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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Dec 07. 2023

4년여 만의 학예회를 마치고

아이의 발표는 어른과 다르다

"지금부터 학예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학교 강당에는 4개 학년의 5개 반 아이들이 설치된 의자에 앉아서 무대를 가린 막이 오르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10여분의 시간을 기다리니 행사의 진행을 맡은 선생님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강당을 울렸다. 이 소리를 들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우와' 하며 함성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모아 박수갈채를 보냈다.


학예회는 지난 4년 동안 학교에서 사라진 행사였다. 그래서 새삼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드디어 오늘 그 막을 올리게 되었다. 이 무대를 위해 전교의 학생들은 한 달 여간의 연습 기간을 가지면서 각자의 기량을 반에서 연습으로 다져왔다.


"선생님, 너무 떨려요."

"연습하던 대로 하면 되니까 떨지는 말자. 오늘은 너희가 모두의 챔피언이야."


무대는 출연자를 흔든다. 아침부터 두근거린다고 난리를 하는 아이들을 달랬다. 연습 기간 동안 "열심히 해 보자"라는 말을 아무리 해도 아이들은 동작에서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발표 당일에는 내가 평소와 별반 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월등히 다른 기량을 무대에서 선보인다. 물론 무대복에 얼굴에는 옅은 화장까지 했으며 헤어스타일까지 부모님이 만들어 주셨으니 평소와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달라졌다. 그러니 어찌 그 전과 같은 마음일까.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는 역시 실제 무대 행사에 참석한다는 그 긴장감이 아이들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무대에 오른다는 건 누구나 긴장되는 일이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할 거야. 그런 약간의 떨림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단다. 그러니, 너희들은 그 긴장감을 오히려 조금 즐기면 되는 거야. 어때, 그럴 수 있지?"

"네, 그럼요. 그렇게 할게요."


"역시 우리 반이야. 오늘은 무대를 즐겨보는 거야."


김창옥 교수님의 이야기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출연진에게 요구하는 말이 다르다고 한다. 그것은 "잘하자"와 "즐기자"의 차이라고나 말까. 전자는 당연히 한국인이고 후자가 미국인의 반응이다. 딱 들어봐도 출연하는 사람에게 부담감을 줄이는 말은 '즐기자'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나는 전자의 이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웃음'으로 내 말에 화답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긴장감을 즐기는 일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나도 사실 그러지는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이 어려운 일이 내 말 한마디로도 눈앞에서 가능하다.


이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역시 아이가 어른보다 낫다.' 






"이제 우리가 입장할 차례야."


우리 반 아이들을 데리고 대기실로 이동했다. 나를 뒤따르는 그들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머리를 눌러준다. 혹시 넥타이가 삐뚤어지지는 않았는지, 표정이 어둡지 않은지 살폈다. 긴장한 아이가 있으면 그 마음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건네 본다. 무대로 향하는 그 와중에도 부모님을 찾는 아이들, 잠시라고 엄마나 아빠와 자신의 긴장감을 나누고 싶어 하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무대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자신들의 변화된 모습이 마음이 드는지 들뜬 얼굴을 하고는 서로의 옷을 만져본다. 동작을 조금씩 연습하면서 미소를 짓고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그 얼굴에는 긴장감이 떠오른다. 엄마가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아이와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생각하며 들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저 나이에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이 우리 반이니까 연습한 대로 하자. 즐기자, 얘들아! 알았지? 파이팅!"

"네, 우리 잘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선생님은 너희들이 입장하면 무대 아래에서 너희들을 지켜볼게."

"네, 선생님!"


바로 앞 무대가 끝나고 나는 한 손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입장을 막았다. 퇴장하는 아이들과  동선이 엉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앞 순서의 아이들이 거의 빠져나갈 때쯤 우리 반 아이들을 입장시켰다. 생각보다 긴장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9살이 맞는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우와'


멋지게 옷을 챙겨 입고 화장기가 가득한 데다가 머리까지 한껏 힘을 낸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에 공연을 보러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함성을 질렀다. 거기에 조그마한 아이들이 한껏 미소까지 머금은 자신 있는 표정에 함성소리는 이미 예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음악이 시작되고서 정확히 6분이 지난 후 우리 반 공연이 끝이 났다. 공연의 제목은 '리듬 속에 그 춤을'이었다. 급하게 지은 제목이었지만, 그 속에 나의 의도는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몸동작과 음악의 어울림을 표현하고 싶었다.


아이들의 율동은 어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고학년과 저학년은 또 다르다고 본다. 또한 지도교사의 의도와 지도의 포인트에 따라서 아이가 만들어내는 동작과 느낌은 또 세밀하게 차이점을 보인다. 학교에서 문화 예술 업무를 5년 동안 맡아서 기획했다. 학교의 무대를 알고 초등학생이 무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학부모가 원하는 것을 오늘의 무대에서 전달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은 십분 발휘되었고, 그것은 박수로 회신되었다. 마지막 동작이 끝나고 부모님이 아이들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도록 5초 정도 멈춤 동작을 넣어서 일명 '포토타임'을 만들었다.  


"열심히 준비한 0학년 0반의 공연에 큰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정리 멘트를 뒤로하고 우리 반 아이들은 퇴장을 했다. 한 달여간의 연습 시간을 가졌던 우리 아이들은 오늘의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어떤 한 가지 일을 끝낸다는 건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마무리는 항상 후회스러울 수 있더라도 다음을 위한 반성과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줄을 지어 퇴장하는 아이들을 따라 나오는 또 다른 줄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반 학부모의 행렬이다. 한껏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손에 꽃다발을 쥐여주는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 가족 또는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내려오는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은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23명의 아이의 담임교사보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사진 많이 찍어주세요. 기다려 드릴게요."


운동장에 잔뜩 퍼져 있는 우리 반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아이 한 명을 세워놓고 독사진을 찍거나 아이와 둘이 서서 셀카를 찍는 엄마와 아이, 또는 본관을 배경으로 아이의 사진을 찍는 아빠 등 다양한 모습으로 그 소중한 시간을 폰과 카메라에 담아보는 그들을 보면서 지난 나의 시간도 돌아봤다. 내 아이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각박하지 않게 충분히 이 시간을 부여해 주고 싶어서 가만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선생님, 지금 저 아이들과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네, 그럼요. 얘들아, 저 어머니 좀 보고 서 볼까?"


"선생님도 같이 서 주시면 안 될까요?"

"네, 저도요?"


요즘에 선생님에게 인사를 하는 학부모를 만나는 일이 흔치 않다. 그런데 나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우리 반 학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20년 전 나의 초임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이만큼 흘러서 요즘 교권이 실추되었다고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 어머니의 한 마디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해서 따뜻했다. 아이들 곁에서 어머님이 손에 든 폰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잠시 뜨거운 마음을 가졌다.  


'오늘 하루 너희들이 이 시간 안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공연과 발표로 인해서 너희가 더 많이 성장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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