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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오즈 Oct 30. 2022

스스로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 7가지

대학교 09 | 나는 마법 같은 순간과 마주했다

     이 글을 쓰기까지 1년이 걸렸다. 대학시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글. 바로 내가 스스로 우울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 생각들을 담은 글이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으나, 내가 진짜, 스스로 우울에서 벗어난 게 맞는지, 그 상황을 지켜보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적당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본문에 들어서기에 앞서, 내가 우울하게 된 계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에서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을지 의심까지 되던 시기는 바로 중학교 3학년, 내가 16살이 되던 해였다. 학교 대표 육상선수였으며, 내가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들과 방과 후에 운동장에서 뛰놀았고, 그만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모든 과목 선생님께 사랑을 받았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전교 부회장을 맡아 학교 대표로 행사에 자주 참여했으며 행복하게 졸업했다.


     그것의 정반대가 바로 고등학교 생활이었다. 내가 무엇이든 하면 좋다는 부모님은 단 한 가지,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한 서울권 대학으로의 진학을 부탁하셨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시도 내 체육고등학교 스카우트 제의를 포기하고 합격권에 아슬아슬하던 영어 성적으로 시내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설립 초기였던 체육고등학교에 비하면 외국어고등학교가 서울권 대학 진학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영어라면 그저 수능 출제 단어 정도로만 외우고 있던 나는 영미권 고등학생들이 독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읽는 교재를 들고선 영어 수업을 들어야 했고, 너무나 쉽게 예상되듯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


     이 성적이면 내가 고생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한 1학년 말의 나는 일반고로의 전학을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학교를 옮기지 않았다. 그즈음 2년 터울의 언니가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졸업했고, 나는 그 학교에서의 기억을 고쳐놔야 했다. 성적이 정말 좋았던 언니는 주변인들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억울하고 외로운 학교 생활을 마쳐야 했고, 나는 우리 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모든 대회, 모든 활동에 참여했다. 유일하게 탈락한 활동은 이전에 합격한 전교 임원 활동과 병행할 수 없던 전교 기숙사 자치회 임원뿐이었다. 플래너와 수첩을 각각 두 개씩 들고선 학교 내신 시험 준비와 모의고사 준비를 병행했으며 아침 5시에 기상하여 새벽 2시에 잠드는 생활을 1년 반 정도 이어나갔다.


     내신 1.5등급 상승. 모의고사 국어, 수학, 영어 백분위 99점 달성. 교내 수상 35개. 2년 연속 전교 임원 활동에 굵직한 활동은 6개 이상 맡았다. 정시를 권유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꿋꿋하게 수시 진학과 정시 준비 병행을 목표로 하였으며 7개월 정도가 소요된 수시 자기소개서 작성은 8월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새벽 6시 반이 되면 전교생 중 가장 먼저 기숙사 방을 나와 자습실 불을 켜고, 새벽 2시가 되어 자습을 마치면 새벽 3시까지 기숙사 방 화장실에서 모의고사 오답 복습을 했다. 주말이면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밀린 과제나 다 하지 못한 공부를 하느라 독서실과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새웠다.


     그럼에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9월. 내가 생각하던 경우 중 최악의 결과를 마주했다. 우선 나는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육상을 하며 약해져 있던 허리와 무릎 연골은 오랫동안 앉아 생활하던 외고 생활 3년 동안 돌이킬 수 없이 약해져 걷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졌다. 수능 직전에는 디스크가 너무 심해져 하루에 진통제 3알을 기본으로 먹으며 공부했고, 그럼에도 힘든 날이면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교실 뒤편에 누워 공부했다. 무릎은 허리보다 더 심했다. 무릎을 굽히고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정형외과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아먹어야 했으며 추가 수술이 없이는 더 이상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무릎 통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내신을 더 올리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가 꿈꾸던 대학. 거기를 가면 내 고통도 훈장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능에서는 고득점을 했고, 내신은 더 올려 1학년 대비 1.7등급 더 높은 성적을 거뒀다. 


     그럼 뭐하나.

