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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Sep 07. 2022

나도 고학점이야

대학교 07 | 휴식과 후회 사이

"어, 여보세요. 엄마! 나 도서관."

"너 또 책 읽지. 공부 안 해?"

"하하 지금 읽는 책만 읽고!"

"공부해, 알겠지?"


눈을 비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 사이. 애정표현을 갈구하는 어무니께 그렇게 힘껏 사랑을 음성신호로 보낸다. 내 옆구리를 간신히 붙들던 종이 한 장이 팔랑 떨어진다. 금방 들었던 강의 내용 중 요점을 정리한 종이다.


이미 밤을 새운 지 3일. 역대급으로 무시무시한 개강 첫 주다.



이번 학기는 소위 말해 '막 학기', 4학년 2학기다. 매 강의에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이제 서울에서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보내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는 특히 동년배들이나 가족에게 말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나 엄청 열심히 살았다고 당당하게 '브런치'에 적는다. 능력주의적으로는 개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확하게는 쉬는 시간이 없었다. 3학년 2학기에 친구 대부분은 휴학을 했다. 그 시기에 맞물려, 나는 매달 열 번 이상 '이제 쉴 때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반복했다. 4학년이 들어서서는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이라고 한 것 같다.


그렇게 휴학을 하지 않고서 맞이하는 마지막 학부 학기.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매 순간이 반도체 공학을 들을 때, 회로 강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아무 관련이 없는 생각들이다. 그저 막 학기라는 키워드 때문인 듯하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우울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원하던 대학에 결국 가지 못했기 때문. 그냥 화가 났고 억울했다. 그리고선 열심히 살았다. 통역 아르바이트로 돈도 벌고, 대외활동도 3개를 해치운 1학년 2학기. 8 전공을 들었던 2학년 1학기. 7 전공에 연극 필수 교양을 수강하면서 대외활동도 했던 2학년 2학기. 아 2학년 때부터 학생회 임원이었으며 법학 이중전공을 시작했다. 3학년 1학기는 4개의 메이저 광고 공모전에 기획서를 제출했다. 3학년 2학기부터 법학이 아닌 전자전기공학부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중간중간하는 교내근로와 아르바이트, 자잘한 봉사활동도 잊지 말고 챙겨주자.


숨 돌릴 틈이 없는 4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대학생이 자취방을 구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자녀를 향한 걱정을 줄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공부하다가 집중력이 끊길까 봐 밥도 굶어도, 하루에 4시간 반만 자는 걸 2주 동안 해도 부모님은 잘 모르신다. 부모님 전화를 받기 전에 목 가다듬는 과정이 있다면. 오늘 먹은 메뉴를 순발력 있게 떠올릴 수 있다면.



그래서 휴학 안 한 걸 자랑하고 싶은 것이냐. 아니다. 이건 후회에 가깝다. 휴식은 필요했다. 만약 내가 선수과목이 중요한 법학과 전자전기공학을 복수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3학년 때 휴학하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학과의 특징은 보통 1년 휴학이 아닌 이상, 쉽사리 휴학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공학.


물론 1년 휴학, 당연히 할 수 있다. 근데 여기서 또 문제다. 나는 1년 휴학을 하며 시간을 보낼 만한 그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공부(學)를 쉬는 것(休). 말 그대로의 행동만 하기에는 우리 사회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 1년간 어떤 가치 있는 활동을 했는지 물어보는 상상 속 면접관에게 지어내서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걸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애매한 학문적 경계 사이에서 허우적거렸다. 사회학 전공자가 공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웃긴데, 내가 전자전기공학 분야로 취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들으면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진짜라는 것을 믿으실까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자랑하고 싶은 건 바로, 고학점이다. 분명 능력주의적으로는 개판인 대학생활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고학점인가.


대학생에게 <학점>은 두 가지 뜻이다.

GPA를 의미하는 성적 차원에서의 학점과, 수강 강의의 차수를 의미하는 학점.


