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ynameisanger Oct 30. 2022

개로 길러진 아이18

아동학대 소설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디부터? 


서준은 싸움을 시작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수만 번을 어머니에게 거절당했다. 수만 번을 그 결과로 뺨을 맞고, 거실 바닥을 끌려 다녔다. 대꾸를 하면 더 큰 벌을 받는다. 항변하면 부모에게 반항한다고 더 오래 맞는다. 그냥 조용히 있자. 말해 봤자 이미 돌아서 버린 수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진석이 제공한 정보는 계기에 불과할 뿐이었지 않을까. 나란 사람에게 무슨 매력이 있단 말인가. 매력이 있었다면, 손톱만큼이라도 괜찮은 구석이 있었다면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백수아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좋은 감정이 있어 보였던 순간이 오히려 신기한 일이었다. 그녀는 서준의 진실을 본 것이다. 인간같지 않은, 인간 이하의, 그래서 어머니에게도 미움받을 수밖에 없는 서준의 무가치함을 꿰뚫어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되돌리려는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안 될 것이다.


진석도 마찬가지다. 진석이 더 얼마나 큰 공격을 가해 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고민 상담을 한답시고 이미 공유해 버린 정보가 너무 많다. 알려진 약점이 너무 많았다. 그가 한 행동은 괘씸했다. 부당하고 억울했다. 그러나 진석은 더 심하게 굴 수도 있었다. 백수아 뿐 아니라 반 전체에 서준의 험담을 해서 서준을 반 아이들 전체에 악당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잘못 건드리면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서준의 앞에 가장 크게 가로놓인 장애물은 운명이었다. 어머니와 강준과 서준처럼, 이번에는 수아와 진석과 서준일 뿐이다. 배역이 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라면 그건 배역을 준 사람들의 잘못이 아닐 지도 모른다. 서준의 잘못이고 서준의 운명이며 서준이 태어난 이유가 그런 것이지 않을까. 그것을 악마와 천사와 요정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너는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미움을 받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사랑을 보여주는 것을 구경하는 운명이란다.


두 사람이 교정을 거닐면서 웃고 팔짱을 끼고, 그러다가 서준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질렸다는 얼굴로 돌아서는 것을 봤다. 한 번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쳤다. 괴로웠다. 이제 집에 가는 것은 다시 예전처럼 힘들어졌다. 그리고 학교에 오면 집만큼 힘겨웠다. 맘 편히 있을 곳이 없었다. 서준은 자꾸 오른쪽 귀에서 웬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자는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도 너의 존재를 바라지 않아, 사라져버려. 그리고 그 말을 따라 몇 번 옥상에 서 있었다. 하지만 옥상은 떨어져봤자 죽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야마카시!’라고 외치면서 건물을 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착지한, 환생한 고양이같았던 3학년 선배의 퍼포먼스를 떠올렸다. 이곳은 죽을 수 없다, 그리고 죽지 말자고 다짐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서준은 진석에게 복수할 방법을 고민했다. 범죄가 아닌 범위에서, 진석과 수아에게 복수할 방법이란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꽃고 피를 철철 흘리는 상태로 나타나는 건 어떨까 싶었지만, 그들에게 자신이 중요한 존재일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눈앞에서 자살을 한다고 해서 그 충격이 오래 갈까. 공부를 해서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독기는 때때로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서준은 진석과 수아가 사귀기 시작한 지 6개월 째에 전교에서 30등 안에 들었다. 그전에 중간 정도 성적이었던 걸 고려하면 폭발적인 발전이었다. 선생님들의 눈도 달라졌다. 어디를 지망하느냐는 말에 한의대를 가겠다고 했다. 누군가를 치료하거나 침술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의대나 법대를 가면 진석과 수아를 후회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특히 수아를 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진석이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상상만 하면 먹지도 쉬지도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 

이전 17화 개로 길러진 아이17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