     나는 꿈꾸던 대학으로의 진학을 이뤄내지 못했다. 평생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는 수시 특기자 전형으로, 그 친구보다 훨씬 높은 정시 성적을 거둔 나는 그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 대학 수시 진학에는 정시 성적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수시랑 정시는 별 개니까. 담임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은 내가 꿈꾸던 대학의 수시 불합격을 당연하게, 꿈꾸지 않던 대학 합격은 운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같은 학년 학생들 중 가장 오래, 나의 기준에서는 최대치로 공부했는데 내 노력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노력해도 못 이루는 인생인가.

     이 생각이 대학교 진학 이후에도 발목을 잡았다. 죽음과 고통을 바라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야 하는 학과 특성이 나를 더욱 어둑하게 만들었다. 우울함에 지쳐도 습관 때문인지, 나는 1학년 여름방학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공모전, 대외활동에 봉사활동까지. 마지못해 이끌려 활동하고 나서 지치고, 지친 상황에서도 '나는 뭐 못 이룰 텐데'하는 생각이 지배되어 우울하고. 그 우울한 내가 또 이끌린다.


     우울에 대해 굳이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았던 이유는 공포 때문이었다. 진단을 받아봤자 무엇을 하나. 매일 울며 잠들고, 행복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성취의 짜릿함이 어떤 느낌인지를 모른 지 2년이 지났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미 주변에 우울증 판정을 받고 상담을 받는 것을 보았고, 그 사람이 우울해 보이지 않던 나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해줄 때마다 나는 점점 두려웠다. 


     그 생각을 마주 보자고 다짐하게 된 것은 대학교 3학년 여름의 밤이었다. 다름없이 나는 공모전을 준비했고, 밤을 새운 지 오래되었고, 무서워했던 법학을 이중 전공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공황을 접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숨 쉬기가 무서울 정도로 힘들었다. 너무 긴 시간이라고 느껴진 순간이 지나고서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겠다고 느꼈다.


     그 생각을 한 지 3개월이 지나지 않아 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맞이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학교 수시 면접 근로를 하며 사실상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었다. 수고했다는 말 자체보다, 내가 나에게 수고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버렸다. 그게 내가 가장 스스로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괴로운 과거를 버텨낸 나에 대한 인정. 내게는 그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2023학년도 수시 면접 근로를 앞두고 있다. 그 이후 우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가끔 그 과거들이 몰려와 너무 억울하다가도 현재의 노력에 집중하고자 마음을 빠르게 다잡았다. 그렇게 오늘. 드디어 1년간의 나의 다짐 속 생각들을 정리한다.





1. 인간은 약하다

     바쁠 때는 밤을 새우다 보니 입맛이 없었고, 그런 날이 많았던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저체중이 되었다. 보통 급식으로 나오는 일반식을 먹으면 위경련이 일어나 사과즙 3봉과 연양갱 3개, 간단한 아침 식사로 1년을 버텼다. 그러다 보니 탄수화물 위주 식사로 인하여 영양실조도 쉽게 걸렸고, 그즈음 악화된 면역력이 여전히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몸은 약하다. 각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추운 바람에 오래 서있다고 해서 박동성 이명이 들리고 잠을 한 시간만 적게 자도 다음 날이 많이 피곤하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누군가는 불안을 쉽게 느끼고 평소 쉽게 우울해질 수 있다. 

     가끔은 인간의 형체가 오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뼈대와 근육, 몇 장기들로 구성된 이 몸은 어떻게 숨을 쉬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에 집중했다. 힘들던 그때도, 여전히, 나는 인간이 의지의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의지를 만들고, 그 의지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2.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내도록 나는 사랑을 갈구했다. 성적이 낮은 나에게는 그 어떤 선생님도 쉽사리 무언가를 권유하기 어려웠을 거다. 보통 그 권유가 가볍든, 무겁든 그것 자체가 선생님이 학생을 향한 애정인데, 그 애정은 모든 학생들이 보통은 원하는 편이니 애정을 주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보통 그게 능력주의적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통한다. 나는 결국 그걸 받지 못했다. 조금은 느려서, 겨우 버티다가 결과를 낼 즈음에서야 성과를 낼 수 있어서. 그 과정 속에 나는 항상 외로웠다. 사랑을 받을 기회조차 받지 못한 것 마냥 억울해서. 그 사랑 없이 혼자 해냈는데 그걸 운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게 나의 우울의 시발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를 사랑해주어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나의 총 내신 점수는 별 볼일 없어 보일지 몰라도 총 내신 1.7점이 오른 것은 사실상 별 볼 일 없는 노력이라 하기에는 대단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잘 모른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알아야 한다. 나의 노력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또 노력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한 노력을 후회하지 않는다.



