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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연하게 Nov 24. 2022

컵라면과 알사탕 - 1



나에게 가난이란 사랑스러운 바비 인형이 아니라, 컵라면 소 컵과 알사탕으로 정의됐다. 


        


컵라면 소 컵이 15개씩 들어가 있는 종이상자 두 박스가 주방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주방 도구들을 한데 치운 뒤 우둑하니 자리 컵라면 박스가 눈길을 유독 사로잡는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폭력으로 집을 나간 뒤 겨우 먹던 쌀이 한 톨도 남지 않은 까닭이다.

  

굶주림으로 아우성치던 배는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주전자에 받아 보글보글 끊이다. 보리차 티백을 넣고 우린 물은 며칠 동안의 유일한 식량이었다. 어머니의 부재 속 간만에 보는 아버지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컵라면은 반가울 뿐이다. 두려워하는 사내의 손에 들려온 유일한 식량. 폭력의 공포보다 삶을 갈망하는 생존본능은 조금 앞선 것 같다.


나는 컵라면 박스를 확인한 뒤 방에 들어와 문에 귀를 바짝 붙였다. 마치 남의 것을 탐내는 쥐새끼처럼, 그의 코골이를 간절히 기다렸다.


술상을 차려 혼자 방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 문을 닫는 소리, TV를 켜서 시시껄렁한 프로를 감상 뒤 DVD방에서 빌려온 야한 영화를 트는 소리가 차례로 끝난 뒤에야 사내는 겨우 코를 집이 떠나갈 만큼 골아댔다.


그의 시끄러운 코골이는 우리 집에 사내가 거주하는 동안 유일하게 보장받은 휴식 시간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졸였던 마음을 겨우 놓아 본다. 나무로 된 방문턱에 오른발을 최대한 밀착했다. 동그란 손잡이를 천천히 돌린 뒤 조심스럽게 어깨로 문을 열었다. 아버지의 단잠을 물론이고 신경을 거스르게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용하게 방문을 열기 위함이다.


숙련된 경험으로 문을 여는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잠에 취해있었다.

     

오래되 삭아가는 문지방을 밟지 않고 뒤꿈치를 떼고 발가락만으로 살금살금 주방으로 기어갔다. 아버지께서 이미 하나 빼먹은 컵라면의 개수가 줄어들어 아쉬웠지만, 며칠 동안 굶은 아이에겐 그마저도 좋다.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너무 좋다. 나 매일 라면만 먹어도 행복할 거 같아.”



보글보글, 하얀 수돗물에 열이 가해져 기포가 올라온다. 아이는 끊는 물을 식탁 의자를 빼내 와 감상하며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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