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23개월
아버님에게 들은 병명은 ‘담도암 4기’였다. 이름은 생소하고, 숫자는 컸다. 낯선 병명처럼 아버님이 아프시다는 것 또한 한동안 익숙해지지 않았다. 투병을 하시면서도 주변의 온도를 높이는 아버님 특유의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는 잃지 않으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병세가 악화되셨다. 허리가 아프셔서 움직이기 힘드시고, 복수도 3-4L씩 빼는 상황이 잦아지고, 밥도 드시기 힘드시다고 했다. 지금은 떨어진 체력 때문에 목소리를 듣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버님이 아프시고 난 후는 거의 매일 영상 통화를 한다. 아버님을 웃게 만드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아이가 우리 집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간병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우주에게 말씀하셨다.
“우주야, 할아버지가 요즘 밥을 한 숟갈도 안 드셔. 밥 먹으라고 좀 해줘!” 도통 어머님 말씀을 듣질 않으니 속상해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우주가 웃으며 말하는 거다,
“할부지 맘마 머거!”
우주가 처음으로 세 단어를 연달아 말한 날이 바로 이 날이다. 세 단어라는 형식도 놀랍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우리를 더 놀라게 했다. 순간 영상통화 화면 밖의 엄마, 아빠는 눈물이 고였지..
사실 우주가 태어나고 꼬물거렸던 한동안은 우주의 발달이 혹시 같은 시기 아기들에 비해 늦은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더랬다. 근데 그것도 8개월 즈음부터는 별 것도 아닌 일이 되어 사그라들었다. ‘언젠가 우주가 원할 때 하겠지.’라는 여유와 ‘모든 걸 그리 빨리 할 필요가 있나?’하는 은근한 반항심(?)이 생겼달까.
그런데 “할아버지 맘마 머거!” 사건 이후, 우주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할 정도의 언어 발달이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빛나는 말을 할아버지의 남은 시간에도 해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은 쓰는 이의 정체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듣는 이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로 하루의 기분이 결정되기도 하고 또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기도 한다. 내가 하는 말과 타인이 해주는 말은 곧 내가 된다.
지난주 찾아뵌 아버님은 유난히 피곤한 날이셨는지 이런저런 질문에 입을 다무셨다. 하지만 헤어지기 전, 힘 있는 목소리고 말씀하셨다. “우주야, 사랑해!”
우주가 지금 받는 수많은 사랑의 말을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할 거다. 하지만 그 말들은 우주에게 박혀 별이 될 거다. 그리고 우주의 하루가 빛 날 수 있게 해 주겠지.
#우주의언어 #육아일기 #23개월아기 #아기언어발달