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서진 Oct 14. 2022

1. 좀돌팥을 발견하다

 



 

  편두통이 시작이다. 일어나 진통제를 삼켰다. 새벽 세 시다.

  창문을 열어 두었더니 요란한 빗소리가 들렸다. 자장가 삼아 잠을 이루려고 했으나 진통제에 들어 있는 카페인 성분 때문에 좀체로 잠이 오지 않는다. 약을 먹는다고 금세 두통이 가시는 것도 아니라 베개 끝을 잡고 뒹굴었다. 뿌리도 없는 잡다한 생각들이 보풀처럼 들고일어났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비도 그쳤고 머리도 갰다. 편두통이 올 때면 세상만사가 젖은 옷처럼  꾸질 꾸질 하다 머리가 개면 햇살에 보송하게 마른빨래처럼 개운해진다.  

  날은 흐려도 비가 와서인지 나뭇잎마다 초록빛 윤기가 돌았다.

  밥도 안 먹고 사료를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밤새 비가 왔으니 길냥이들의 밥이 무사한지 보기 위해서다.

  길냥이 밥그릇은 재활용 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모아두는 커다란 철통 밑에 있다. 아파트를 샅샅이 둘러보다 간신히 찾아낸 자리였다. 이사 오기 전 살았던 아파트는 1층 지하 창문이 보이는 기둥 아래 비를 가릴 수 있는 넓은 공간들이 있어 길냥이들의 밥도 놓아두고 집도 마련해 줄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새 아파트에 입주하니 그러한 공간이 한 군데도 없었다.

  새 아파트지만 어디서 왔는지 길냥이가 쓰레기를 뒤지는 것을 본 뒤로 분리수거장 철통 밑에 밥을 놓아준 것이 3년이 지났다. 어제 놓아둔 사료도 거의 다 먹고 캔도 다 먹었다. 고양이들이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사료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야 길냥이들이 밥을 잘 먹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사료를 쏟아 놓고 일어서는데 내 눈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료를 놓아주는 곳 바로 옆에 심어진 꽃댕강나무다. 뭔가 이상해 이파리를 당겨 보았다. 그러자 이파리들이 쭈욱 달려 나왔다.  

  “세상에나!”

  그러니까 좀돌팥 잎들이(큐알코드로 이름을 알아냈다.) 꽃댕강나무를 뒤덮은 채 햇빛을 다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걷어내자 본래의 꽃댕강나무 잎이 드러났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뜯어낸 좀돌팥 잎과 줄기들이 소복하게 쌓였다. 땀도 나고 배도 고팠지만 뿌듯한 마음에 손바닥을 짝짝 치면서 돌아서다 보았다. 꽃댕강나무들의 가녀린 다리에 똘똘 말려 있는 좀돌팥 줄기들을.

  배도 고프고 기운도 없어 땀범벅을 한 채 집으로 들어오는데 똥을 싸고 뒤를 안 닦은 것처럼 자꾸 뒤가 켕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