3.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너무 사소해도 스스로 축하해주기

     앞에서 한 말의 연장선으로, 사소한 노력에도 우리는 우리를 축하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남에게 당당하게 자랑할 만한, 거대한 성취는 평소 자주 이뤄지지 않는다. 이룰 기회 자체가 적을뿐더러 다수가 그 성취를 바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성취할 확률도 높지 않다. 그런 성취를 이룰 때까지 우리가 들여야 할 노력이 너무 많고 깊다. 그러나 나는 그 성취는 늦더라도 이뤄진다고 본다.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그 성취를 이룰 때까지 우리는 그 과정에서 들인 노력의 결과를 축하하자. 그리고 성취의 결과에 당당해지자. 



4. 한다면 할 수 있다

     우울. 보통 우울한 사람들은 일상의 기본을 이어나갈 의욕이 부족하다. 감정이 무던해져 평소보다 덜 청결해도,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더 탁해도, 밥을 조금 덜 먹어도 별 느낌이 없다. 

     그러나, 내가 1년 전 그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했을 때부터 의도적으로 지켜온 몇 가지가 있다. 그 덤덤해진 감정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이다. 

     우선 매일 밥을 먹었다. 특히 탄수화물은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챙겨 먹었다. 또한 과일이나 영양제처럼 필수 영양분을 최대한 고르게 챙겨 먹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우울로 인한 불면증이나 식욕 감퇴로 인한 체중을 원래대로 복구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극도로 우울하던 시점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외출 자제가 권고되어 집 안에만 있는 시간이 길었다. 활동량이 줄다 보니 근력은 줄고 체지방이 많이 늘어나서 체력이 굉장히 저하된 상황이었다. 식욕 감퇴가 있긴 했지만 체중은 오히려 불균형적으로 증가한 상황이었기에 근력을 기르고 체지방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비대면 상황이 점차 대면으로 전환되어 자연스레 활동량이 늘었고, 몸이 균형을 되찾았다.

     이외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외출하는 습관을 들였다. 단순히 부족한 비타민D를 햇빛을 통해 받고자 한 노력도 있었지만 외출을 하며 나의 삶의 공간을 넓히고자 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보통 우울했던 나에게 행복을 되찾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서울의 자취방은 보통 작다. 그 좁은 방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매우 한정적이다. 아쉽게도 자가용이 없고, 집 여러 채를 가지고 있을 형편도 되지 않기에 직접 지도를 켜고 걷거나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조금씩 내가 낯선 풍경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낯익은 공간이 점차 넓어질수록 그 우울한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반비례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아이디어가 더 방대한 분야로 가지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삶의 반경을 넓혀보는 것.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좋은 순간들을 우울한 생각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내가 우울보다 행복을 자주 느낀 방법이었다.



5. 각자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니까.

     요즘 20대에게 'SNS' 특히 '인스타그램'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특히 기본적인 대외활동이나 학교 과제까지 사람들의 의견을 쉽게 접하고 수집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의 대외활동, 공모전, 인턴 등에서의 수없이 많은 성취들 또한 정말 쉽게 접할 수 있다. 성공은 중독적이다. 그 끌어당기는 힘으로 누군가는 또 다른 성취를 해내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성취를 보며 질투를 느낀다. 나 또한 당연히 그랬다. 물론 나도 대외활동, 공모전 등에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지만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남이 하는 대외활동이 어찌나 탐이 나고, 누가 공모전에 나가서 상을 탔다고 하면 그곳에 시선이 향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그들이 가는 길이 내 길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그 성취들을 보면서도 질투를 느끼지 않고 '저런 길도 있구나'라고 깨닫기 시작했다. 이후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즉각적인 답변이 필요하거나 누군가에게 급하게 알릴 정보가 있을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가 이루는 사소한 성취도 자랑할 수 있다. 열심히 살았고, 조그마한 성취도 자주 이뤘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남의 자랑에 질투가 나서 조급해진 것처럼 다른 사람 또한 내 자랑에 불안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의 자랑이 부러운 만큼 나는 나의 자랑을 줄이기 시작했다.