내가 말하는 학점은 후자다. 사회학, 경제학, 통계학, 법학, 그리고 전자전기공학. 거쳐온 시간들이 꽤 길다. 이미 3학년 2학기 때 졸업 가능 학점을 충족했다. 여기서 복수전공을 변경했다는 게 현 상황 설명의 핵심이다.


학문을 공부하는 건 신난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분이다. 매 학문마다 주요 사고 체계가 다른 것도 흥미롭다. 물론 본전공과 다르게 문제가 술술 풀리지 않는 강의를 붙잡고 질척거리는 일이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나는 아직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기 직전이다. 그래서 억울한가. 이렇게 살다가 다들 해본다는 대학생활의 연애 한 번 없이 끝? 연애, 술, 맛있는 음식에 원래도 관심이 별로 없긴 해서 별 미련은 안 든다. 오히려 기쁜 구석이 한 군데 있다.


바로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 내가 어느 정도까지 정신력을 붙들고 공부할 수 있는지, 어느 상황에서 버티기 어려워하는지. 특정 유형의 사람을 만났을 때 상황을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기억에 저장하는 방법, 그리고 어떤 일을 맡았을 때 내가 신나 하는지까지.



그 생각이 든 건, 지난여름방학 3개월간 활동했던 봉사단에서였다. 기숙사에 앉아 덤덤하게 고민을 털어놓던 한 분을 마주했다. 나도 그 고민에 대한 생각을 털어놨고, 어디선가 이 대화 흐름의 익숙함을 느꼈다.


바로 나의 고등학교 3학년 당시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기특한 녀석이 있을까 싶은 삶이었다. 혼자서 척척 해내던 기록들을 보면, 누가 봐도 꽤 괜찮은 고3의 삶이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근데 그런 녀석이 그렇게 운다. 선도부장인 내가 잘하지 못해서 전교생이 복장 미준수로 혼난다면서 오열한다.


그때는 물론, 내가 선도부장이었으니까, 관련 있는 일이긴 했다. 내가 복장 잘 갖춰 입고 다니라고 말 한마디 더 했다면 상황이 조금 괜찮았을 확률도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그런 말을 잘하고 다녔고, 이미 나는 완벽한 복장으로 다니고 있었고, 내 말을 들었음에도 복장을 잘 갖춰 입지 않은 학생들이 이미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이 생겨난 거였다.


근데 이런 유사한 상황에서 나는 그분께 "지금 잘하고 있잖아요. 이 이상은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 기를 죽이는 거라고요. 왜 내 소중한 기를 죽이고 그래요오-?"라고 답했다. 그리고선 우리 둘은 피식 웃고 다음 날 진행할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대학교 4년간 나는 많이 변했다. 그때처럼 많이 울지도 않는다. (아, 금방 멋진 노을을 보며 눈물이 나긴 했는데 이런 눈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가차 없이 말하자면 쓸데없는 곳에 정을 두지 않는다. 사람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도 가볍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더욱 진중하게 대한다. 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부끄럽게 느낄 수 있게. 상대방이 흥분하면 나는 침착함을 유지한다. 누가 내게 도발해도 나는 끝까지 박수를 다. 도발한 사람들이 머쓱해질 만큼 해맑은 표정으로. 누군가가 자신이 잘났다며 자랑하면 축하한다는 말을 남긴다. 나는 누군가를 끝없이 축하해주는 내가 좋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장했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의 계획은 휴식이다. (물론 이번 학기를 마친 후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특히 나 자신을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멋진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을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게 후회하지 않고 공학 공부하러 이만 가겠다.

과거의 선택도 사랑하는 내가 한 것이다, 중얼거리면서.



+

그리고 글도 자주 쓰겠다. '브런치'에게 앱 알람으로 경고 많이 받았다.

과거의 내가 멋지게 살던 기록도 곧 남길 테니까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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