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많다 보니 누가 이 질문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네 아이가 비슷한 종류의 질문을 한 번씩은 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결혼할 때 나는 어디에 있었어?
음....그게...정자가 그냥 소모되다가... 난자를 만나서....
대여섯 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실제적이고, 쉽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헷갈린다.
그러다가 가장 정확한 답을 알아냈다.
"하나님 마음속에!"
하나님 마음속에 간직되어 있다가 엄마 아빠가 결혼한 후 우리에게 주신 아기라고 이야기해 주고 조금 더 크면 정자 난자의 작용을 통해 우리에게 온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네 명의 딸아이다.
결혼 후 곧 임신이 되어 첫아이를 낳고 난 후 참으로 미숙한 두 남녀는 티격태격 불화가 잦다. 나도 너에게 실망하고 너도 나에게 실망하고...
아무래도 곧 이혼할 거 같아. 한 아이에서 멈추자는 생각으로 피임을 하다가 매우 중요한 계기로 성경을 읽게 되고 복음을 이해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리고 생긴 아이가 또 세명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셋째와 넷째는 피임에 실패해서 생겼는데 크리스천이 중절수술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막내는 '루프'라는 피임기구까지도 뚫고 착상을 해서 의젓하게 세상에 태어났다.
어려운 형편에 아이가 넷이라니... 그때 그 피임기구를 시술해 준 의사 선생님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하나님의 선물'인 임신을 '손해'라는 단어와 연관시키는 것에 나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고선 가슴 무너지는 감사함으로 받아 안았다.
그 실수를 한 병원이 고양시 시골 관산동의 작은 산부인과였는데 의사 선생님이 영화배우보다 미남이었다. 딸 셋에 넷째까지 임신한, 복잡한 심경의 임부였는데도 그 선생님의 미모만 보면 설레고 눈이 부셔서 도저히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원당의 아무 개성도 없는 의사 선생님 병원에서 분만했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많은 글을 써 왔지만 5년 단위로 부끄러웠는지 다 내다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써 온 일기는 너무도 소중해서 버리지를 못했다. 어느 엄마들은 아이의 요런조런 추억거리들을 다 모아놓았다고 하는데 나는 수많은 이사와 대식구의 잡동사니들에 지쳐 배냇저고리 하나도 남긴 것이 없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길 재주는 있다.
미숙한 내가 그 귀한 아이들을 키우며 잘못했던 것, 상처 주었던 것들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말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표현으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엄마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나고, 너희들도 적어도 100년 안에는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기에 그 기간 동안에만 이라도 우리들을 기념하자.
우리가 인연을 맺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에서 서로 얼마나 소중하고 눈부신 가치의 사람들인지 이 공감의 글로 확인하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