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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4. 2022

2. 전쟁 선포



둔하게 머리가 또 아파와 관자놀이를 누르며 일어났다.  

  편두통이라는 녀석을 끌어안고 산지도 어언 30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생리 때만 아프더니 갈수록 통증이 잦아졌다. 진통제가 한 알에서 한 알 반, 두 알, 두 알 반으로 늘었다. 그 뒤로는 위통까지 겹쳤다.

  어느 날 언니랑 서울 친정에 올라갔는데 두통이 일어났다. 통증이 심해지니 속까지 울렁거렸다. 언니랑 같이 병원에 가는 도중 길거리에서 왕창 토를 하고 말았다. 기운도 없고 식은땀도 나서 아무 데나 드러눕고 싶었다.

  간신히 병원에 가 편두통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 처방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먹었는데 세상에나! 약을 먹은 지 1분도 안 되어서 두통이 사그라져 버렸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발을 옮긴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는 걱정이 없었다. 약이라는 든든한 지원책이 있으니 두통이 시작되면 바로 먹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진통 횟수도 잦아지고 약을 먹은 지 서너 시간이 지나야 통증이 갰다. 언제 통증이 올라올 줄 모르니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어제도 약을 먹었으니 오늘은 좀 견뎌 보려고 이불을 개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9개 동에 481세대가 산다.

  그중 우리 집은 맨 끝 동이고 2층이다. 7개 동이 빙 둘러있는 아파트 가운데 왼쪽으로는 놀이터가 보이고 분리수거장과 녹색 정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문 밖으로 2층까지 올라온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이름은 ‘나나’다. 나의 나무라는 뜻이다. 정자 옆에는 분수가 있어 여름에는 두 차례 분수를 트는데 밤이면 개구리 소리가 낭랑하다. 가끔 산책 겸 아파트를 돌기도 했는데 그동안 좀돌팥 풀을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발은 자연스럽게 어제 그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꽃댕강나무다리에 감긴 좀돌팥 풀 뒤 처리해주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어제 뜯어낸 좀돌팥 더미가 햇볕에 절구 어진 채 말라 있었다. 그것들을 한쪽 발로 밀어 두고 쪼그리고 앉아 돌돌 말려 있는 풀 줄기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좀돌팥에 감긴 꽃댕강나무들은 사이사이 죽어 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전쟁 선포를 했다.

  혹시나 아파트에서 자라고 있는 좀돌팥을 발견하게 된다면 내가 다 뽑아내 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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