6. 쉽게 칭찬하기

     만약 내가 우연히 나와 나아가는 길이 비슷한 사람이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성취를 나보다 일찍 이룬다면. 그런 경험을 사실 마주하긴 했다. 그때는 당연히 질투가 나고, 부러웠다. 그럼에도 그 질투와 부러움은 동기로 전환되기 쉽지 않다. 조급해진 나머지 무언가를 쉽게 놓쳐 노력의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기 어렵다. 

     이에 나는 그 감정을 느끼되, 이참에 그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억지로 부정하고 무시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내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고 혹시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 있다면 질문하기로 했다. 그 사람은 성취감에 나를 기분 좋게 도와줄 확률이 클 것이라는 나의 예상이고, 보통은 각자 노력해온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합격 과정에서의 사소한 것들 정도가 나의 성취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금은 쪼잔하지만 그만큼 강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 그 사람의 성취에 진심을 담아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좋은 말은 돈이 들지 않는다. 



7. 평균치가 아니라 내 상황을 직시한 후 판단하기

     마음의 평화를 조금이라도 되찾았다면 나의 현재, 그리고 조금씩 과거의 상황을 직시해보자. 나는 고등학교 3년간 잠을 3시간 정도 자면서 상 40개를 받고 내신 1.7등급을 올렸고 모의고사 전교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것. 그것이 내 우울의 시작이었다. 

     글의 서두에 적힌 내용으로만 그대로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육상을 했다. 영어 단어 암기 위주인 영여 학원 하나를 다녔다. 그리고 고등학교 상위권에 있던 친구들은 그 시기에 해외 연수를 다녀오거나 제2외국어 학원을 챙기며 외국어고등학교 커리큘럼에 적합한 공부를 해왔다. 

     또한 나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한 자습 시간이 부족했고, 컴퓨터 사용이 제한되던 학교였기에 주말에 컴퓨터를 활용한 과제를 몰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주변 친구들은 그 과제를 급박하게 학교에서 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어, 수학, 영어 사교육을 받았다. 

     보통의 사교육에서는 학교 내신 시험 대비 수업과 문제집을 직접 준비하여 학생들에게 제공하였는데, 나는 그 자료를 직접 모으고,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시험 대비 문항을 제작해야 했다. 사실상 혼자서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를 한 셈이었다. 자기소개서도 선생님의 첨삭이 거의 부재한 상황에서 작성을 완료했기에 객관적으로 보아도 스스로 준비한 시간이 많았다.

     준비가 부족했고, 도와주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내가 마주한 결과는 정말, 꽤 괜찮았다. 내가 가진 무기로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의 결과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재하던 그 사람들만큼, 그 정도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바로 작년 가을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스스로 우울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생각들이다. 각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내 생각에서 비롯된 도움의 정도 차이는 당연히 있을 테니 내 글이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나도 못할 줄 알았다. 평생 우울할 줄 알았고, 매일 버티는 것이 한계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울보다 행복이 더 잘 어울리고, 행복할 때가 가장 멋지다.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기에 행복할 의무와 가치가 있다.






     나는 주변에 이미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았고, 내가 극도로 우울하다는 사실이 그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모두가 괴롭던 시기라 의료진의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가능하다면 진료를 받고 상담을 해보는 것을 극도로 권유하고 응원한다. 물론 스스로도 될 거다. 그렇지만 그렇게 우울하게 기억될 내 대학 시절 3년이 너무나 아까워서 그런다. 가능하다면 우울한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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