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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퉁퉁증 Apr 06. 2022

스무 살 첫 해외여행에서 미용실에 들어갔다

나의 첫 일본 미용실 체험기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때는 스무  여름 방학, 해외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도쿄.  알바로 모은 돈으로 떠난 여행이자, 나의  해외여행이자,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고등학교  2 외국어로 설렁설렁 일본어를 배운 것을 제외하면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한지는 고작 4개월 남짓이었다. 부끄럽게도  인생에서 그때가 가장 일본어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일본인이 하는 얘기가 ~ 들리는  같고 쉬운 글만 읽었으면서 글도  읽히는  같았다. 대화? 하하, 문제없지. 내가 일드를 얼마나 많이 봤는데. 대학교  성적도 평점 4.0 가볍게 뛰어넘었으니 걱정 따윈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다.


일드를 상당히 많이 봐 온 나는 도쿄에 가서도 드라마에 나온 곳들을 찾아다녔다.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도쿄 도청 부근, 히비야 공원, 에비스, 아오야마 등등.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I.W.G.P*의 무대인 이케부쿠로에 찾아갔을 때 일이다. (Ikebukuro West Gate Park, 이케부쿠로역 서쪽 출구 앞 작은 공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동네 양아치들 주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이야기)


로케 지를 찾아가 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별 게 없다. 그곳에서 드라마를 찍었을 뿐이고 드라마에서만큼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저 나의 마음만이 웅장해질 뿐이다. 이케부쿠로역 서쪽 출구를 나와 바로 보이는 공원은 드라마에서 보던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아마도 너무 재밌게 봤던 드라마이기에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비까지 내리던 아무것도 없는 작은 공원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일단 동네를 걸었다. 그러다 내 눈에 미용실이 들어왔고 그 길로 고민도 없이 미용실에 들어갔다.


출처 : Pexels

그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은 샤기컷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샤기컷과 일본의 샤기컷은 디테일이 달랐다. 한국은 끝이 뾰족뾰족한 느낌의 샤기컷이라면 일본의 샤기컷은 자연스럽게 레이어드를 넣으며 머리숱을 쳐내는 느낌이었다. 이전부터 후자의 느낌을 너무 내보고 싶었기에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금이야 우리도 예약 문화가 활성화됐지만 그때는 미용실에 갈 때 딱히 예약을 하고 가진 않았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긴 소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었기에 예약을 하셨냐는 말이 생소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 왔는데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아마도 자신감 넘치는 이상한 일본어로 말했을게 분명하다.


그리고 디자이너 언니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던 것 같다. 헤어 잡지가 있었던가? 그 시절 나는 일본어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대화를 하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리고 시작된 커트에서 나는 감동을 받아버렸다. 그야말로 머리카락을 소중히 한 올 한 올 자른다는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이 서걱서걱 잘려나가 10분이면 커트가 끝나는 한국의 미용실과는 확연히 달랐다. 머리를 감겨주는 것도 성의가 넘쳤다. 가격은 3천엔. 그 당시 일본의 평범한 동네 미용실의 커트 시세였다. 우리 동네에서 커트를 하면 만원이 안되었으니 3배 가까이 주고 머리를 자른 셈이었다. 비싸게 느껴지긴 했지만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헤어 스타일에 너무 만족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빠까지 내 머리를 보고 아주 잘 잘랐다 한마디를 해주었다.


지금은 우리도 전반적으로 서비스업의 질이 향상되었다. 이젠 더 이상 머리 자를 때마다 일본 미용실을 떠올리지 않게 내 머리를 한 올 한 올 잘라주는 디자이너 선생님도 만났다. 어느새 가격도 그때 일본에서 냈던 금액과 동등해졌지만 말 잘 통하는 우리나라 디자이너 선생님이 훨씬 편하고 좋다.


그나저나 이제는 일본어가 너무 어렵다. 아는 게 많아지니 맞는 말만 하고 싶어 마땅한 단어나 표현이 생각나지 않으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 표현을 일본에서도 쓰는 것인지, 지명이나 이름 한자를 어떻게 읽는 것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틀리더라도 내가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설명하던 그 스무 살의 자신감이 가끔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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