어준다. 반대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답해준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등을 쳐다보지 않아도 된다.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찾던 것은 어머니에게 있지 않고 수아에게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기대가 한없이 비관적인데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대안이 생겼다. 그런 면에서 서준은 수아에게 진실하지 않았다. 애정을 주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누구라도 좋았을 것이고 수아가 아니었어도 서준은 매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저울은 반대쪽으로 기울었다. 상대가 더 필요한 것은 이제 수아가 아니고 서준이었다. 

수아가 그것을 못 느낄리가 없었다. 


점차 대답이 짧아졌다. 앞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건성의 대답이 돌아오면 다행이었다. 질문과 다른 대답이 돌아왔을 때는, 아, 듣고 있지 않구나 깨달았다. 입 안의 수분이 부족해 말할 때마다 깔짝거리는 기분 나쁜 소음이 났다. 그녀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서준은 불안해졌다. 어머니의 눈동자. 이쪽을 감정 없이 바라보던 차가운 색의 눈동자. 넌 부족하잖니,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에 좋은 점이라곤 없잖니.


불안해서 자꾸 말이 헛나갔다. 말 실수를 하고 정정하는 걸 두어 번 했다. 수아의 표정에 그전과는 다른 요소가 살짝 섞인 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서준은 확신했다. 역시 나에게 실망하는 중이다. 결국 서준의 본질을 알게 되고 말았다. 평균만 못한 나머지 어머니에게서 그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만족스럽지 않은 대화가 오고간 날, 오늘은 나 먼저 집에 갈게 라는 말을 들은 날 서준은 대책이 필요해졌다. 수아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로는 부족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서준은 어머니와 강준을 떠올렸다. 참고할 만한 간접경험이 그것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챙겨주고 사랑을 베풀어주고 내침 당하거나 귀찮다는 말을 들어도 꿋꿋한 어머니와, 그 애정을 당연시 하는 강준. 그를 따라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몇십만 시간을 함께 같은 집에 있었다. 그와 어머니의 문답을 부럽게 쳐다보곤 했다. 재현하면 된다. 재현할 수 있다. 강준인 척 할 수 있다. 그러면 수아는 서준이 서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강준처럼, 서준은 다시 수아의 뜨거운 관심과 호의를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래서는 안되었다. 스탭이 꼬이고 넘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준은 둘을 망쳤지만 어디서부터 망쳤는지 어떻게 망쳤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설픈 강준 흉내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로 보이기 최적이었다. 강준의 내면은 물론 그러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 연마한 소셜 스킬 덕에 쾌활한 웃음과 산만함과 발랄함으로 그걸 가릴 줄 알았다. 서준이 본 것은 어머니 앞에서나 볼 수 있는 그의 방심한 모습이었지만 서준은 그걸 몰랐다.


나 오늘은 먼저 집에 갈 게는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되었다. 수아가 그런 통보도 없이 혼자 집에 가 버리기 시작했으므로. 그 애의 교실에 갔을 때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서준은 십오 분 정도 더 기다리고, 수아가 아직 교내에 있지 않을까 싶어 책상 주변에 가방이 남아있나 살폈지만 없었다. 너무 늦어서 그랬나. 하지만 그 다음날에는 수아는 다른 여자아이와 함께 돌아가면서 서준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서준은 그녀가 왜 실망했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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