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1 | 노력과 꾸준함을 인정받다
"너 누구야?"
폴더폰 마냥 접혀 있던 나에게서 신원을 알 수 있는 증거는 없었다. 나는 겨우 웅얼대며 내 이름을 말했다.
퉁퉁 부은 얼굴에 놀란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선생님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강당에서 있었던 일은 다 나 때문이라며, 내가 학생회 일을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이런 일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게 다 무너졌다고도 말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목소리만 들어도 어느 선생님인지 대략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 1학년 때부터 우리 학년의 수업을 담당했던 선생님이셨다. 그러나 매 수업마다 꾸벅꾸벅 조는 친구들, 머뭇대며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한없이 무미건조하던 선생님이셨다. 웃는 모습은 본 적은 없지만 그 선생님의 한숨 소리는 적어도 백 번은 들어봤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 앞의 선생님은 예전의 기억과는 다른, 한없이 따뜻한 목소리를 가지고 계셨다. 분노와 후회, 슬픔을 마구 털어놓는 동안 선생님은 줄곧 앞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그렇구나"와 같은 맞장구를 쳐주셨다.
내 말이 끝나고 한참 선생님은 생각을 하시는 듯했다.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간결했고, 그 간결함에 울음이 녹아 사라졌다.
"그건 선생님들이 잘못한 거야".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올려다본 선생님은 지난 3년 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짓고 계셨다.
"네가 잘해줬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게 선생님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내가 저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라는 의심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그 말에 담긴 감정에 흡수된 듯했다.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계속 나를 위로하셨던 것 같다. 누군가 앞에서 그렇게 운 적도 정말 오랜만이었을뿐더러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위로를 듣는다는 것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유연하게 사고하고 마음 깊이 사과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이야기는 그렇게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귀에도 들어갔고, 여지없이 자습 시간에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이 진행되었다. 여전히 부은 얼굴로 이전의 대화를 이어나갔고, 선생님은 내게 거의 책망에 가까운 어투지만 진정으로 위로해주셨다. 밥을 안 먹었는데 뭔가 되게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담임 선생님에게 내 첫인상은 분명 이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 일 이후부터 나에게 줄기차게 주어지던 업무의 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분명 이건 선생님이 하실 일인 것 같은데, 아직 청소년인 나에게 이런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종종 들었다. 대학교 입시 설명회 준비를 한다거나, 선도부와는 관련 없는 일을 아예 나에게만 맡기시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축지법을 쓰며 바쁘게 살던 2학년 때와는 다르게 3학년 때는 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들여 집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친구들보다는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학 입시 설명회가 진행되던 세 달이 특히 더 분주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모의고사까지 준비하느라 바쁜 와중에 입시 설명회를 위한 팻말을 설치하거나 컴퓨터, 마이크 장비 구비도 직접 해야 했다.
시험 범위 정리 노트를 들고 설명회 당일 아침에 안내 팻말을 각 층에 설치했고 준비할 것이 더 있는지 선생님께 여쭙는 것으로 업무를 마무리했다. 축지법의 매력은 바로 고요함. 소리 소문 없이 모든 것을 끝내곤 했다. 뿌듯하게 교실로 돌아가는 복도에서는 "이 팻말, 아까까지는 없었는데? 누가 설치하는 거야?" 하며 당황스러운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자주 들리곤 했다.
겨울방학에 이미 모든 진로 계획을 세워 두었던 나는 여름방학부터 본격적으로 수능 준비에 열중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 수시 지원에 필요한 대입 자기소개서를 6월에 완성하기 위해서 2월부터 틈틈이 작성했다. 2월에 완성한 초고는 대략 20차례에 걸쳐 수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담임 선생님의 의견을 자주 물었다. 6월 초반,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한 두 번째 상담이 끝나고 나의 뒤를 따라 교무실을 나오던 선생님은 자습실로 들어서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그, 입시 설명회 말이야."
"어 넵. 무슨 일 있나요?"
'분명 제대로 했는데? 착각했나?' 하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할 찰나.
"선생님들이 너 칭찬 많이 해. 어쩜 한 번도 까먹지도 않고 매번 잘 챙겨준다고. 잘했고, 고맙다. 끝까지 잘 부탁해."
안내 팻말을 설치하거나 장비를 준비하는 업무는 내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꽤나 성가신 구석이 있었고, 학교생활기록부에는 기록할 만한 사항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성실히 움직이며 얻은 성과는 꽤 컸다. 성적이 높지 않은 이상 무언가의 기회를 얻기가 힘듦에도 나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여러 일들은 나의 무한한 책임감을 인정해주면서 이전에 무너졌던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에 충분했다. 분명 그때 선생님께서 이런 선택들이 나를 회복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게 3학년 1학기가 훌륭하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