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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Feb 05. 2022

아빠와 단둘이 여행 3. 아빠의 안내자가 되어

영원한 나의 보호자, 아빠

아빠와 단둘이 여행 전편.

1편 https://brunch.co.kr/@mid-fielder/5

2편 https://brunch.co.kr/@mid-fielder/6



"저거 해보자"




아빠와의 3박 4일 여행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아빠의 말이다. 관람차가 보이면 관람차를 타보자 했고 미술관이 보이면 미술관에 들어가자고 했다. 120% 아저씨 입맛인 아빠가 파스타 가게에 줄이 늘어선 걸 보고 파스타를 먹자고 먼저 말했고 일본에 살 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S언니도 만나보자고 했다. 좌우지간 신기한 일이었다.


어렸을 때 아빠는 때가 되면 꼭 어딘가에 데려가 주었다. 엄마가 옆구리를 찌른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방학이면 박물관, 전시회, 바다, 산, 친척집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녔다. 엄마가 교회에 간 일요일 오전에는 오빠와 나만 데리고 꽃구경을 가서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당연히 출발 전에는 과자를 사서 입에 물려주셨고. 아빠는 세상 다정하고 로맨틱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자식들과 아이들은 예뻐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 생긴 정서적 유대감이 아빠와 단둘이 하는 여행을 가능케 했다.


이 여행에서 나는 아빠의 안내자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아빠에게 교통카드를 쥐어주고 아빠보다 한 발 앞에 섰다. 아빠는 한번 왔던 길은 정말 잘 찾는데 낯선 곳에 오니 호텔까지 가는 길도 자꾸 헷갈린다고 했다. 아빠도 서툰 것이 있고 길도 헷갈릴 수 있는 그냥 보통의 자연인이었다.


황거(皇居)에 갔다. 일본의 궁이라고는 해도 부지가 워낙 넓어 뭔가 특별한 걸 본 건 아니지만 도쿄 역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 서울역 하고 진짜 비슷하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똑같이도 만들어 놨네 참나. 의외로 아빠가 좋아했던 건 황거 앞에 있던 나란히 줄지어 있던 소나무였다. 일본은 분재를 참 잘한다며 쭉 심어져 있는 소나무가 아빠의 마음을 빼앗았다. 아빠는 소나무를 찍었고 나는 소나무를 찍는 아빠를 찍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사진을 보냈다.


지금은 이사했지만 이사하기 전에 어수선하던 츠키지 어시장에 들러 카이센동을 먹었다. 츠키지의 명물 길거리에서 파는 계란말이 꼬치도 먹었다. 아빠는 일본 어딜 가나 작아도 깨끗하다고 감탄을 했다.


스카이트리는 너무 붐빌 것 같아 도쿄 초심자 필수코스, 도쿄타워에도 올라갔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있었기에 건강하게 자라서 출세하라는 의미의 형형색색의 잉어 장식인 코이노보리가 걸려있었다. 막상 전망대는 시시하다고 했지만 또 한참을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었다. 역시 도쿄타워는 멀리서 바라보는 게 가장 두근거린다.


내가 살던 사랑스러운 동네도 걸었다. 관람차도 탔고 평소라면 질색팔색 했을 유명한 타르트 카페에 들어가 타르트도 먹었다. 백화점 지하에서 시식도 하며 주변 사람들의 선물도 골랐다. 양손 가득 들고 호텔로 돌아왔다. 에도 박물관에 가서는 에도시대와 근대 일본의 모습을 보았고 요코하마 미술관에서는 녹음 아래 한복과 기모노를 입고 있는 네 여인의 그림과 조우했다.


그리고 여행의 마무리는 내 마음속 돈까스 남바완! 하네다 공항의 돈까스를 먹으며 아빠와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무릎이 안 좋아 수술까지 받았던 아빠가 무릎에 동전파스를 붙여가며 여행 투혼을 발휘했고 그 모습이 어쩐지 마음이 짠했다. 잠시 보호자 관계가 바뀌었지만 나는 아직 미혼이니, 여전히 나의 보호자는 아빠고 우리 가족이다. 아빠가 오래도록 나의 보호자로 남아있으면 한다.


아직도 가끔 아빠에게 묻곤 한다.

아빠, 둘이 한 여행은 어땠어? 다 기억나지? 다음에 또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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