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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Nov 07. 2023

교사가 만족하는 수업

학부모 공개수업-2

일 년 농사


"여러분, 부모님이 교실 뒤에 계시니까 긴장이 되나요?"

"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 지 3분이 지났다. 그때까지도 긴장이 풀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 한 마디를 건넸더니 사물함 앞에 서있던 학부모님들의 입술 끝이 올라가고 아이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공개 수업은 시작되고 첫 5분이 중요하다. 그래서 보통은 수업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수업 전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오늘은 쉬는 시간부터 10분 정도 노래를 불렀다. 4곡 정도의 동요로 구성했고, 율동이 들어간 곡 2개와 멜로디로만 된 두 곡이다. 곡명은 '노래가 만든 세상, 가을은 참 예쁘다, 엄마는 사랑을 만드는 요술쟁이, 이 세상에 모든 걸 주고 싶어'이다. 앞의 두 곡은 1절만 불렀고, 뒤의 두 곡은 2절까지 불렀다. 곡의 순서는 주로 가사의 느낌과 분위기를 보고 정한다. 그리고, 노래 가사 중에서 엄마와 아빠가 모두 나오는 경우에는 꼭 2절까지 불러서 한 부모 가정의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돌아다녀서 산만해지면 본 수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능하면 전 시간 끝자락에 미리 아이들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게 한다. 그리고 공개수업 직전 쉬는 시간에는 가능하면 이동을 하지 않고 수업 전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세상의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은 분들이 오늘 교실에 오신 것 같은데 맞나요?"

"네."


"지금은 부모님들이 여러분에게 그렇게 하고 계시지만, 나중에는 여러분이 부모님들께 반대로 해 드릴 거죠?"

"네, 그럴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은 존재 자체가 부모님에게 이기 때문에 크게 무언가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학부모 공개수업에서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소중함을, 그리고 학부모에게는 아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말을 꼭 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 말도 수업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일부러 넣어두었던 말이다. 학부모는 교사가 수업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철저히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반복해서 수업 용어 한마디까지 철저히 계획하고 또 수정한다. 그 시간의 학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이의 활동을 조절한다.


우리 학교의 복도와 교실 사이의 창문은 투명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층 오른쪽 끝 화장실 앞에 위치한 연구실은 화장실을 오갈 때마다 그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오늘도 공개수업이 시작되기 전 잠시 연구실 앞을 지났다. 공개수업 참관을 하러 온 듯한 학부모가 수업이 시작되기 20분 전부터 미리 연구실에 와 있었다. 여유롭게 수업을 기다리려는 그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에는 그전 수업의 쉬는 시간부터 아이들과 진행할 활동을 준비해 둔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의 긴장을 풀 수 있다. 그리고, 일찍 도착한 학부모에게는 아이들이 무언가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에게는 연극을 바라기는 어렵다.'


수업공개를 위해서 아이와 미리 무언가를 짜고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다. 만일 대본이라도 만들어서 연습한다면 저학년의 경우에는 "선생님, 어제 연습한 대로 하면 되는 거죠?"라는 말을 할지 모른다. 만일 이 말을 하는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교사의 얼굴은 한순간에 홍당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업은 '연극'이지 이미 '수업'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비교육적이어서 교사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본다. 만일 교사가 이런 연극 같은 수업을 한다면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그 수업을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엄마가 오시는 날 우리에게 이런 것까지 하라고 하셨어. 그건 좀 아니잖아.'


수업을 공개하는 건 아이와 교사 모두를 긴장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수업 전에 충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은 교사의 숙제다. 수업과 관련된 발표 훈련, 아이가 집중하는 태도,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 책을 펴는 방법, 모둠 활동과 짝활동의 순서 및 방법 등. 수많은 수업 관련 기법과 방법을 아이들은 익혀야 한다. 그러니, 교사는 오랜 기간 동안 이 방법과 과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런 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수업 직전에 아이들과 약속이 가능할 것인가. 꾸준히 학생과 교사 간에 이루어진 긴 과정을 한 시간에 보여주는 것뿐이다.


마치 일 년 농사를 통해 잘 익은 곡식을 잠시 펼쳐놓는 것처럼.





고마움


"교실로 들어오세요."


쭈뼛거리면서 복도에서 서성이는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교실로 들어오라고 손신호를 보냈다. 교실로 한 두 명씩 들어오는 학부모를 시작으로 교실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코로나가 끝나고 우리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학부모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다. 사전 조사를 해보니 우리 반에서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부모가 수업 참관 신청을 했다.  


"선생님, 유지(가명) 울어요."


유지는 발표를 마치고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기세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해서 아이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길 때쯤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교실에 나타났다. 다행히 울음바다는 벌어지지 않았고, 그 순간 교실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유지야, 아까 눈물이 난 이유가 있었어?"

"아빠가 오시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들어오셔서 눈물이 났어요."


아이의 눈물은 알고 보니 아빠를 보고 흘린 반가움의 표시였다. 공개 수업 한 시간에는 이렇게 다양한 감정과 소통 그리고 그림이 녹아 있다. 학부모는 내 아이가 교실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그러니, 학부모 공개수업을 통해 내 아이가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과제는 잘하는지 발표할 때 자세가 바르고 내용은 분명한지 알 수 있다. 또한 그 모습을 조금이라도 본인의 눈과 마음에 담고 싶어 한다. 오늘 우리 교실 출입문에는 '촬영금지'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하지만, '다른 아이의 모습이 담기지 않는 사진이라면 허용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이 말이 내 입에서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업시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부모님들은 아이의 모습을 담거나 숫제 본인과 함께 셀카를 찍기도 한다.


'인물의 마음을 파악하여 나의 마음 사전 만들기'가 오늘의 공부할 내용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을 배우고, 마음 사전을 만들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모든 활동이 끝나고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도 지금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 볼게요. 오늘 공개수업을 시작할 때는 설레고 떨렸어요. 약간은 긴장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수업이 다 끝나고 나서의 마음은 굉장히 후련해요. 그리고, 열심히 잘해준 여러분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워요."   


바쁜 일정에도 시간을 내어 아이의 모습을 보러 온 학부모에게 아이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렇다고 없는 모습을 다르게 각색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잘하던 모습과 해오던 것을 빼놓지 않고 한 시간에 모두 담으려 했다. 40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정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아이라는 예쁜 그릇이 또한 필요하다. 오늘 그 그릇은 충분히 빛이 났다. 내가 먼저 수고한 우리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시간이 너희들에게 또 하나의 따뜻한 추억이 되었길 바란다.'



교사가 만족하는 수업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하지만, 난 이것 하나로도 오늘 수업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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