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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20. 2022

30. 누가 이기고 누가 졌을까?

         

  고양이 눈 같은 하늘빛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아랗다. 딸네는 길고양이 두 마리를 구조해서 키우는데 그중 마리라는 고양이 눈이 에메랄드빛이다. 마리를 보면 물속에 빠진 하늘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바로 그 느낌이다. 바람도 역시 아오리 사과를 깨문 소리처럼 상큼하다.

  일없이 아파트를 돈다.

  올여름 내내 찍힌 발자국 위로 오늘의 발자국이 덧대지고 있을 것이다. 아파트 정원을 여름 내내 돌다 보니 모두 내 개인 정원처럼 소중하게 여겨진다.

  맥문동, 가시나무, 수국, 속새, 철쭉, 층 꽃, 좀작살나무, 남천 이름을 잘 모르는 나무와 꽃과 풀들이 제 모습 그대로 가을 속에 들어와 내게 말을 거는 것도 같다.

  축대 아래도 시찰하듯 가보았다. 얼마 전에 풀 깎는 소리가 들리더니 바닥에 있는 좀돌팥은 다 잘리고 그 밑에 깔려 있던 풀들이 올망졸망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축대를 오르는 좀돌팥은 이미 꼬투리를 맺었다. 어떤 것은 익어 콩을 날리고 빈 꼬투리만 뒤틀려 있었다. 바닥에 퍼진 씨앗들은 내년이면 또 올라와 바닥을 덮거나, 축대를 기어오르거나, 나무나 꽃들을 타고 오르겠지.

  그렇게 타고난 것을 어찌하랴. 싶지만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나도 어찌할 수 없다. 가을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 오면 좀돌팥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이나 우선은 휴전이니 누가 이기고 진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휴전이 없는 편두통을 다스려야 할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돌팥을 뽑아내듯 편두통과의 싸움을 시작해볼까? 약만 먹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볼까 하는.

  맥문동 자리도 가보았다. 보랏빛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가 어느덧 동그란 구슬 같은 것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좀돌팥 더미에 덮여 있던 맥문동은 잎이 누렇게 변했다.

  “내년에는 예쁘게 꽃을 피우거라.”

  쓰다듬어주고는 깍지 낀 팔을 하늘로 올리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언제 몰려왔는지 흰 구름이 떠 있다. 그렇게 언제 왔는지 모르게 시간은 오고 또 가고 있다.

  좀돌팥과의 전쟁을 끝낸 나의 가을은 여느 해보다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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