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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Dec 28. 2023

만병통치약

매 순간 나를 칭찬을 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국어 시간이었다.


친구의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하는 내용을 종이에 적어서 반 친구에게 서로 건네는 활동을 했다. 우리 반에서는 일주일에 한 명의 친구에게 나머지 친구들이 칭찬을 해주는 '칭찬 릴레이'를 한다. 나를 우리 반 전체 아이가 칭찬한다는 것은 그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활동이었다. 칭찬 쪽지를 붙이는 칠판 앞에서 서성이며 자신에게 친구들이 적어준 쪽지를 살펴보고 서 있는 내성적인 아이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서 나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벌써 1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이 '칭찬 릴레이'와도 연계되는 내용이 국어 시간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 반 아이들은 칭찬이 익숙해서인지 연필들 끝에서 글씨가 빠르게 뿜어져 나온다.


"너희들은 칭찬을 잘한다."

"익숙해서요."


"그렇구나. 다행이야. 이렇게 잘하는 걸 보니 기특하다. 3학년이 되면 올해보다 칭찬을 더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내년에도 우리 반 담임선생님이 되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칭찬을 많이 해 주시죠."


학년이 끝날 때쯤이면 은근히 나에 대한 아이들의 애정도를 떠본다. 한 학년 동안 우리 반을 챙겨 온 김에 나도 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좋아요."라는 칭찬을 받고 싶은 걸까. 꽤 유치한 발상에 나 스스로의 이런 물음에 또 한 번 스스로 "그래?"라고 대답했다.


'참 한심한 교사네'라는 생각을 잠시 들었지만, '교사도 반 아이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지.'라고 나 자신에게 변명을 해본다. 그러면서 피식 웃는 동안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런 말을 한다.


"내년에 다른 선생님을 만나면 누가 우리를 칭찬해 주죠?"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런 나를 시험하는 듯한 아이의 발언에 대해서는 대답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기 때문이랄까. 아이들의 질문에는 섣불리 그리고 단순하게 답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지닌 이들이 교사일지 모른다. 일단 모니터 뒤에 숨었던 내 얼굴을 아이들이 잘 보이는 위치로 쑥 내밀었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인정해 주는 우리 반 친구들에게 웃음으로 그 순간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그 마음이 진심이든 아니든 예쁜 말을 건네는 아이의 모습에 감사해서다.  


컴퓨터를 자주 활용하는 요즘 수업 시간에 교사가 책상에서 벌떡 일어서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에 놀라는 듯 고개를 들며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고는 잠시 숨을 멈추며 동그란 눈을 내 얼굴로 모은다. 나는 그 순간 숨을 잠시 꿀떡 넘겼다.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봤다.






"너희와 늘 함께 하는 한 사람이 있는데 그게 누군지 아니?"


"부모님이요."

"친구요."


"아닌데."

"그럼 누구예요?"


"알아맞혀 보렴."

"음....."


여기저기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삼사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아 바로 저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 맞아. 바로 너희 자신이란다. 나는 나와 늘 함께 하지. 그러니 나를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나를 가장 크게 칭찬할 수 있는 사람도 바로 너희 자신이란다. 어때? 선생님의 말에 동의할 수 있어?"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러니 내년에 선생님이 너희의 담임선생님이 되지 않더라도 물론 다른 선생님이 너희를 칭찬해 주실 거야. 하지만, 그 어떤 선생님을 만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아니 아무도 옆에 없는 순간이 되더라도 자신을 칭찬해 줄 여러분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떤 순간에도 너희는 너희 자신을 마음껏 칭찬해 주면 되니까. 꼭 그렇게 할 수 있지?"

"네,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아이들은 긴장감을 풀며 나의 말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친한 사람이 남과의 관계도 좋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남도 존중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반 아이들이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국어 시간 칭찬을 다루는 이 단원을 통해서 그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듯 자신에게 들려주는 칭찬의 소리가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에서 어떤 일과 상황이 그들에게 오든 잘 이겨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되기를 바란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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