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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22. 2021

당신, 왜 그랬어요? 3화

광훈은 십 수년 전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너냐?

“증인 496호, 왜 그랬어요?”


마지막으로 묻겠다는 말에 광훈은 입을 열었다. 사립학교에 근무하며 그는 교감이나 이사장의 지시에 따라 가족들은 몰랐으면 하는 일들을 처리할 때가 있었다. 권위란 그 자체로 광훈을 떨게 했다. 권위가 밥벌이를, 명예를, 건강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리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게 때문에.


“그게, 정말 그 애가 범인이었어요. 영재고에 온 애가, 힙합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그 애 부모도 정말 반대가 심했어요. 고3인데 반 평균보다 점수가 한 2,30퍼센트는 떨어져 있었고. 덕분에 우리 반이 고3 전체에서 꼴찌 1,2위를 다퉜어요. 모의고사를 보면 반별로 평균 점수를 뽑아 줄 세우거든요. 애들만 줄 세우는 게 아닙니다. 3학년 회의를 하고 나면, 다른 선생들도 절 은근히 얕잡아 보는 게 느껴졌고요. 정신 차리게 해 주려고 제가 좀 매를 들었죠. 1학기 두 번째 전국 모의고사 점수가 나오던 날이었어요. 세워놓고 망신을 줬어요. 정신 차리라고. 그런데 다음 주에 그 일이 있었던 거예요. 뽑은 지 한 달도 안 된 새 차 문짝에...... 말하기도 민망하네요. 운전자 쪽엔 바보, 문 하나에 한 글자씩 대문짝만 하게. 반대쪽엔 똥개. 똑같이... 열쇠나 돌로 긁은 흔적이 발견된 거예요. 교내에 주차를 해뒀는데 도대체 학생이 아니면 누가 그랬겠어요. 동네 애들은 아니겠죠. 지금처럼 블랙박스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CCTV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범인을 셋으로 추렸지만, 심증이란 게 있잖아요. 다른 반애들은 아닌 거 같았어요. 처음부터. 그 전주에 제가 그 애를 반 애들 앞에서 심하게 망신 줬잖아요. 앙심을 품은 거라고 생각했죠. 깜찍하게. 그때부터였어요.


제 별명이...... 차 변태라고.


수업시간에 차만 보고 수업한다고요. 우리 학교 애들은 대부분 집에 돈이 많아서 국산 신형 SUV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요. 전 12년 동안 중고차를 몰다 뽑은 거라, 낙서를 보니까 꼭지가 돈 거예요. 타일러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혼도 내보고 그 애를 쉬는 시간마다 불러서 물어봤는데 끝까지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미칠 노릇이었죠. 그다음 주였을 거예요. 교실에서 잘 보이는 자리에 차를 대놓고 노심초사 수업 중이었죠. 난 ‘꺼삐딴 리’를 읽으면서도 차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애가 꾸벅꾸벅 조는 겁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어요. 그 애보고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했죠. 그리고 힘을 제대로 실어서 채찍질하듯이 팼어요. 팔이 아파서 더 때릴 수가 없을 때까지. 여자애들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기 시작했죠. 맞아요, 아닐 수도 있죠. 아니라서, 지금 제가 여기 잡혀온 건가요? 그 영화, 그..., 올드보이 같은 겁니까? 너냐? 가수로 유명해졌단 이야기를 못 들은 것 같은데, 내가 맞았잖아? 너도 어른이 되어 보니까 선생님 말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지?”


광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요즘 음악은 잘 모르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아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사실 그 일이 마음에 걸리는 일 중엔 가장 덜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로선 마지막 카드를 바로 소진할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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