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eak Jan 27. 2024

여행이란 무엇인지 자문하다.

3 부자 배낭여행-26일 차

방비엥의 이틀차 날이 밝았다. 날은 밝았지만 날씨는 그다지 좋지 않다. 구름 낀 하늘과 25도가 안 되는 최고기온은 여행 일정에 많은 변수로 작용한다. 게다가 클럽에 갔다 돌아오는 한국 여행객의 소음 때문에 밤에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일단 조식을 간단히 챙겨 먹고 수영은 못하더라도 블루라군이라도 둘러보고 등산이라도 할 생각에 오토바이를 몇 시에 빌리고 반납할지를 계산해 본다. 아이들은 어제 올리지 못한 가족 밴드 여행기를 올리고 오전 타임 15분의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이 끝나고 둘이 장난을 치다가 또 역시나 싸우기 시작했다. 조용히 시켰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화를 내며 다시 혼내고 일정을 계획하다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 이렇게 화를 내고도 곧장 풀렸는데 오늘은 아이들도 나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마지막 통첩으로 가방을 싸고 10분 뒤까지 준비하고 나오라며 방문을 열고 나왔다. 첫째는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나도 어느덧 배낭여행 내내 아이들에게 맞춰주며 여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방비엥은 버릴 생각을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둘째도 형이 안 가니 막상 나서기 힘든지 침대에서 불만의 소리를 내었다. 그래! 여행이 항상 즐거울 순 없지, 방비엥은 갈등의 공간으로 기억된다고 해서 그것이 실패한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에 오토바이 렌트도, 블루라군도 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침대에 누워 화를 삭인다. 아들이 아니었으면 벌써 여행은 끝을 맺었으리라. 누워 있는데 카톡이 울린다. 와이프의 문자인데 느낌이 별로 좋지 않다. 문자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공허하게 채팅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5일 남은 여행을 접고 비행 편을 알아보고 귀국할 것인지, 남은 5일을 무사히 보내고 귀국할 것인지. 누구도 나에게 그런 내용을 묻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드는 생각이었다. 귀국을 할까 생각했다가 금세 생각을 접었다. 알정을 다 마치고 찾아뵙기로 다짐했다. 아이들에겐 얘기를 할까 말까 혼자 또 고민을 한다. 답은 내려지지 않았다. 어제 마시려고 사둔 맥주가 기억이 났다. 여행 2일 차 가출을 한 첫째 때문에 피웠던 담배도 하나 꺼내 문다. 혼자 테라스에서 담배와 맥주를 마시며 회한에 잠긴다. 문득, 류시화의 시가 떠오른다. 대학시절 빠져있다가 어느 날 문득 맘에서 떠나보낸 작가.

류시화의 시

자유를 그리워하기도, 자유에 지쳐 쓰러지지도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자유를 갈망하며 부딪히며 살았다. 오늘 문득 류시화의 시가 생각나는 것은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그가 남아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인데 맥주를 마시며 방에 돌아오니 아이들은 아직 침대에 누워 자고 있다. 얽힌 실타래를 뭐부터 풀어내야 할까 고민이다. 나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리고 여행을 이어나갈지, 말없이 또 화해하고 남은 일정을 이어 나갈지, 아무것도 결정하기 힘든 시간이다.

숙소에서 바라 본 사진 한 장이 오늘까지 여행의 전부다.

하루가 숙소에서 지나갔다. 예정대로 여행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내가 할수 있는건 내일 비엔티안에 도착하여 사원에서 108배를 드리며 외할머니의 명복을 바는것 뿐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굶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여 숙소 앞 식당에 들렀다. 애들은 1.5끼를 먹고 들어갔다. 혼자 남아 쏘맥 한잔을 기울인다.

이전 03화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