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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5. 2022

8. 맥문동 꽃밭 2

   

  좀돌팥 줄기와 잎들이 작은 산처럼 쌓였다.

  맥문동이 드러났다. 이파리도 작은 데다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다.

 좀돌팥에 덮이지 않았더라면 옆에 있는 맥문동처럼 씩씩하게 진초록 잎도 키우면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 숨통을 틘 이 아이들은 꽃을 피우지 못할 만큼 야위고 말라 있었다.

  풀을 걷어냈다고는 하나 좀돌팥과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맥문동 사이사이에서 좀돌팥이 빼곡하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경이 중요하다. 풀을 뽑아내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이 아이들이 옆에 있는 아이들처럼 회복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마흔에 대학을 간 나도 그랬다. 등록금을 대 줄 형편이 안 되었던 집안 형편 때문에 나는 중학교 진학을 못 했었다. 편식이 심해 좀돌팥에 뒤덮인 맥문동처럼, 회충이 있는 아이처럼 얼굴이 노랬던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3학년 아이보다 키가 작았다.

  체구가 작아 공장에도 못 갔던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것은 책 구걸이었다. 책은 친구고 연인이고 자존심이었다. 책만 있으면 다른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학력 위조를 하고 제약 회사에 들어가서는 일일 일 책 읽기를 했다. 그러다 공모전 글을 써서 몇 번의 상을 받았다. 내가 상을 받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주던 사람은 나를 결혼 상대로 찍었다.

  두 번에 아들 한 명과 딸 셋을 낳았다. 그리고 우연히 백일장에서 두 번의 장원을 했고 수필 부분 신인상도 받았다. 서른여덟 봄에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고는 수능을 보고 문예 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마흔에 스무 살의 아이들과 같은 1998학번이 되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므로 집약적으로 공부를 했다. 검정고시 공부를 할 때는 계절도 잊었다. 봄꽃이 왜 안 피나? 했는데 어느새 다 져버리고 없었다. 대학 때는 청강을 하느라 시간표가 빽빽했다.  

  조기 졸업을 하고 그다음 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목까지 차올랐으나 남편이 하는 일이 시쳇말로 폭망 하고 말았다. 몇천의 빚까지 졌는데 네 아이는 중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말인즉 대학 입학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를 미뤄두고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몇 달 동안 머리가 아팠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너무나 커 감당이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머리가 아팠다. 너무나 아파 엠알아이까지 찍었다. 지독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나중에 알았다. 차라리 일을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두통이 거의 사라졌으니까.

  아들과 세 쌍둥이 딸들까지 대학을 다 졸업시키고서야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설에서 동화로 전향을 했다. 독서 지도를 시작하고는 숨도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동화책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과로로 숨을 못 쉬고 쓰러져 몇 번이나 응급실을 갔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학교에 다녔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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