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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종 종Mu Mar 24. 2024

"봄+밤"

 마치 "봄밤감정사"처럼

#.

날씨도 개득템에 해당될까요?

어제만 해도 비 지나간 뒤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는데요.

오늘은 햇살이 얼마나 좋은지 겨울옷을 던져두고 보다 얇은 옷을 찾아야 했지요.

물론 하룻밤 사이에 기온 상승은 다소 당황스럽습니다. 갈아입은 지 단 하루 만에 빨래통에 넣어야 할 옷가지도 그렇고요, 무엇보다 당장 얇게 입고 나갔다가 한기가 들어 감기 걸릴 우려도 있고요.

암튼 봄햇살이 두터운 그런 오후가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그래서 옷차림은 겨울도 봄도 아닌 타협의 태깔이 되었습니다.


오늘 만난 지인은 바람막이 잠바에 얇은 모직 라운드티셔츠 차림. 그런데도 햇빛이 뜨거워 어쩔 줄 몰라하며 내가 늦게 도착한 것에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그래도 나무 그늘을 찾아주니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날씨가 좋다느니 어제와 딴판이라느니 수다를 풀더군요.


종묘는 원래 참배할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늘이 드는 나무벤치에 앉아 비둘기 세 마리가 종종걸음으로 모이를 쪼는 걸 바라보다 일어나 슬슬 걷노라니 대문 안으로 숲그늘이 이어진 길도 좋아 보여서요.

입장료도 어른 한 사람이 천 원이라니 부담 없고요. 문턱을 넘어 걸으며 혼자 생각해 봅니다.

"내 기억 속에서의 종묘는  숲이 없었는데..."

지워진 건지 나중에 복원된 건지... 당장 알아야 할 일도 아니지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고적한 마당.

기품 있게 주욱죽ㅡ 내리 뻗은 기와지붕의 선.


우리의 DNA 안에 마당돌이며 기왓장 빛깔, 담장 너머 나뭇가지들까지 다 새겨져 버린 언젠가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퇴장을 재촉하는 방송 소리에도 일부러인 듯 느적느적 걸어 나왔습니다.

망한 왕조의 혼백에 미련 있는 사람처럼  중년 여자 둘은 담장을 따라 걸었습니다


"곧장 걸어가면 우물이 있어요. 그 물을 마시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을 믿고 너도나도 길어갔대요. "

지인은 안내라도 설 것처럼 말을 꺼냈지만 거기까진 가지 않았어요. 지인이나 나나 자녀가 이미 대학을 졸업한 터에 멀리까지 발품 팔 필요까진 못 느꼈으니까요.


순라길의 백미는 골목 안쪽 카페며 주점, 당들이 있는 오밀조밀한 한옥 골목이었어요.

어깨를 스치며 골목 안 여기저기로 걷고 있는 행인들 대부분이 젊은 청춘들이었지만, 뭐 어때요? 그 애들은 그 애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그리 춥지 않은 3월의 주말을 서성이고 있는 거지요.


꽃봉오리가 막 피어날 듯한 따순 기운까지는 아니지만 그에서 너무나 가까운 봄날 저녁이었어요.


"우리 그런 날 또 만나요."


그런 날.

말하자면 잘디잔 꽃잎들이 벙글어지는 그런 날,

딱 그런 날 봄 저녁에 벚꽃나무 아래서 벗과 만나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봄날 늦도록 거리를 배회하는데, 그러한 봄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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