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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Nov 28. 2023

정년퇴임 or 명예퇴직

교직에서 어느 말이 덕담일까

"어서들 오세요."


오후 3시. 우리 세 명은 닫혀 있던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학교의 교장선생님은 40대 중반에 일찌감치 승진을 해서 8년의 교장의 임기를 채우고도 경력이 남아서 정년퇴임을 하려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경우의 교장선생님들은 대부분 명예퇴직을 선택한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예정된 내년 9월보다 6개월 빠르게 내년 2월 말로 빠른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우리 학교 교직원은 이런 신청에 놀랐다. 평소에 교장선생님과 가까이 지냈던 분들은 간간이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고, 우리 세 명도 그랬다. 이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어서 오늘 교장실을 찾았다.



학교에서 교장실은 외부 손님이 자주 모이는 곳이다. 3년 전 나도 이곳을 찾았다. 내가 우리 학교에 부임하려고 인사를 오던 첫날 교무실을 들렀을 때 그 당시에 근무하시던 교장선생님은 내가 도착도 하기 전부터 교무실에 건너오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알고 보니 교무실 옆이 교장실이어서 오가기가 편리했던 것이다. 오늘은 그 교장실에 교감선생님도 계셨다. 우리가 추측하기는 교장선생님만 우리가 찾으면 혹시 교감선생님이 서운해하실까 싶어서 교장선생님께서 미리 교장실에 그녀를 부르신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 놓고도 모른척하시는 듯해 보여서 무척이나 센스 있어 보였다. 교감선생님께서 넌지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신다.  



"어서 오세요."

"이 자리는 어쩐 일로 마련된 건가요? 혹시 제가 나가야 되나요?"


"아니에요. 오가다가 들른 거니까 그냥 계셔도 되십니다."



깨끗이 정돈된 교장실 테이블 위에 우리가 미리 준비해서 들고 들어간 간식거리를 펼쳤다. 다섯 명의 교직원이 자리를 잡으니 제법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잘 찾지 않던 교장실에서 장 서로 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워낙 노련한 선배 들이라서인지 금방 그 분위기는 가셨다. 알고 보면 다들 대학 선후배인데 파헤치면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중 교장선생님과 한 분 선배님은 초임 시절에 동 학년을 지냈다. 그래서인지 그 인연이 오늘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느낌은 평생을 가는 것 같다.  



'한 번 신규는 영원한 신규'


초임 때 모시던 교장선생님 앞에서는 왜 그리 늘 내가 왜소하고 작게 느껴지는 걸까.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도 어리바리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벌벌 떠는 내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면 웃어버린다. 이건 참 재밌는 에피소드다. 40년 가까운 경력의 교장선생님이 보여주시는 교직 생활을 듣기만 해도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솔솔 떠올랐다. 10여 년에서 20여 년 후배들 앞에서 과연 어떤 말씀을 하실까 궁금했다. 어렵사리 마련된 사적인 그 자리에서 하나라도 좋은 말씀을 후배들에게 해 주시려는 선배님은 퇴직 후의 삶을 설계해야 한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퇴직 후에 준비하면 이미 늦어. 그러니 미리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돼.'


"교장선생님은 퇴직하시면 어떤 걸 하실 거예요?"

"이런저런 걸 생각 중이기는 해요."







"선생님은 꼭 정년퇴직하세요."

"그렇게는 안 하고 싶은데요..."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정년퇴직은 교사에게 명예로운 일이었다. 별일이 없이 교사로서 현직에서 아이들과 지내다가 교직을 떠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학부모에게 '아동학대'로 피소당하는 일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서 과연 명예퇴직이 나에게도 먼 일이기만 할까. 그리고 반드시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는 고집을 피울 수 있을지 10년 전부터 무던히 고민해 왔다. 이제 명퇴는 교사라면 누구나 고민해 보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오늘 교장실에서 들은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꼭 하세요."라는 말이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 현실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기분이 자체가 슬펐다. 얼른 정년퇴직이 명예로웠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것이 라떼의 마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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