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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Mar 03. 2022

첫 회사는 일본계 미국 회사의 한국 법인이었다

일본 회사? 미국 회사? 한국 회사?

"거기가 무슨 회사라고?"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귀국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평생 일본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을 갈 때도 한 2~3년 살다 오는 것을 목표로 했었기에 아쉬움은 남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바로 빠른 업무처리이다. 업무를 기다리며 모든 일을 정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보며 나의 퉁퉁증이 시작되고 가끔은 아 나 일본까지 왜 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다시 취업을 해야 했다.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입 나이도 아니었고 전공과 경력이 교육 쪽인 데다 집도 지방이었다. 주위에서는 주소가 지방이면 회사에서도 채용하기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으니 집 주소라도 서울로 해놓으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취업이 너무 어려워 잠깐 다른 쪽에도 눈을 돌렸지만 결국에는 취업에 성공했다.


한국에서의 첫 회사는 일본계 미국 회사의 한국 법인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뭐라고? 풀어서 설명하자면 일본 모기업이 미국에 회사를 설립했고, 그 회사가 한국에 법인을 세운 건강식품 회사이다. 일본의 모회사는 일본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아는 식품계 회사로 업계에서는 손에 꼽히는 아주 유명한 곳이다. 일본 제약업계에 있는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일본에서도 건강식품에 대한 규제가 많아 모 회사가 미국에 법인을 설립한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본사의 대표 및 제네럴 매니저 등 주요 요직은 일본인들로 포진되어 있어 영어가 안되어도 일본어가 가능하면 입사 조건이 되었다.


한국 법인이라고는 해도 직원은 둘 뿐이었다. 한국 법인을 세웠을 때부터 있었던 매니저님과 나. 그렇다고 둘이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본사에는 국가별 세일즈팀이 있어서 한국 세일즈팀 소속으로 본사에 있는 한국 세일즈팀의 지시를 따랐다. 대금 결재도 본사의 회계팀에 올리고 디자인 작업도 본사 디자인팀에 요청했다. 프로그램도 퀵북을 사용했다. 서버에 문제가 생기면 본사 담당자가 팀뷰어로 컴퓨터를 봐주거나 심지어 컴퓨터가 고장 나면 미국에서 구매해서 세팅까지 끝마쳐 보내주었다. 매일 이메일로 세일즈 리포트를 보냈고 매주 컨퍼런스콜을 열어 이슈 사항을 점검했다.


두 명뿐인 한국 법인, 그곳에서 나는 신입이자 막내이자 매니저님이 부재중일 때는 책임자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다 했다. 비품을 사는 것부터 마케팅 업무, 온라인 세일즈, 택배 포장, 은행 업무, 인바운드 등등. 자잘한 업무는 당연히 신입인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해기에 내가 도맡아 하면서도 불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지고보면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 매니저님이 인간적으로 대해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미국  본사로 열흘간 출장을 간 것이었다. 여행에서 필요한 한두 마디밖에 못하는 영알못이 미국 출장이라니!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회사는 여러 나라에 법인을 두고 있었는데 신입으로 입사를 하게 되면 본사에서 2주 정도 연수를 받게 된다. 같이 일했던 매니저님도 입사하고 바로 미국에 갔다 왔다고 하셨는데 나는 스카이프로 연수를 받고 바로 실전(?)에 투입됐었다.


본사가 위치한 LA와 뉴욕 브랜치에서 한인 대상으로 오프라인 프로모션이 잡혔는데, 일본인 전문가의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본사의 한국 직원들 중에는 일한 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없어 연수를 가지 않았던 내가 가게 된 것이었다. 통역이라고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제품과 관련된 이야기라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어려웠던 것은 본사 직원들과의 대화. 본사에 있는 한국 직원들과는 한국어로, 일본 직원들과는 일본어로 이야기하면 되는데 문제는 나머지 직원들이었다. 출장 전에 들었던 이야기는 각 나라별 팀들이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어 은근히 견제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찌 된 게 자꾸 나한테 와서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중에 중화권 제너럴 매니저인 대만인 H는 나를 정말 잘 챙겨줬다. 사원 여행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회사는 1주일 동안 일본으로의 사원 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H는 회사 생활도 오래된 임원급임에도 먼저 와서 장난도 걸어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줬는데 더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다른 팀 제너럴 매니저이기에 부담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아마도 낯설어하는 나를 배려해주기 위했던 행동이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친절을 감사히 받았다.

회사 돈으로 유니버셜 스튜디오라니!

출장 중 일이 없던 일요일에는 회사 지원으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다녀왔다. 직원이 연수를 오면 한국인 직원이 데리고 가는 게 암묵적 룰이라고 했다. 처음 가는 미국이 출장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출장 중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갈 거라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그때는 회사에서의 이런 지원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뒤돌아 생각하면 이곳에서 가장 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고 표현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랑받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한국 내에서의 시장성과 회사 규모를 생각했을 때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에 두 곳의 회사를 더 거쳤다. 다른 곳에서 회사 생활을 해보니 이곳이 얼마나 인간적이었고 괜찮은 회사인지를 알게 되었다. 만약 경력직으로 이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다면 아마 이 회사를 더 오랫동안 다녔을 것 같다. 사회경험이 적었고 내가 원하는 회사의 가치가 명확하지 않았던 그때는 단순히 개인의 성장만을 보았다.


세상에 좋기만 한 회사는 없다. 하지만 직원을 존중하고 직원을 세심히 챙기는 회사라면 오래 다닐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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