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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서진 Oct 14. 2022

4. 미안한 마음으로

  

  올해 전주에는, 장마라고 하기는 좀 모호한 정도로 비가 왔다. 밤에 혹은 낮에 밤손님처럼 조용하게 비를 뿌려 댔기 때문이었다. 어쩌다 소나기처럼 내리기도 했지만 잠깐씩이었다. 그래서였다. 좀돌팥 뽑기 딱 좋은 환경이 되었다. 

  비에 젖은 땅은 무릇해져 풀을 뽑아 올리기 딱 좋을 정도가 된다. 새싹이 아닌 길게 뻗어 나간 풀은 뿌리도 길게 내린다. 돌돌 감아올린 풀뿌리의 위치를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런데 며칠 비가 안 오면 그새 풀뿌리는 땅에 뿌리를 딱 붙이고 아래로 아래로 내린다. 그래서 뿌리를 뽑으려면 엄지와 검지를 좀돌팥이 뿌리내린 땅에 딱 붙이고 힘 조절을 잘해 위로 곧장 뽑아내야 한다. 뿌리가 그리 길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잘 뽑히지만, 뿌리를 길게 내려 땅을 꼭 붙들고 있는 것들은 끊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뽑아 올리면서 생각한다. 

  나는 왜 좀돌팥을 뽑아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누구의 편을 들만한 자격이 있는가 하고.

  나무도, 좀돌팥도 다 자기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즉.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그러다 고개를 흔든다.

  “너로만 사는 것이 아닌 다른 나무들을 죽이고 있어서 그래.”

  그런 생각을 하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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