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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4. 2022

3. 진퇴양난

   

    

  승패가 이미 가려져 있는 전쟁을 선포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아파트 한 바퀴를 돌기로 했다.

  먼저 좀돌팥 덩굴을 떼어내 준 꽃댕강나무에게로 갔다. 제 모습을 드러낸 나무들이 햇살을 마음껏 쬐고 있었다. 그러나 그사이 좀돌팥 싹이 올라온 게 보였다. 쪼그리고 앉아 몇 개를 뽑아 주고 다른 장소를 발길을 옮기다 발길을 멈췄다. 꽃댕강나무 5m도 안 떨어진 철쭉 위에 좀돌팥 잎이 촘촘하게 덮여 있었다.

  무심코 보았을 때는 그저 녹색의 철쭉 잎인 줄 알았다. 확인만 하고 쉼터 옆을 지나는데 좀돌팥에 덮인 또 다른 곳이 나왔다. 얼마나 덮어 놓았는지 어떤 나무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돌다 보니 수국 줄기도 타오르고 가늘디가는 속새도 타올랐다. 특히나 철쭉나무 여기저기 사방 좀돌팥이 요새를 만들어 진을 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숫자에 기가 죽었다.

  오늘따라 햇살은 화살을 쏘듯, 정수리에 따갑게 내리 꽂혔다. 이 많은 곳을 소탕하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좀돌팥과 전쟁을 선포했으니 아무리 혼자 한 약속이라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나무들이 좀돌팥 덩굴에 갇혀 숨도 못 쉬고 죽어 가는 것을 볼 수는 없으니,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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