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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윰글 Nov 14. 2023

잘한 선택이야

교사로서 승진을 준비할 것이냐?

"선생님은 승진 파세요?"


학교에 근무를 시작하고서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를 옮기면 이런 질문을 가끔씩 받게 되었다. 교직경력이 10년 정도까지는 이게 무슨 말인지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소히 '중견교사'가 되면서부터 '교직은 크게 두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한 여성에 비유하자면 전업주부 또는 워킹맘? 이 정도의 차이라고나 할까. 이 비유가 맞는 건지는 모르지만, 교직에서는 업무와 교육을 병행하면서 그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승진을 준비하는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는 일과는 별개의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연구 실적과 가산점 등의 실적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노력과 그에 맞는 개인적인 기질이 필요하다.



'회식 자리에서의 폭탄선언'


다섯 번째 학교는 그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것이 내가 선택한 이유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그 학교에 부임한 나를 보더니 '윰쌤이 알고 보니 승진 파였네'라는 의문점을 보였다. 왜냐하면 내가 간 학교가 '교육력 제고' '연구학교' 승진 가산점을 중복으로 받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기 힘든 곳을 내가 떡하니 입성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그들의 궁금증에 답을 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았다. 누가 비슷한 질문을 하면 "글쎄"라는 애매한 답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교직원 전체 회식이 있었다. 다수의 인원이 참석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자연스럽게 2차 자리가 이어졌다. 소수의 몇 명이 그 자리에서 제법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분위기는 누그러졌고, 그 순간 한 후배가 내게 물었다.


"부장님은 승진파세요?"

"당연히 그렇지. 그러니까 이 학교로 온 거고. 나는 오래전부터 승진을 준비해 왔어."


"그래요? 부장님이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학교는 어디를 근무하셨던 거예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어쩌다 벽지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을 뿐이었고, 그렇게 다섯 번째 학교로 흘러왔다. 하지만, 처음 부임한 그 학교는 알고 보니 엄청한 곳이었다. 첫날부터 "이 학교는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에요. 선생님은 복 받으신 거예요."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벽지학교 가산점을 2년 6개월을 받고도, 농어촌 학교 가산점을 이어서 1년 정도 받았다. 그런데 그 점수가 지금까지도 일반 연구학교 가산점의 1.75배가 될 줄 그때의 나는 몰랐다. 한 마디로 '봉'을 잡는 셈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이 거하게 취한 나는 정신없이 그 자리를 지켰고, 이런 모습을 보던 후배 몇 명은 그런 선배의 점수를 대신 계산해 주었다. 그러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부장님의 점수가 장난이 아니시네요. 이제 0년만 더 다니시면 바로 근평만 받으시면 되시겠는데요."라면서 '얼씨구'라는 말과 함께 술잔을 더 세게 부딪힌다.


"거봐. 내가 그렇다고 했잖아."

"부장님, 나이스 샷!"


그 순간 몽롱했지만 지금도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장난이 너무 심했나'


그 학교에 발령을 받은 교사들은 대부분이 승진파였고, 나는 그 속에 몇 안 되는 비승진파였다. 이런 '소외감'이 싫어서 장난으로 술자리에서 농담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식자리에서 얼떨결에 던진 한 마디 때문에 그 이후부터 '강성 승진파'로 분류되었다. 그래서인지 다음 해부터 바로 '부장'을 맡게 되었고, 학교의 주요 업무가 내게 주어졌다. 다음 학교를 선택할 때는 남들이 다들 그렇게 하길래  '초빙교사'를 신청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초빙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이래 저래 연구점수도 쌓았고, 수영부 감독을 맡게 되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맡았던 아이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바람에 연구대회 1등급을 받았다. 내가 던진 농담 한 마디 덕에 그 이후 10년 동안 입에 단내가 나게 승진 준비의 길을 달리고 말았다.


이렇게 인생은 뭐든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칭찬 포스트잇을 붙여보세요."


아이들은 칠판에서 본인의 이름이 적힌 칸에 친구를 칭찬하는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인다. 이번 주에 칭찬을 받아야 하는 아이는 자기를 칭찬하는 아이들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쉬는 시간마다 그 칠판 앞을 오간다. 이런 아이들의 움직임을 보면 난 절로 미소가 오른다. 지난 3년 동안 지독하게 아팠던 시간은 이제 나에게 잊힌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주기적으로 다니던 병원에 오가는 것 외에는 딱히 큰 어려움이 없다. 추가 검사를 받을 일도 무슨 병인지 고민할 일도 없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아침에 우리 교실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일도 편안하고, 내 앞에까지 와서 조잘대는 아이의 수다에 대꾸하는 일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선생님, 오늘 미술 시간에는 뭐해요?"

"00 숲에 나가서 연못 구경할까?"


"좋아요!"

"그래, 그러자."


작은 활동의 제안에도 리액션이 좋은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나까지 어깨가 들썩거린다. 이것이 사람을 무작정 행복하게 하는 '에너지의 상호작용'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일은 내게는 선물 같은 일이다. 한동안 학교 업무에 파묻혀서 점점 마네킹이 되어가는 나를 봤다. 수업 시간에도 아이를 보면서 교과서와 활동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고 머리 한편은 다른 곳을 향하는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몸과 마음이 오롯이 아이에게 가는 나에게서 또 다른 에너지를 느낀다.


'잘한 선택이야.'


10년 이상 업무에 빠져보면서 교사로서 승진의 길을 걷는다는 게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과 맞는 삶의 방향이 있다. 나 또한 교사로서 가야 할 종착점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고 방황도 했지만, 내가 있어야 하고 행복한 곳은 '교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랜 기간 동안 아프고 고민하고서야 이것을 깨달았다. 물론, 승진을 준비하시는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분은 그 길을 가시는 것이 맞다. 그리고, 교실에서 퇴임하는 순간까지 아이와 함께 하며 가르침의 길을 걸어가는 분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그 길이 바로 내가 걸어갈 교직의 길이라 여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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